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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실서 추사 김정희가 만년에 예서로 쓴 비문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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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실서 추사 김정희가 만년에 예서로 쓴 비문 발견

뉴시스입력 2019-05-16 19:51수정 2019-05-16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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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서화가 추사(秋史) 김정희(1786∼1856)가 쓴 것으로 보이는 글씨가 전북 임실에서 발견됐다.

전라금석문연구회와 임실문화원은 임실군 신덕면 수천리에 있는 전주최씨 만육파 후손 최성간(1777∼1850) 묘비를 분석해 앞쪽 글씨를 추사가 썼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16일 밝혔다.

김진돈 연구회장은 “임실군 김철배 학예사로부터 제보를 받아 조사를 진행했다”며 “묘소는 사람들 왕래가 없는데다 사륜차로도 들어갈 수 없는 오지에 있으며, 금석문이 학계에 보고된 적은 없다”고 설명했다.

최성간 묘비 글은 조카인 최한중이 1851년 10월에 지었다. 비석 글씨의 전면은 김정희가 예서체로 썼으며, 뒤쪽은 추사 외가인 가계유씨 가문 유화주(1797?1860)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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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김정희는 1851년 7월에 함경도 북청으로 유배됐기 때문에 당시 글씨를 쓰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보이며, 이듬해 10월 해배 이후 쓴 것으로 추정된다.

비석을 세운 장소는 ‘임실(任實) 하신덕면(下新德面) 율치(栗峙)’로 기록됐다.

김 회장은 “추사의 글씨체를 보면 전서의 필획도 나타나면서 ‘정부인 광산 김씨 묘비’에서 나타나는 추사만의 독특한 좌우 대칭을 균형 있게 조절하는 필획이 나타난다”며 “‘중(中)’자와 ‘사(事)’자 등은 해서(정자체)의 특징이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일반적으로 예서를 쓰면서 해서 필획은 잘 사용하지 않는데, 해서와 예서가 뒤섞이는 현상은 아마도 추사만이 구사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고 덧붙였다.

추사체 연구자인 박철상 박사는 “묘비에 쓴 글씨들은 김정희 선생의 서법 연구에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다”며 “이들은 대부분 김정희 말년의 추사체가 완성되던 시기의 글씨들인데 상대적으로 이 시기의 예서 친필 글씨가 많이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특히 김정희 선생의 묘비 금석문은 서가(書家)로서의 명성에 비해 많지 않은데 유독 전북에 많이 남아 있다”면서 “이번에 또 다시 새로운 비문 글씨가 발견돼 김정희 서법 연구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 박사는 또 “전서, 예서, 해서 등 여러 서체를 섞어놓은 듯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고, 사람 인(人)자는 추사가 말년에 종종 사용하던 형태의 글씨인데, 비문에서는 처음으로 발견됐다”며 “전체적으로 장중하면서도 짜임새가 있어 김정희 선생 말년의 묘비 금석문 대표작이라 할 만하다”고 평가했다.

이와 관련 전북지역은 추사의 대표적 글씨인 선운사 ‘백파선사비’(白坡禪師碑)와 추사와 창암이 합작으로 쓴 ‘정부인광산김씨묘비’, ‘김양성 묘비’, 김기종의 부인 ‘전주 유씨 묘비’가 완주에 있다. 또 임실에는 ‘정려비’ 등이 있다.

연구회와 임실문화원 측은 전북지역에 유독 김정희 글씨가 많은 데에는 추사의 인맥이 작용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김 회장은 “추사와 교유한 초의선사는 효성이 지극했던 임실 지역 인물 김기종과 친했고, 김기종은 최한중과 우의가 두터웠음을 알 수 있다”며 “최한중은 추사와 친교했고, 최성간 묘비를 세우는 데에도 많은 공적을 세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임실=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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