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평인 칼럼]여론조작에 가까운 여론조사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4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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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6·13 지방선거 한국당 득표율… 리얼미터 여론조사 결과와 너무 달라
이미선 헌법재판관 후보자 조사에서 질문 바꿔 긍정 여론 유도한 의혹
여론조작 의심받을 짓 하지 말아야

송평인 논설위원
송평인 논설위원
지난해 6·13 지방선거는 여론조사의 정확도, 정확히는 부정확도를 가늠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당시 광역의원 비례대표 정당별 득표는 자유한국당이 27.76%였다. 그러나 선거 전날과 전전날인 11, 12일의 리얼미터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광역의원 비례대표 정당지지율은 한국당의 경우 18.7%로 실제 개표 결과와 9%포인트의 차이가 났다. 여론조사회사로서는 수치스럽게 느껴야 할 차이다.

광역자치단체장의 득표도 한국당 김문수 후보가 바른미래당 안철수 후보와 야당 표를 크게 나눠 가진 서울에서만 20%대의 지지율이 나왔을 뿐 광주 전남 전북을 뺀 거의 모든 지역에서 30∼40%에 이르는 득표를 했다. 선거 직전까지 리얼미터의 정당지지도 여론조사에서 한국당이 얻은 지지율에서 이런 득표율은 예측은커녕 상상도 할 수 없었다. 6·13 지방선거는 리얼미터의 여론조사에 비해서는 한국당이 압도적으로 잘 치른 선거였다.

리얼미터가 매주 발표하는 국정지지도 및 정당지지도 조사는 대부분 ARS를 통해 이뤄지며 응답률은 5% 안팎이다. 5%의 낮은 응답률은 표본이 대표성이 있고 표본의 크기가 크다면 별 문제가 없다. 그러나 리얼미터 조사는 표본 중의 한 전화번호로 몇 차례 전화를 걸어 받지 않을 경우 다른 번호로 대체해 전화하는 ‘대체 걸기’를 통해 목표한 표본 수를 맞춘다. 이것은 표본이 계속 바뀌어 표본의 대표성을 말하기 점점 어려워지는 것을 뜻한다. 표본의 대표성이 무너지는 상황에서의 낮은 응답률은 조사에 거부감이 적은 집단에 특유한 편향이 반영될 여지를 넓힌다.

나는 리얼미터의 국정지지도 및 정당지지도 조사의 수치가 국민들 사이의 실제 여론을 반영한다고 보지 않는다. 다만 절대 수치와 달리 수치의 등락은 상대적인 것이다. 편향이 있는 수치라도 그 편향에 일관성이 있다면 여론의 변화를 어느 정도 반영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절대 수치가 잘못된 체중계라도 체중의 상대적 변화는 잴 수 있다. 그래서 리얼미터 여론조사를 보기는 한다. 다만 잴 때마다 체중계는 같은 것을 사용한다는 조건하에서다.

리얼미터는 최근 이미선 헌법재판관 후보자와 관련해 2차례 여론조사를 해 발표하면서 다른 체중계를 사용했다. 부정적 여론이 압도했던 1차 조사 때와 부정적 여론이 간발의 차이로 앞선 2차 조사 때의 질문이 달랐다. 이것은 여론조사가 아니라 여론조작에 가깝다.

12일 조사에서는 “최근 이미선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가 열렸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이 후보자의 헌법재판관으로서의 자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로 물었다. 이때는 부적격 응답이 54.6%로 적격 응답 28.8%에 비해 압도적으로 앞섰다. 그러나 17일 조사에서는 “여야 정치권이 이 후보자의 임명을 두고 대립하는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은 이 후보자에 대한 청문보고서를 국회에 다시 요청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문 대통령이 이 후보자를 헌법재판관으로 임명하는 데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로 물었다. 이때는 임명 반대 응답이 44.2%로 임명 찬성 응답 43.3%에 비해 소폭 높게 나왔을 뿐이다.

2차 조사의 질문은 불필요하게 장황하다는 것만으로 질문으로서는 결격인 데다 바로 그 불필요하게 장황한 부분에서 문 대통령을 두 차례 등장시켜 문 대통령 지지자의 호응을 유도하고 있다. 특정한 한 시점에서의 이 후보자에 대한 여론이 아니라 두 시점에서의 여론 추세를 비교해볼 작정이었다면 질문을 통일시켰어야 한다. 여론조사 회사가 질문을 바꾸고도 논란을 예상하지 못했다면 어리석은 것이고, 논란을 예상하고도 질문을 바꾼 것이라면 의도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리얼미터가 언제부터인가 국정지지도 및 정당지지도 조사를 할 때 그때그때 이슈가 되는 문제에 대해서도 질문을 하나 더 보태 조사하기도 한다. 정당지지도 및 국정지지도 조사는 약 2500개의 표본을 조사하지만 이슈 조사는 약 500개의 표본을 조사한다. 같은 응답률일 때 표본의 크기가 작으면 정확도는 떨어진다. 탈(脫)원전 같은 이슈는 전문가조차 일도양단(一刀兩斷)해서 대답하기 어려운 것으로 여론조사 대상으로 적합하지 않다. 정확도는 더 떨어지는데 여론조사에 적합하지 않은 것까지 조사하고 있으니 과감하다고 해야 할지 무식하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6·13 지방선거#자유한국당#이미선#여론조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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