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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함을 망한 나라의 함정으로 만들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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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함을 망한 나라의 함정으로 만들다니…”

이정훈 기자 입력 2018-10-20 21:22수정 2018-10-22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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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함. 동아일보DB
우리 군에서 스스로를 비하할 때 쓰는 말에 이런 것이 있다. ‘작전에 실패한 군인은 용서받을 수 있어도, 의전에 실패한 군인은 용서받지 못한다.’

군만큼 상명하복이 강조되는 집단도 없을 것이다. 전시에 지휘관을 중심으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승리하고자 만든 것인데, 전쟁을 하지 않으니 옥석(玉石)을 상급자에 대한 충성 정도로 가리는 경우가 많아져 이런 말이 생겨났는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비아냥거림에도 군의 의전은 매우 중요하다. 군은 종종 국가 자체로 이해되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대권’은 통수권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대통령은 대한민국을 대표하기에 군은 최고 의전을 펼쳐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대한민국 격(格)이 훼손되니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한다.

대한민국은 일제에 병합된 조선이나 대한제국의 법통은 잇지 않는다. 그런데도 제주해상관함식 때 독도함에 대한제국 태극기인 ‘데니 태극기’를 달아 논란이 일고 있다. [뉴시스]
‘국민과 함께’ 강조한 反日


10월 11일 제주해군기지에서 열린 대한민국 국제관함식(관함식)에서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욱일기를 단 일본 함정이 참여하지 않아 특이하다고 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행사에는 주빈이 있다. 통수권자인 대통령이 탄 배가 주빈이 되는데, 이 배를 좌승함이라 한다. 관함식의 클라이맥스는 좌승함이 참여한 함정으로부터 ‘대함(對艦) 경례’를 받는 사열이다.

좌승함은 보통 전투함으로 한다. 우리 해군은 만재 톤수로 따지면 1만t에 육박하는 이지스 구축함을 3척 갖고 있다. 그러나 사전 회의에서 ‘국민과 함께’라는 개념을 잡으면서, 많은 이를 태울 수 있는 배로 변경하기로 했다.


상륙함은 화물과 해병대 수송을 주목적으로 하기에 많은 이를 태울 수 있다. 우리 해군이 보유한 상륙함 가운데 가장 큰 것은 대형상륙함(LPH)인 독도함(만재 시 2만t)이고 다음이 만재 시 1만t인 천왕봉급 상륙함(LST-2)이다. 독도함은 워낙 커서 자칫 뒤따르는 시승함이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이 때문에 독도함을 맨 뒤에 두기로 했다.

제주에서는 한라산만큼이나 성산일출봉이 유명하다. 관함식 준비단은 제주에서 행사를 하는 만큼 천왕봉급 3번함인 일출봉함을 좌승함으로 삼기로 했다. 일출봉함에는 대통령을 비롯한 요인들이 타고, 천왕봉급 2번함인 천자봉함에는 제주해군기지가 있는 강정마을 주민들을, 독도함에는 일반 국민을 승함케 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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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는 문제가 없다. 사단은 일출봉함을 선두로 출항하면서 벌어졌다. 정박 중인 군함은 뱃머리에 해군기, 배꼬리에 자국기를 올리게 돼 있다. 이는 해군의 중요한 관습이다. 출항은 당직사관이 “전(全) 홋줄 풀어”라고 지시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 순간 배를 부두에 묶어놓은 모든 줄을 푸는데, 그때 함수의 해군기와 함미의 태극기를 내리고 깃봉도 접는다. 그 대신 굴뚝과 레이더가 있어 배에서 가장 높은 마스트에 국기를 올린다. 일출봉함과 천자봉함은 마스트에 태극기를 올리고 출항했다. 그런데 독도함 마스트에 희한한 태극기가 올라갔다. 일명 ‘데니 태극기’가 게양된 것이다.

1894년 일어난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이듬해 청나라를 상대로 시모노세키조약을 맺었는데, 이 조약 제1조에는 ‘조선은 독립국이다’란 내용이 들어 있다. 일본이 이 내용을 넣은 것은 조선을 병합하기 위한 ‘원모(遠謀)’로 이해된다. 그러나 조선은 청나라로부터 독립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는 이해가 훨씬 강했다.

이듬해 일단의 선각자들은 독립협회를 만들고 청나라 사신을 맞이하는 자리에 있던 영은문(迎恩門)을 헌 뒤 독립문을 세웠다. 1897년 조선은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바꾸고 고종을 황제로 격상했다. 청나라와 대등한 나라가 된 것이다.

