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하임숙]‘보잉 공포’로부터 우리가 배울 일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3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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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임숙 산업1부장
하임숙 산업1부장
“위대한 신이시여, 기적을 내려주소서….”

이 기도를 끝으로 비행기는 레이더에서 사라졌고, 조종실 음성기록장치는 끊겼다. 비행기는 5000피트(약 1.5km) 상공에서 인도네시아 자바해에 추락했고 탑승객은 전원 사망했다.

지난해 10월 29일(현지 시간) 이륙한 지 10여 분 만에 추락한 라이언에어의 조종실 음성기록장치 내용이 얼마 전 사고 조사 책임자들의 전언으로 공개됐다. 이 조사관들에 따르면 절망한 조종사는 할 수 있는 일이 기도밖에 없었고, 이미 기적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끔찍한 항공사고가 일어난 지 5개월 만인 이달 10일 에티오피아에서 다시 비행기가 추락했고, 또 전원이 사망했다. 두 번째 사고가 일어나자 전 세계 항공사들이 일제히 보잉737 맥스8 기종의 주문을 취소하거나 연기했다. 두 사고의 공통점이 보잉737 맥스8이었기 때문이다.

장거리를 이동할 때 누구나 손쉽게 이용하는 수단이 비행기라서, 한국에서도 같은 기종이 운항되고 있었기에 많은 사람들이 공포를 느끼고 있다.

보잉737은 1968년 루프트한자가 처음 서비스를 시작한 이후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상업용 비행기다. 이렇게 오래, 가장 많이 팔린 비행기에 왜 갑자기 문제가 생겼을까(물론 보잉사는 여전히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다).

보잉737 맥스8은 보잉737-800을 업그레이드한 차세대 모델이다. 저비용항공사(LCC)들이 늘면서 맞춤형으로 디자인했다고 한다. 엔진이 800보다 훨씬 커졌다. 이에 따라 ‘연료소비효율이 14% 정도 높아졌고 기름을 덜 먹어 같은 비용으로 더 멀리 난다’는 게 보잉사의 설명이었다. 실제 맥스8의 운항거리는 800보다 1000km 더 길다. 적은 비용으로 더 멀리 간다는데 어느 항공사가 이 비행기에 매력을 느끼지 않았을까. 2017년 이후 얼마 전까지 전 세계에서 371대가 운항됐고, 5000대 이상 주문이 밀려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고 원인은 앞으로 더 조사해야 밝혀지겠지만 안전을 위해 마련한 장치가 오히려 위험을 높였다는 의심이 지금은 가장 유력하다. 항공기는 앞부분(기수)이 기류보다 허용 한도 이상 들리면 양력을 잃고 추락한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맥스8은 일정 조건일 때 기수를 자동으로 낮춰주는 기능을 새로 적용했다. 그런데 아무 때나 이 장치가 작동해 기수가 낮아지는 일을 맥스8 조종사들이 경험했다는 증언이 나오고 있다. 추락한 라이언에어는 그 짧은 10여 분 동안 20차례 이상이나 이런 일이 있었다는 게 뉴욕타임스 보도다.

최신 항공기에 자동화 장치가 날로 늘어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하지만 맥스8에 굳이 이 장치를 도입한 이유를 슈퍼 엔진 때문이라고 보는 시각이 있다. 엔진이 좋아지면서 기수가 들어올려질 위험이 더 생겼고,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보잉만 아니라 항공기 제조사들은 통상 수십 년 전 개발한 뼈대를 그대로 쓰면서 일부만 수정하는 방식으로 비행기를 업그레이드한다는 게 항공업계의 이야기다. 기술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비용 때문이다. 자사 개발비도 그렇지만 항공기를 사가는 운항사들이 조종사, 정비사를 재교육하는 데 들일 비용도 아낄 수 있어서다. 새 비행기를 개발하려 해도 대량 구매하는 운항사가 반대해 좌절되는 일도 있다고 한다.

전체 시스템을 고쳐야 할 일을 부분만 고칠 때 종종 문제가 생긴다. 엔진처럼 중요한 부분을 바꿀 때 비행기를 아예 새로 디자인했다면 안전성은 훨씬 더 높아지지 않았을까. 지난해 크게 문제가 됐던 BMW 화재 사고도 배기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해 일부 고친 엔진 부위에서 문제가 생겼다는 게 국토교통부의 결론이었다.

하임숙 산업1부장 artemes@donga.com
#보잉737 맥스8#항공사고#비행기 추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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