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아 단독]스페인 北대사관 습격 에이드리언 홍 창, 혁명가인가 몽상가인가

  • 신동아
  • 입력 2019년 4월 16일 14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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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우병집회에서 ‘북한 인권’ 피켓 든 청년, 혁명가 되다
● 스무 살 때 ‘북한해방’ 조직
● ‘리비아 봉기’ 참여
● 직접 구출한 탈북자들과 동지적 관계
● 북한 정권 전복 목표
● 혁명가인가, 몽상가인가

홍으뜸(왼쪽)과 자유조선 로고.
홍으뜸(왼쪽)과 자유조선 로고.
“으뜸이요? 지금은 수염을 길렀던데 젊을 적엔 아주 잘생겼었어요. 키도 크고요. ‘링크’의 리더였습니다. 똑똑하고 말발이 좋았죠. 리더십도 있었습니다. 처음 만난 게 2007년이니 벌써 12년 전이네요. 북한 인권에 관심 많은 총명한 젊은 친구였어요.”

2000년대 초중반 중국에서 탈북민을 구출한 J씨는 ‘홍으뜸’을 이렇게 기억했다.

2004년 ‘북한해방’ 조직

홍으뜸은 2월 22일 스페인 주재 북한대사관을 습격한 에이드리언 홍 창의 한국 이름이다. 35세. 예일대를 다녔다. 스페인 경찰에 따르면 멕시코 국적이다. 미국인으로 기억하는 이가 많다. 북한대사관에 침입한 10명 중 신원이 확인된 사람은 홍으뜸, 샘 류(Sam Ryu), 이우란(Woo Ran Lee) 3명이다.

홍으뜸은 2004년 미국에서 북한인권단체 링크(LiNK·Liberty in North Korea·북한해방)를 조직해 북한 체제 변혁 운동을 시작했다.

2000년대 중반부터는 중국에서 탈북자를 구출하는 일에 직접 뛰어들었다. 탈북자를 미국으로 망명시키면서 뉴욕, 로스앤젤레스 등에서 북한 인권 문제를 환기하는 캠페인을 벌였다. 중국에 탈북민 보호 시설 45개를 세우겠다는 계획도 세웠으나 실패했다. 몽골 정부에 탈북자 난민촌을 건설하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북한민주화운동본부에서 활동한 A씨는 “홍으뜸이 2006년 중국 공안에 체포돼 억류된 일도 있다”고 했다.

홍으뜸은 노무현 정권 때 미국에서 잇따라 시위를 조직해 한국 정부의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표결 기권을 강도 높게 비난했다. 2008년 광우병촛불시위가 한창일 때는 서울광장에서 피켓을 들고 침묵시위를 했다. 검은색 테이프로 입을 가린 채 손에는 ‘북한 인권에도 관심을 가져주세요. 어린이들이 굶어 죽고 있습니다’라는 글귀가 적힌 팻말을 들었다.

그가 주도해 설립한 링크는 국제적 연대를 강조했다. 설립 후 1년도 지나지 않아 미국, 캐나다, 일본, 유럽, 호주 등에 70개 지부를 꾸렸다.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 보고서 작성에 참여하면서 세를 키웠다.

링크는 2004년 10월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서명한 북한인권법의 수혜를 봤다. 북한인권법은 △북한 주민 인권 신장 △북한 주민 지원 △탈북자 보호 등 3개 범주로 구성됐다. 북한인권법 제정 이후 탈북자의 미국 망명이 봇물 터지듯 늘어났으며 북한 인권 문제가 부각됐다.

북한인권법은 2005~2008년 2400만 달러 한도의 예산 지출을 승인했는데, 중국에서의 탈북자 지원에 2000만 달러, 자유아시아방송(RFA)·미국의 소리(VOA) 등 대북방송 지원에 200만 달러, 북한 민주화를 지원하는 비정부기구(NGO) 지원에 200만 달러가 배정됐다. 북한인권법에 따른 미국 정부의 지원에 덧붙여 한국계 기독교인들도 링크에 힘을 보탰다. 북한동포사랑한인교회연대(KCNK) 등이 링크를 후원했다.

