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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유재동]잠깐의 경상수지 적자도 한국엔 보통 문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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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유재동]잠깐의 경상수지 적자도 한국엔 보통 문제가 아니다

유재동 경제부 차장 입력 2019-05-15 03:00수정 2019-05-15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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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동 경제부 차장
수입과 지출의 관점에서 봤을 때 한 나라의 경제발전 단계는 사람의 일생과 비슷한 면이 많다.

경제발전의 1단계는 자본과 기술이 모두 부족해 외국에서 돈을 빌려오고 각종 재화도 수입하는 단계다. 사람으로 따지면 의식주와 학비 등 대부분을 부모에게 의존하는 아동청소년기에 해당한다. 그 다음엔 어느 정도 기술이 생겨 수출을 시작하고 외화도 벌지만, 여전히 벌어온 돈으로 힘들게 외채를 갚아야 하는 시기다. 인생에서는 취직을 하며 월급을 받지만 동시에 내 집 마련을 위해 대출을 갚아 나가는 20, 30대와 비슷하다.

1, 2단계를 졸업하면 선진국에 가까워진다. 3단계에선 산업기술의 고도화로 충분한 외화를 벌고 그 돈으로 해외 자산을 취득해 자본 이득도 보기 시작한다. 연봉이 높아지고 어느 정도 자산도 이뤄 경제적으로 가장 풍족한 40, 50대의 얘기다. 마지막은 소비가 크게 늘며 무역적자가 생기기도 하지만 그동안 취득한 해외 자산 덕분에 국민들이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는 단계다. 정년퇴직으로 노동소득은 줄어도 부동산 임대료나 연금으로 넉넉한 노후를 사는 은퇴 세대가 그렇다.

이 틀에서 보면 한국은 빠른 경제발전을 통해 1, 2단계를 거쳐 지금은 3단계 초입에 들어선 것으로 평가된다. 산업 경쟁력이 비약적으로 발전해 수출로 많은 흑자를 쌓기 시작했지만 해외 투자로 이득을 본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는 뜻이다(2014년 순대외자산국 전환). 미국과 유럽의 많은 선진국들은 이미 마지막 단계에 속해 있다. 1980년대 대표적인 무역흑자 국가(3단계)였던 일본도 지금은 비록 엔화 강세로 무역에서 때때로 손해를 보지만 해외에서 막대한 투자 이익을 누리는 4단계 국가로 발돋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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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단계에서 4단계로 착실히 나가는 게 이상적인 경제발전이라고 본다면 이제 막 3단계에 들어선 한국은 아직 한참은 더 수출에 박차를 가하며 달러 곳간을 채워 나가는 게 좋다. 그런데 요즘 금융시장에선 심상치 않은 소식이 들린다. 내달 초 발표되는 4월 경상수지가 수출 감소의 여파로 7년 만에 적자를 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인생으로 치면 미처 노후 대비가 부족한 40대 초반에 직장에서 잘리거나 연봉이 크게 깎이는 꼴이다.

정부는 경상수지 적자 여부는 그때 가봐야 알 수 있고 설령 적자가 나더라도 일시적인 현상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런 해명을 듣고 안심하기에는 우리 경제의 구조적 문제가 너무 심각하다. 수출은 5개월째 마이너스인 데다 설비 투자가 21년 만에 최악이고 주력 업종의 노쇠화도 뚜렷하다. 더 큰 문제는 인구 구조의 변화다. 생산활동 대신 소비를 많이 하는 고령층이 늘어나면 경상수지 흑자가 줄거나 적자로 돌아설 가능성이 커진다. 한국의 유례없는 고령화 속도를 봤을 때 이번 뉴스는 우리도 만성적인 적자국을 향해 가고 있다는 예고편이 될 수 있다.

지금까지 우리가 월급 따박따박 받는 유능한 직장인이었을지는 몰라도 노년에도 걱정 없이 살 만큼 넉넉한 자산을 쌓았는지는 의문이다. 한때 연간 1000억 달러를 넘었던 기록적인 흑자가 봄눈 녹듯 사라질 날이 다가오고 있다. 우리는 잠깐의 적자도 가벼이 넘길 처지가 아니다.


유재동 경제부 차장 jarrett@donga.com
#경제발전#경상수지 적자#경상수지 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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