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지자체, 인구유출 막기위해 선심복지 경쟁… 복지부는 ‘뒷짐’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3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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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현금복지 4300억 남발


인천 서구는 지난해 5월 총 6억5500만 원을 들여 넷째아이를 낳은 관내 가정에 500만 원을 주겠다며 ‘출산 장려금 지원 사업’ 신설을 보건복지부에 요청했다. 서구와 인접한 계양구 역시 이에 질세라 넉 달 뒤 “셋째만 낳아도 720만 원을 주겠다”며 예산 16억8700만 원을 책정했다. 복지부는 두 사업 모두 동의했다.

○ 복지부, 현금복지 제동권 포기

지난해 지방자치단체가 현금 살포성 복지 사업을 전년 대비 3배 이상 늘릴 수 있었던 것은 정부가 지자체의 복지 사업에 제동을 걸 수 있는 권한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지자체는 2013년 1월 전면 개정된 사회보장기본법에 따라 사회보장 제도를 신설하거나 변경할 때 반드시 복지부 장관과 사전에 협의해야 한다. 지난해 1월 이전에는 복지부는 타당성이 낮거나 기존 사업과 중복되면 제도 변경을 요구하거나 ‘부동의(不同意)’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복지부는 지난해 1월부터 지침을 바꿔 ‘부동의’ 결정 자체를 없앴다. 지자체의 자율성을 보장한다며 ‘협의 완료’ 또는 ‘재협의’ 결정만 내리고 있는 것이다. 이는 복지부의 적폐청산위원회 격인 ‘조직문화 및 제도개선위원회’가 2017년 11월 출범하며 ‘지자체 사회보장 자치권 강화 방안 마련’을 적폐 청산 과제로 정한 데 따른 것이다.

사회보장위원회에 따르면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정부와 지자체가 협의 절차를 완료한 복지 제도(신설 및 변경)는 총 3689건이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전에는 협의 대상 1994건 중 복지부의 반대로 제동이 걸린 사업은 393건(19.7%)이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이후 협의가 완료된 1695건 중에선 복지부가 부동의나 대안 권고, 재협의 결정을 내린 경우는 143건(8.4%)에 그쳤다. 자유한국당 김승희 의원은 “복지부가 스스로 제동권을 포기한 이후 지자체가 현금 복지를 대폭 확대해 지방재정 자립도와 지역 균형발전을 악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 복지부와 지자체 협의 결과도 제각각

지난해 지자체가 신설한 현금성 복지 사업 중에는 효과를 기대하기가 쉽지 않은 것들이 적지 않다. 인천 남구는 성매매 여성 1명당 생계유지비 등 명목으로 2260만 원을 지원하는 ‘성매매 피해자 자활지원’ 사업을 신설했다. 소외된 여성들을 긴급지원하려는 긍정적 취지에도 불구하고 “현금 지원이 수혜 여성들의 탈(脫)성매매를 보장할 수 있느냐”는 논란이 일었다. 바우처나 자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목적에 부합하지 않겠느냐는 지적인 것이다.

정부가 이미 시행하는 제도와 유사한데도 복지부의 협의 결과가 제각각인 점도 논란이다. 65세 이상 1만1000여 명에게 월 10만 원의 지역화폐를 주는 서울 중구의 ‘어르신 공로수당’은 기초연금(65세 이상에게 월 25만 원)과 중복된다는 이유로 복지부가 재협의를 요구했다. 반면 강원도가 신생아에게 4년간 월 30만 원을 주겠다며 내놓은 ‘출산 장려수당(총 예산 148억8700만 원)’은 지난해 전국적으로 도입한 아동수당(만 6세 미만에게 월 10만 원)과 유사한데도 복지부 협의를 통과했다.

○ “지방의회의 견제 역할 살려야”

현금성 복지를 확대하는 정책 자체를 비난할 수는 없다는 지적도 있다. 우리나라의 복지 지출은 국내총생산(GDP)의 11.1% 수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20%)에 한참 못 미친다. 인구가 줄어 소멸 위기에 처한 지자체 입장에선 출산 및 결혼 장려금이라도 내놓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문제는 복지 지출의 속도와 효과다. 국민연금연구원에 따르면 2000∼2015년 OECD 회원국의 연간 평균 복지 지출 증가율은 1.9%로 경제성장률과 비슷한 수준이었지만 한국은 복지 지출 증가율이 연평균 7.7%로 경제성장률(4.3%)을 훌쩍 뛰어넘었다.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자체들은 중앙 정부가 전국적으로 확대한 현금성 복지의 지방 분담금(약 23%)을 내는 것도 버거운 상황에서 신규 복지 경쟁에 내몰리고 있다.

숭실대 사회복지학과 정무성 교수는 “지방의회와 주민이 스스로 현금성 복지 확대를 견제할 수 있도록 지역 내 사회보장 협의기구를 활성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건희 becom@donga.com·김호경 기자
#복지부#현금#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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