이 일이 있기 17년 전인 1880년(고종 17년) 8월 수신사로 일본을 다녀온 김홍집은 청나라의 외교관 황준헌이 쓴 ‘조선책략(朝鮮策略)’을 가져왔다. 조선은 이때 처음으로 국기 문제를 고민했다. 1882년 수신사로 일본에 다녀온 박영효는 ‘사화기략(使和記略)’을 펴냈다. 여기에 ‘태극·4괘 도안’의 기를 만들어 일본 대표를 만날 때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1883년 왕명으로 태극기를 제정했는데, 이 태극기는 전해지지 않는다.

현존하는 태극기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은 미국 스미소니언박물관에 있는 ‘쥬이 태극기’다. 1883년 푸트 미국공사를 수행한 쥬이가 입수해 1884년 미국으로 가져간 것이다. 우리가 보관한 최고(最古)의 태극기는 김원모 단국대 명예교수의 논문과 한국일보 보도로 알려지게 된 ‘데니 태극기’다. 데니(O. N. Denny·1838~1900)는 대한제국의 외교고문을 하다 1890년 본국으로 돌아갔는데, 그 직전에 고종이 태극기를 하사했다. 1981년 정부는 데니의 외손자로부터 이를 기증받아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해오고 있다.

대한민국 헌법은 전문에 1919년 설립한 임시정부의 법통을 잇는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대한민국은 일제에 병합된 조선이나 대한제국의 법통은 잇지 않는 것이다.

욱일기 사태에서 알 수 있듯이 올해 관함식을 관류한 중요한 개념 가운데 하나는 ‘반일(反日)’이었다. 그렇다면 임정(臨政)의 태극기를 썼어야 하는데, 관함식 준비단은 일본에 굴복한 대한제국의 태극기를 게양한 것이다. 다행인 것은 데니 태극기에 대해 아는 사람이 극소수였다는 점이다. 이들은 대한민국이 보관 중인 가장 오래된 태극기를 올렸다는 설명에 ‘그런가 보다’ 했다.

그러나 제대로 알고 있는 인사들은 격노했다. 군은 국가를 대표하기에 어떠한 경우에도 자신을 밝혀야 한다. 정박할 때는 함미, 출항할 때는 마스트에 국기를 게양해야 한다. 미국 함정은 USS 다음에 함명을 밝히는데, USS는 ‘US Ship(미국의 배)’의 약자다. 대한민국 함정은 ‘ROKS(ROK Ship)’ 다음에 함명을 표기한다. 그래서 이들은 “일본에 굴복해 독도를 헌납했던 대한제국의 국기를 왜 ROKS Dokdo에 올렸느냐. 그것도 반일을 하겠다는 이들이?”라고 강하게 반문한다.

그런데 또 다른 일이 논란이 됐다. 좌승함에 ‘수자기(帥字旗)’가 올라간 것이다. 대통령을 국가원수라고도 하는데, 국가원수(元首)는 군의 최고계급인 원수(元帥)와 한자부터 다르다. 군의 원수는 장수(帥) 가운데 으뜸(元)이라는 뜻이다. 해군은 최고계급자가 탑승하면 그에 맞는 깃발을 올린다. 대통령이 승함하면 봉황기, 총장이 탑승하면 총장기(대장기), 작전사령관이 타면 중장기를 올린다.

조선은 최고사령관을 도원수(都元帥)라고 했다. 이와 비슷한 것이 조선의 수자기인데, 수자기는 도원수의 기가 아니다. 수자기는 일선 부대장의 존재를 상징할 뿐이다. 이러한 사실은 신미양요를 통해 확인된다. 1871년 강화도에 상륙한 미군은 광성보에서 어재연이 이끄는 조선군을 대파하고 수자기를 탈취해갔다. 이 수자기는 2007년 미국에서 돌아와 육사기념관에 소장돼 있다.


조선시대 일선 지휘관을 상징하는 수자기를 올린 일출봉함. [뉴시스]

봉황기와 수자기를 같이 올리는 모순


이는 수자기가 해당 부대의 최고지휘관을 상징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조선에는 수자기보다 더 높은 계급을 상징하는 깃발이 있었다. 대장기와 삼군사명기, 주장인기 등이 그것이다. 임금을 상징하는 깃발로는 좌독기도 있었다. 통수권자인 대통령이 탄 배에 수자기를 올린 것은 대통령을 일선 부대장으로 강등한 것이 된다. 대한민국 격을 떨어뜨리는 심각한 의전 실수를 한 것이다.

