카슈끄지 고문끝 참수? 어떻게 녹음했나…정보기관 도감청 전쟁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0월 19일 14시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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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광저우(廣州) 총영사관에서 근무하던 미국 직원들이 올해 5월 집단적으로 두통과 어지럼증을 호소했다. 2016년 쿠바 아바나 주재 미국 대사관에서 근무하던 직원들의 집단 두통 등의 증상에 이어 다시 불거졌다. 미국 정부는 고도의 음파 공격에 의한 것으로 보고 조사를 벌였으나 뚜렷한 증거를 찾아내지는 못했다.

그런데 최근에는 도청 장비에서 나오는 전파가 원인일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고 외신이 전한다. 미국 캘리포니아대 샌디에이고 분교 연구팀 등은 “은밀히 감춰지거나 원격에서 작동하는 초음파가 잘못 작동해 의도치 않게 직원들의 건강에 영향을 주었을 수 있다”며 “의도적인 음파 공격보다는 도청 장치가 잘못 설계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진위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으나 이들 사건은 각 국의 정보 전쟁에서 도감청 대상과 범위에 제한이 없다는 경각심을 울리는 사례로 거론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또 다시 외교 공관 도감청 논란이 불거졌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반정부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59)가 터키 이스탄불의 사우디 총영사관 내에서 사망한 사건은 언론인 테러로 미국과 사우디 등 관련국간 외교적 파장을 일으키고 있지만 ‘정보기관의 도감청’에 대해 주목하게 했다.

언론인 살인 뒤의 정보기관 도감청 논란

‘어떻게 녹음했나?’

카슈끄지는 2일 이스탄불의 사우디 총영사관에 들어간 뒤 실종됐다. 이후 터키 언론은 고위 관계자를 인용해 카슈끄지가 손가락이 잘리는 등 고문 끝에 참수당한 정황을 녹음을 통해 확인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녹음 파일이나 어떻게 녹음되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카슈끄지의 살해 정황을 최초 보도한 터키 일간 데일리사바는 카슈끄지가 차고 있던 애플 워치가 ‘스모킹 건’(결정적 증거) 역할을 했다고 전했다. 카슈끄지가 차고 있던 애플 워치에 녹음된 파일이 총영사관 밖에서 기다리던 약혼자에게 맡긴 아이폰과 연동돼 전송됐다는 것이다. 데일리사바는 “사우디의 암살 팀이 숨진 카슈끄지의 지문으로 애플 워치 암호를 해제해 녹음파일을 삭제했지만 이미 파일이 연동된 뒤였다”고도 했다.

하지만 애플 워치의 역할에 의문 제기되면서 정보기관의 도감청 의혹은 커지고 있다. 카슈끄지가 애플 워치를 차고 영사관에 들어갔고, 그의 약혼자가 카슈끄지의 휴대전화도 가지고 있었지만 와이파이가 터지지 않는 영사관에서 파일이 연동된 휴대전화에 고문 등의 정황을 담은 녹음 파일이 전송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것.

미국 IT 매체 테크크런치는 “와이파이에 연결됐다고 해도 총영사관 밖의 아이폰과 블루투스로 연결되기엔 거리가 지나치게 멀다. 또 터키는 3세대 애플 워치의 셀룰러 데이터 통신 기능을 지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일부에서는 사망에 이르게 하는 구타 고문 등을 하면서 손에는 애플 워치를 차고 있게 했다는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같은 정황들 때문에 터키 언론이 녹음 파일을 확보했다면 이는 터키 정보 당국이 사우디 총영사관을 도감청한 것일 수도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것이다. 전 미국 중앙정보국(CIA) 출신의 CNN 정보분석가 로버트 베어는 “터키가 사우디 영사관에서 유선으로 연결한 송신기로 도청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고려대 임종인 정보보호대학원 교수(전 대통령 안보특별보좌관)는 “터키 정보 당국이 확보했다고 알려진 사우디 영사관 내의 음성 파일 등은 도·감청을 통해서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전제한 뒤 “국가 정보기관의 도·감청과 대응 수준은 ‘능력’이라고도 한다. 대체적으로 불법 여부를 떠나 국가간 서로 눈감아주는 게 관례”라고 했다.

회담과 외교협상 미소 뒤에서는 첩보 정보 전쟁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사상 첫 북한과 미국 정상회담을 준비하던 미국이 가장 신경을 쓴 것 하나는 중국의 첩보 활동 차단이었다. 협상 상대인 북한보다 글로벌 패권을 두고 경쟁할 뿐만 아니라 북한에 큰 영향력을 가진 중국이 정보를 탐지하는 것을 막는 것에 주력했다.

이는 회담 장 주변의 호텔과 식당에서 직원을 이용한 정보 탐지 및 도청을 차단하는 것은 물론 유무선 망을 활용한 간접 도청을 막는 것에도 주의하라는 특별 지시가 내려졌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동선과 미국 협상단이 움직이는 공간 주변에 반도체 탐지기, 전자장 탐지기, 렌즈 탐지기 등을 갖춘 초소형 첨단 장비가 심어져 있는 지를 찾기 위해 이 잡듯 뒤졌다고 한다.

