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 칼럼]지금까지 이런 장관후보는 없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3월 17일 21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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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부 장관이 똘똘한 아파트 3채? 노무현 당선 뒤 투기에 꼼수증여까지
“주택시장 안정시킬 적임자”라는 靑… ‘내로남불 정권’의 결정판인가
‘정의로운 국가’에 치명타 날릴 판

김순덕 대기자
김순덕 대기자
이 정부가 ‘충격체감의 법칙’을 아는 것 같다. 처음에는 충격적이어서 분노가 솟구친 일도 자꾸 반복되면 처음처럼 반응하지 않는 게 충격의 한계효용체감법칙이다.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로 발표된 최정호 전 국토부 차관 인사는 한계를 넘는다. 분당과 잠실, 세종시에 똘똘한 아파트를 3채나 가진 다주택자를 “주택시장의 안정적 기조를 유지하면서 주거복지를 실현할 적임자”라고 발표한 청와대도 낯이 보통 무감각해진 게 아니다.

이명박 정부 시절, 한 장관 후보자는 2006년 부인이 서울 창신동의 ‘쪽방촌 딱지’를 샀다가 자진사퇴해야 했다. 야당이었던 민주당은 “참여정부가 부동산 투기 근절에 매달리던 2006년 고위공직자가 투기를 했다는 사실에 국민의 실망과 분노가 하늘을 찌른다”며 맹비난했다. “이명박 정부의 친서민 행보에 치명타를 입혔다”고 결정타를 날린 의원이 노영민 대통령비서실장이었다.

그래도 보수정부에서 부동산투기 의혹으로 낙마한 주무부처 장관 후보자는 없었다. 더구나 지난주 서울의 고가 아파트뿐 아니라 지방 중소아파트까지 마구잡이로 대폭 올린 공동주택 공시 예정가격이 발표됐다. 국민이 가장 예민하게 반응하는 부동산문제, 세금폭탄에 국토부 장관 후보자가 온몸으로 불을 지른 형국이다.

물론 그의 명의로는 국토부 차관 시절 공무원 특별공급으로 당첨된 세종시 아파트(155.87m²) 분양권 하나밖에 없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부터 “부동산 경기부양책은 대단히 잘못됐으므로 (집값을) 확실히 잡아야 한다”고 주장할 만큼 투기가 심각했던 2003년 초. 부인 명의로 잠실1단지 딱지(조합원 권리)를 사고 세금탈루 의혹까지 받는 것은 가볍게 봐줄 수 없다.

최 후보자는 지난달 장관 인사 검증에 들어가자 살고 있는 분당 아파트(84.78m²)를 장녀 부부에게 절반씩 쪼개 증여한 뒤 보증금 3000만 원, 월세 160만 원에 임대차 계약을 하고 그 집에서 그냥 사는 절세의 묘수를 보였다. 정부가 투기를 막고 집값을 잡겠다고 보유세를 올리고 다주택자 가산세까지 물린다는데 주무부처 장관 될 사람이 꼼수로 피해간 것이다.

아무리 좌파정권이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 해도 공무원은 달라야 한다. 정책을 내놓으면 솔선수범은 못 해도 어기진 말아야 하고, 못 지킬 정책은 막아내야 책임 있는 관료다.

정치인 출신 국토부 장관이 “계속 오르는 집값을 이대로 두면 서민들이 내 집 마련의 희망을 가질 수 없다”며 사는 집 아니면 좀 파시라고 강조한 게 2017년 8월이었다. 작년까지 전북 정무부지사이던 최 후보자는 한 번도 살지 않은 잠실엘스(59.97m²)가 13억 원을 오르내리는데도 팔지 않았다. 2016년 말 공무원 특별분양받은 복층 펜트하우스는 완공도 안 됐는데 웃돈이 7억 원 넘게 붙어 공무원 아닌 국민을 배 아프게 한다.

그런 사람이 “실수요자 중심의 주택시장 안정화를 계속 유지하겠다”고 포부를 밝힌 건 소나 웃기는 일이다. 집 가진 사람들은 되레 강남, 분당, 세종시 똘똘한 아파트값이 더 오를 것이고, 보유세나 거래세는 필시 내릴 것이라며 반색을 한다. 쪼개 증여하면 세 부담이 줄어드는 세(稅)테크까지 알려줘 고맙다는 사람도 있다.

최 후보자의 딸과 사위는 좋겠다. 공직자 부친에게 보증금 받아 증여세 내고, 다달이 생활비 보조도 받게 된 30대 초반 금수저가 대통령 지지율 하락에 기여할까 걱정이다. 참여정부 때나 지금이나 고위공직자가 투기에, 부(富)의 대물림과 꼼수 절세에 열심인데도 민주당에서 “국민의 실망과 분노가 하늘을 찌른다”는 소리가 없는 건 오만이 하늘을 찔러서라고 봐야 한다.

조국 민정수석이 인사 검증에서 이 모든 걸 몰랐다면 무능이 재차 확인된 것이고, 알았다면 오만방자를 넘어 불충(不忠)이다. 최 후보자가 문재인 정부의 ‘정의로운 국가’ 행보에 치명타를 입히고 있다는 사실을 노 비서실장이 인식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마이동풍(馬耳東風)을 즐기다 말(馬)이 된 정부는 처음처럼 분노하지 않는 국민을 보며 희희낙락할지 모른다. 분노를 지나 조롱받는 상황이 됐다. 집권세력이 체제의 인위적 안정성과 실제의 취약함을 구분하지 못하는 때가 위험한 법이다.

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최정호#다주택자#부동산 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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