해군이 좌승함에 수자기를 올린 데는 그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올해가 정유년인데, 420년 전 조선은 정유재란을 겪었다. 정유재란의 클라이맥스는 이순신이 명나라 진린과 함께 노량에서 퇴각하는 일본 수군을 궤멸시킨 일이다. 관함식 준비단은 반일을 개념으로 잡았기에 이순신을 상징하는 수자기를 좌승함에 올리게 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때 조선 수군이 수자기를 사용했다는 기록은 전무하다. 수자기는 명나라에서 단위 부대 지휘관이 쓰던 것이기 때문이다.

조선은 정유재란 때 명나라와 연합군을 이뤘으니 그때 수자기를 도입했을 개연성은 있다. 그런데 연합군 사령관은 명나라 군인이 했으니, 올렸다면 진린의 배에 올렸을 공산이 크다. 그래서 이순신을 연구하는 이들도 수자기 게양에 대해서는 확실한 의견을 밝히지 않는데, 관함식 준비단은 덜컥 수자기를 좌승함에 올려버렸다. 이순신과 반일에 집착해 해군은 대한민국 대통령을 대장이나 중장 정도로 강등시킨 것이다.


대한제국 시절 사용한 ‘데니 태극기’ (왼쪽) 임시정부에서 사용한 ‘태극기’ [위키피디아]

행사 닷새 전 불참 통보한 중국의 결례


이에 대해 해군은 “봉황기도 함께 올렸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봉황기와 함께 수자기를 올린 것은 더 큰 모순이 된다. 해군 의전에서 총장기와 함께 단위 부대장인 함대사령관이나 전단장 기를 올리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해군은 이순신이 사용했다는 전술비연(해전 시작을 지시하는 연)도 띄웠다고 강조하는데, 이것 역시 대통령이 탄 좌승함을 삼도수군통제사의 배로 격하한 것이 된다. 이순신이 아무리 위대해도 대한민국보다 앞에 있을 수는 없다.

반일과 이순신을 강조하고 싶었다면 좌승함-시승함 대열에 해군사관학교 부두에 정박해 있는 거북선을 끌고 나와 항행하게 했어야 한다. 이번 관함식은 개념에만 집중해 의전을 도외시한 경우다. 자비로 관함식에 다녀온 한 안보 전문가는 “이번 관함식은 이념을 너무 앞세우는 바람에 해군 전통이 무시되고 일본을 오히려 빛냈다. 정치 논리가 군을 덮어버렸다”고 비판했다.

여론을 일으켜 일본을 요란하게 퇴장시킨 것과 비교되는 것이 중국의 조용한 불참이다. 이번 관함식을 앞두고 해군은 중국이 반드시 참여한다고 확언했다. 2009년 중국 관함식 때 우리 군함이 참여한 것에 대한 답방을 약속받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관함식이 있기 두 달 전 국방부가 5개국 해군이 참여하는 세미나를 준비했다 중국의 불참으로 취소한 적이 있다. 중국이 우리의 기대와 다른 행동을 할 조짐을 보인 것이다. 결국 행사 닷새 전 중국은 기습적으로 불참을 통보해왔다. 해군은 중국 측에 유감을 통보했다고 하지만 중국이 불참한 진짜 이유를 밝히는 것은 꺼리고 있다.

오겠다는 일본은 막고, 올 줄 알았던 중국은 놓쳐버렸다. 그런데 행사는 반일을 강조하는 것에 집중해 의전을 망치는 결과를 낳았다. 그로 인해 훼손된 것은 대한민국 국격이다. 그런데도 해군과 국방부에서는 누구 하나 말하려 하지 않는다. 해군은 오히려 행사를 잘 치렀다는 자평을 내놓았다.

해군 관계자에게 “해군 행사인데 왜 해군이 행사의 개념을 잡지 못하고 반일로 잡았느냐. 독도함에 대한제국 태극기를 올리는 발상은 해군이 한 것이냐”고 물었다. 그는 “아무 말도 못 하겠다. 우리도 시키는 대로 한 측면은 있다”고 대답했다.

‘군의 전통과 의전을 무시한 군 행사는 정치 논리에 놀아난 병정놀이가 될 수 있다’는 말이 있다. 국격을 다투는 의전은 작전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정훈 기자 hoon@donga.com

<이 기사는 주간동아 1160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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