중국을 거점으로 북한 내 반(反)체제 조직 ‘횃불’을 조직하다가 2012년 중국 공안에 체포된 김영환 씨는 이렇게 말했다.

“링크의 명목상 목표는 북한 인권 문제 해결이었으나 실제 목표는 북한 민주화였다. 홍으뜸은 5~6년 전 링크를 떠났다.”

홍으뜸이 링크를 떠나 2013년 탈북자들과 함께 조직한 게 ‘자유조선’이다. 중국에서 직접 구출한 탈북자들과 동지적 관계를 맺은 것이다.

“CIA가 김정남 관리”

‘자유조선’이 습격한 스페인 주재 북한대사관 앞에서 4월 7일 자유북한운동연합 회원들이 전단을 살포하고 있다(왼쪽). 3월 10일 ‘자유조선’은 말레이시아 주재 북한대사관에 낙서와 자유조선 로고를 남겼다.
‘자유조선’이 습격한 스페인 주재 북한대사관 앞에서 4월 7일 자유북한운동연합 회원들이 전단을 살포하고 있다(왼쪽). 3월 10일 ‘자유조선’은 말레이시아 주재 북한대사관에 낙서와 자유조선 로고를 남겼다.
2017년 2월 13일 말레이시아에서 피살된 김일성의 장손(長孫) 김정남의 아들 김한솔이 같은 해 3월 8일 유튜브 영상에 등장했다. 김한솔은 “내 아버지는 며칠 전 살해당했고, 나는 지금 어머니, 여동생과 함께 있다”고 영상에서 말했다.

김한솔은 40초 분량의 영상에서 피신을 도와준 대상에 감사 인사를 전했다. 감사 대상을 지목한 장면은 묵음으로 처리됐으며 입 모양에 검은 칠을 했다. 김한솔 피신을 도운 이들은 홈페이지를 통해 자신들을 천리마 민방위(Cheollima Civil Defense)라고 소개했다.

이 영상을 통해 자유조선이 ‘천리마 민방위’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자유조선은 e메일 주소(CCDprotection@protonmail.com)를 공개했으며 한국어와 영어를 병기한 성명도 발표했다. 전직 정보당국 고위인사는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김정남에게 돈을 대주며 관리했다”면서 “미국 정보기관이 피신 형태로 이뤄진 김한솔 망명에 개입한 것으로 보는 게 가장 설득력이 있다”고 말했다.

김한솔은 1998년 미국으로 망명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이모인 고용숙의 뉴욕주 집 인근에서 미국 연방수사국(FBI) 보호 아래 지내는 것으로 알려졌다.(동아일보 3월 28일자 참조).

링크를 떠나 자유조선을 세운 홍으뜸은 북한에서 관료를 지낸 탈북민으로 구성된 망명 임시정부 수립에 관심을 가졌다. 북한 외교관 출신으로 한국으로 망명한 인사에게 임시정부 수립에 관한 의견을 묻기도 했다.

자유조선은 올해 3월 1일 자신들이 북한 임시정부라고 선언했다. 3월 10일에는 말레이시아 주재 북한대사관 담장에 ‘자유조선 우리는 일어난다!’ ‘김정은 타도’ ‘련대혁명(연대혁명)’ 등의 글귀를 적었으며 자유조선 로고를 남겼다.

