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용득의 사는게 코미디]〈4〉아빠의 쓸모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6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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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용득 만화가 그림.
권용득 만화가 그림.
권용득 만화가
권용득 만화가
아내가 홀연히 캐나다로 떠났다. 질풍노도의 시기를 캐나다에서 보냈던 아내는 그 질풍노도의 시기를 만화로 만들던 중이었다. 나는 초안을 읽자마자 지금까지 이런 만화는 없었다며 있는 힘껏 아내의 차기작을 칭송했다. 꼭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초안만으로도 그동안 아내 만화 중 가장 매력적이었고, 아내가 차기작을 순조롭게 완성하기 바랐다. 하지만 작업 속도는 바쁜 아내 마음을 따라주지 않았다. 여러 다른 일이 겹치면서 급기야 1년 남짓 작업을 제대로 하지 못했고, 아내는 걷잡을 수 없는 우울감에 빠졌다. 아내는 자기만의 시간이 필요했다.

덕분에 나는 당분간 아이와 단둘이 지내게 됐고, 다행히 아이는 평소와 다름없다. 오히려 아이는 평소보다 게임하는 시간이 늘어서 기뻐하는 것 같기도 하다. 사실 살림도 아내와 나눠서 할 때보다 효율적이다. 뱀 허물처럼 방바닥에 널브러지기 일쑤였던 아내 옷이 옷장 밖을 나올 일 없다. 입 하나 줄었을 뿐인데 설거지도 딱히 쌓이지 않는다. 아이는 내가 (대충) 해주는 음식마다 맛있게 먹어준다. 게다가 메신저 통화 기능을 이용하면 약 1만616km 떨어져 있는 아내와 얼마든지 실시간 대화가 가능하다.

문득 옛일이 떠올랐다. 어머니가 맹장이 터져서 일주일 가까이 입원한 적 있다. 어머니가 그처럼 장기간 집을 비운 건 처음이었다. 그 무렵 집 안이 숨 막힐 정도로 적막했던 것 말고 기억이 흐릿한데, 아버지가 끓인 된장찌개만큼은 지금도 또렷이 기억한다. 아버지는 학교 갈 채비를 하던 동생과 내게 아침을 먹고 가라고 했다. 아버지 딴에는 그 나름대로 어머니 역할을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아버지가 끓인 그것은 도저히 된장찌개라고 할 수 없었다. 동생과 나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가까스로 참아야 했다.

어머니에게 입원은 어쩌면 휴가였을지 모른다. 식구들 뒤치다꺼리와 돈벌이로 하던 각종 부업으로 쉴 새 없었던 어머니는 몸이 아프고 나서야 자기만의 시간을 갖게 된 셈이니까. 그것도 모르고 그 시절 나는 어머니가 빨리 돌아오기 바랐다. 어머니의 부재와 동시에 속옷이나 양말은 제자리를 잃었고, 아버지가 끓인 된장찌개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다. 졸지에 동생과 나는 맛없는 된장찌개만 계속 먹는 이재민이 되고 말았는데, 그만큼 어머니의 역할이 컸다.

반면 아이에게 아내, 그러니까 엄마의 역할은 얼마나 클까. 아이에게는 엄마가 내킬 때마다 자기만의 시간을 갖는 게 너무 당연하다. 우리 집 속옷이나 양말은 애초에 제자리가 없다. 나는 게임에 열중하던 애한테 짓궂게 말했다. “야, 우리 이대로 엄마 없이 살 수도 있겠다, 그치?” 게임에 열중할 때는 건성으로 대꾸하던 아이가 웬일로 게임을 멈추고 정색하며 말했다. “에이, 그건 좀 에바(지나치다는 뜻의 신조어)지!” 아이에게 엄마는 아무래도 역할이 아닌 존재 자체만으로 존중받는 것 같다. 나도 아빠 말고 엄마 하고 싶다.
 
권용득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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