김영철 북한 노동당 대남담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이 양국 정상회담에 앞서 5월 미국을 방문해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만날 때 워싱턴 DC가 아닌 뉴욕으로 갔다. 유엔주재 북한대표부에 평양과 바로 연결되는 통신망이 있어 도·감청 위험이 적다고 판단한 것이다.

미국 언론은 최근 중국의 공격적인 첩보전을 집중 보도했다. 미국 관리들은 중국이 호텔 키, 휴대전화, 노트북 등에 몰래 칩을 심거나 회담장 안팎에 소형 카메라를 심는 건 기본이라고 말한다. 올해 워싱턴 펜타곤(국방부 청사)에서 열린 회담에서도 중국 군 장성들이 손목 시계를 이용해 녹음하려다 양측간 감정이 격해진 일도 있다고 한다. 미 수사당국은 최근 중국 인민해방국이 미국 기업과 공공 기관 서버에 감시용으로 추정되는 마이크로 칩을 심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미국이 정보전에서 구사하는 도감청 능력이야말로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2013년 국가안전보장국(NSA)의 전 직원 에드워드 스노든의 폭로로 세계적인 도·감청을 자행한 사실이 공개됐다. 스노든의 폭로에 따르면 미국의 도감청 대상은 러시아 중국 등 경쟁국은 물론 한국 독일 영국 일본 등 동맹국 고위 관리의 휴대전화도 비켜가지 않았다.

임종인 교수는 “미국은 도·감청 수준이 높지만 미국의 해외 공관 건물 내, 외부 벽돌을 자국에서 공수해 쓸 만큼 도·감청에 대한 대응도 철저하다”고 말했다. 중국 베이징(北京)의 미국 대사관을 신축할 때는 자재는 물론 건설 근로자도 미국에서 데려와 공사를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스노든의 폭로 당시 독일은 미국을 비판했지만 독일 정보기관의 도감청 실태도 독일 주간 슈피겔이 전했다. 이 잡지에 따르면 독일 연방정보국(BND)은 1998~2006년 백악관과 주독일 미국 대사관 등을 감시해 왔다고 폭로했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스노든의 폭로로 미국이 자신의 휴대전화를 감청한 것에 대해 “친구 사이에 염탐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던 비판했지만 독일도 결백하지 않다는 것이 드러나 체면이 구겨졌다.

앞서 보스니아 내전 당시 인종학살 혐의로 1999년 국제유고전범재판소(ICTY)에 기소된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전 유고슬라비아 대통령의 재판에서는 도·감청 자료가 주요 증거로 인정됐다. 당시 ICTY 재판관으로 밀로세비치 판결에 참여한 권오곤 한국법학원장은 17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내전 중이라는 상황을 감안해 도청한 내용이지만 증거로 인정됐다”고 말했다. 밀로셰비치는 재판을 받던 중 2006년 네덜란드 헤이그에 있는 ICTY의 감옥에서 갑자기 숨졌다.

각국이 국익과 직결되는 정보 수집을 위해 공공 기관을 비밀리에 도감청 하는 것은 세세히 드러나지 않을 뿐 일상적인 일로 여겨지는 것이 현실이다. 한 정보업계 관계자는 “은밀히 진행하고 들키는 경우 오리발로 일관하기 때문에 도·감청 사실이 확인되는 경우는 드물다”고 말했다. 상대방의 숨은 의도를 먼저 파악할 경우 협상 등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기 때문에 도감청을 둘러싼 ‘창과 방패의 싸움’은 필요악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한국의 도감청 ‘방어’ 미흡 지적도

2015년 국가정보원의 도·감청 논란이 올해 불거지면서 국정원이 이탈리아로부터 해킹 소프트웨어(RCS)를 구입해 운용한 사실을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공개됐다.

RCS는 다른 사람의 PC나 스마트폰에 피싱 문자, 메일 등을 통해 ‘스파이웨어’라는 악성 코드를 심어 통화 내용이나 이미지 등 각종 정보를 탈취하는 프로그램이다. 원격 조종을 통해 통화 내용을 녹음할 수도 있고, PC나 스마트폰의 카메라를 조작할 수도 있다.

한국 정보기관도 정보 전쟁에 대응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한 사례다. 손영동 한양대 융합국방학과 교수는 언론 인터뷰에서 “국정원이 몇 대의 감청 장비와 시설을 보유했는지는 기밀사항”이라며 “국방부·검찰·경찰·관세청에는 400여대의 감청 시설이 있다고 한다”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한국 정보기관의 정보 수집이나 대응 수준, 위험 인식은 다소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임 교수는 “서울의 몇 몇 정보기관 건물 인근에 외국의 해외문화원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곳에 해당 국가의 도감청 장비가 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이설 기자 sno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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