“폭풍전야 침묵 지킬 것”

‘자유조선’은 3월 20일 한 남성이 김일성, 김정일 초상화를 벽에서 떼어내는 동영상을 공개하며 북한에서 촬영했다고 주장했다. [자유조선 홈페이지 동영상 캡처]
‘자유조선’은 3월 20일 한 남성이 김일성, 김정일 초상화를 벽에서 떼어내는 동영상을 공개하며 북한에서 촬영했다고 주장했다. [자유조선 홈페이지 동영상 캡처]
자유조선은 북한 체제 타도를 추구하는 한국계 인사들과 탈북자들이 연대해 결사한 단체다. 북한 출신 조직원을 통해 북한 내부 인사들과 연락체계도 갖췄을 가능성이 높다. 한국의 북한 민주화 단체들도 북한 내부에 망을 갖고 있다. 자유조선은 3월 31일 ‘우리 조직의 현재 입장’이라는 성명을 통해 다음과 같이 밝혔다.

①우리는 자유조선의 도움으로 북한을 탈출해 세계 각국에 있는 동포와 결집한 탈북민의 조직이다 ②우리는 행동으로 북한 내 혁명 동지들과 함께 김정은 정권을 뿌리째 흔들 것이다 ③북한 정권을 겨냥하는 여러 작업을 준비 중이었지만 언론의 온갖 추측성 기사들의 공격으로 행동소조들의 활동은 일시 중단 상태다 ④우리는 엄격한 보안상 한국 거주 중인 그 어떤 탈북민과도 연계를 맺거나 심지어 전화통화를 한 적이 없다 ⑤언론은 우리 조직의 실체나 구성원에 대한 관심을 자제해달라. 우리의 더 큰 일들이 앞에 있다 ⑥우리는 김씨일가 세습을 끊어버릴 신념으로 결집된 국내외 조직이다.

자유조선은 4월 1일 “우리는 지금 큰일들을 준비하고 있다. 그때까지 우리는 폭풍전야의 침묵을 지킬 것”이라고 밝혔다. 홍으뜸이 만든 ‘조선연구원(Joseon Institute)’ 홈페이지도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접속할 수 있게 바뀌었다.

홍으뜸이 탈북자 구출과 북한 민주화운동을 하는 과정에서 CIA나 국가정보원과 협력 관계를 맺었을 소지도 있다.

자유조선은 스페인 주재 북한대사관 습격 때 “핵과 무기 개발 관련 정보를 내놓으라”면서 직원들을 폭행·회유했으며 PC·휴대전화 등의 비품과 서류, 폐쇄회로 TV 영상이 담긴 하드디스크를 훔쳤다. 미국 NBC는 북한대사관에 난입해 빼돌린 정보를 FBI에 넘겼다는 자유조선의 주장이 사실이라고 보도했다.

‘아랍의 봄’에도 참여

전직 정보당국 고위인사는 “홍으뜸이 미국 정보기관의 에이전시(agency) 역할을 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면서 “낮은 단계에서 정보관들과 협조 관계를 구축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홍으뜸은 2010년 말 중동 지역에서 불붙은 ‘아랍의 봄’ 때는 리비아에서 활약했다. 2015년 아산정책연구원이 주관한 토론회에 참석해 아랍의 봄과 북한 급변 사태에 대해 발표한 적도 있다. 북한에서 리비아식 봉기를 일으키겠다는 구상을 가진 것으로 해석해볼 수 있다.

홍으뜸은 컨설팅 회사 ‘페가수스’를 설립해 대표를 맡았다. 페가수스는 중동·북아프리카 국가와 관련한 컨설팅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동·북아프리카 컨설팅에 미국 정보기관이 관여했을 소지도 있다.

홍으뜸은 2014년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 기고문을 통해 “북한에 의미 있는 야당과 시민사회가 필요하다”면서 “탈북민을 미래의 지도자로 키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2016년 1월 샌디에이고 유니언 트리뷴 기고문에서는 “한국이 북한의 주권을 자동으로 넘겨받는 게 아니다. 북한의 누구도 청와대에 투표하지 않았다”고 했다. 전직 정보당국 고위인사는 “자유조선이 견고한 체계를 갖춘 조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면서 “몽상가들이라고는 할 수 없겠으나 아직까지는 ‘이벤트형 조직’으로 봐야 한다”고 평가했다.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이 기사는 신동아 2019년 5월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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