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임우선]규제에 막힌 한국 대학, 블랙홀급 연구는 언제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4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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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우선 정책사회부 기자
임우선 정책사회부 기자
이달 10일은 복잡 미묘한 감정이 교차했던 날이다. 안타까움과 경이로움, 부러움과 허탈함이 뒤섞여 밀려왔다. 이유는 그날 있었던 두 가지 일 때문이다.

먼저 이날은 규제에 성장을 억제당하고 있는 서울대 컴퓨터공학부의 현실을 보도한 날이었다. 요약하면, 수도권 인구 과밀을 막기 위해 37년 전 만든 ‘수도권정비계획법(수도권법)’ 때문에 국내 최고 대학이라는 서울대마저 총정원의 규제를 받고 있다. 또 이 때문에 가장 전도유망한 분야라고 여겨지는 컴퓨터공학부조차도 십수 년째 매년 주전공생을 55명밖에 못 키운다는 내용이었다.

배우고 싶어 하는 학생들이 줄을 서고, 가르치고 싶다는 교수들이 대기 중인데도 인재를 못 키우는 국내 대학의 현실을 글로벌 차원에서 보면 더 심각했다. 세계 컴퓨터과학 분야 대학평가 순위에서 서울대는 116위였다. 우리나라 1년 고등교육 전체 예산은 세계 컴퓨터과학 분야 1위인 중국 칭화대 예산의 두 배밖에 안 됐다. 돈도 얼마 안 주고, 인재도 마음껏 못 뽑게 하면서, 대학의 질주를 막는 규제만 주렁주렁 달아 놓은 게 우리 정부의 고등교육 전략처럼 느껴졌다.

더욱 절망적인 건 교육부조차 이런 문제를 ‘어떻게든 해결해야 할 내 일’로 여기지 않는 분위기였다는 점이다. 어디에 물어도 ‘수도권법은 국토교통부 소관’이라는 반응이었다. 이런 나라에 미래가 있을까.

같은 날 오후 10시에는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찍은 블랙홀의 모습이 공개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미국 연구진을 주축으로 한 국제연구팀의 작품은 경이로웠다. 이런 멋진 일을 생각해낸 주인공들이 궁금해 정보를 찾다가 아이디어를 냈다는 매사추세츠공대(MIT) 대학원생 케이티 바우먼의 3년 전 TED 영상을 보게 됐다.

그녀는 자신이 추진하는 블랙홀 촬영 프로젝트에 대해 무척이나 열정적인 어조로 설명을 이어갔다. 내용보다 그 태도가 더 인상적일 정도였다. 블랙홀과 우주에 대해 말하는 다른 TED 강연자들도 마찬가지였다.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의 앤드리아 게스 교수, 행성과학자 캐럴린 포르코, 스탠퍼드대 물리학 교수 패트리샤 버챗, 다트머스대 물리천문학과 교수 제디다 이슬러…. 이들 모두의 공통점은 정말로 즐거워 보였다는 점이다. 시쳇말로 불만과 피로에 ‘절어 있는’ 국내 대학원생이나 교수들과는 ‘아우라’가 달랐다.

국가의 산업 경쟁력과 직결되는, 사회적 수요가 엄청난 컴퓨터공학 분야조차 마음껏 키우지 못하는 한국 대학의 오늘을 생각하면, 지구로부터 5500만 광년 떨어진 ‘블랙홀까지’ 저토록 안정적으로, 즐겁게 연구하는 미국 고등교육 여건이 부럽기만 했다. 이들이 초원 위를 자유로이 뛰노는 말이라면, 국내 연구진은 비좁은 축사에 갇힌 소 같은 신세나 다름없었다.

수년 전 IBM의 브레인에 해당하는 미국 왓슨연구소에 갔을 때, 현지에서 만난 한 한국인 연구자는 혹시 나중에라도 한국에 돌아올 생각이 있느냐는 기자의 물음에 고개를 저으며 이렇게 말했다. “아무리 좋은 자리여도 한국에선 결코 지금 같은 자유로운 연구 환경을 보장받을 수 없을 거예요. 당장 결과가 없으면 추궁당할 거고요.” 슬프게도, 그의 지적은 오늘도 유효해 보인다.
 
임우선 정책사회부 기자 imsun@donga.com
#블랙홀#규제혁신#mit#서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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