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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병으로 죽을 위기 넘기고…70세에 ‘아마추어 테니스 최강자’ 된 사연은[양종구 기자의 100세 시대 건강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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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병으로 죽을 위기 넘기고…70세에 ‘아마추어 테니스 최강자’ 된 사연은[양종구 기자의 100세 시대 건강법]

양종구기자 입력 2019-03-16 14:00수정 2019-03-16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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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기춘 회장이 경기 남양주테니스클럽에서 테니스를 치고 있다.
성기춘 한국테니스진흥협회(KATA) 회장은 한국 나이로 70세이지만 40, 50대와 테니스를 겨뤄도 웬만해선 지지 않는다. 30년 넘게 철저한 관리로 최고의 기량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테니스 동호인들은 그를 “챔피언 중 챔피언”이라고 부른다. 그는 중병으로 생을 마감할 위기를 넘긴 뒤 체력 관리를 위해 테니스에 빠져 들었고 ‘대한민국 아마추어의 최강자’가 됐다.

“결혼하고 1년 뒤인 1982년 사실상 죽다 살아났다. 간 질환이었는데 당시 서울대병원 최고의 간 전문의인 김정룡 박사(작고)도 고칠 수 없다고 가족들에게 통보했다. 7개월간 입원해 있었고 입원 중에 아들이 태어났다. 아내가 어리니 큰 형님이 아들을 양자로 들이고 재출가 보낸다고 하는 등 내가 죽는 것으로 알고 모든 것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기적적으로 살았다. 김정룡 박사는 1000분의 1의 확률을 뚫고 살아났다고 했다.”

살기는 했지만 2년여를 아무 일도 못하고 지냈다. 73kg이던 체중이 60kg으로 주는 등 기력이 너무 떨어졌다. 그 때 테니스가 보였다.


성기춘 회장이 경기 남양주테니스클럽에서 포즈를 취했다.
“고등학교 친구가 집 근처에 살았는데 테니스를 치러 다니고 있었다. 내가 보긴 잘 치지도 못했다. 그런데 그렇게 재밌어 했다. 난 중고교 시절 탁구 선수를 했기 때문에 테니스를 하면 잘 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친구 따라 나섰고 레슨을 받으면서 테니스에 입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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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여름일 이었다. 간 질환에서 회복한 뒤 ‘1988년 서울올림픽은 보고 죽자’가 1차 목표였다. 스포츠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 탁구 유망주였다. 우여곡절 끝에 고교 3학년 때 그만 두긴 했지만…. 탁구를 치는 감각이 살아나면서 테니스도 잘 치게 됐다. 초보지만 게임 운영도 잘 했다. 코치가 대회에도 자주 내보냈다. 그러면서 테니스의 매력에 빠져 들었다.”

건강도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성 회장 테니스 인생의 변곡점은 1992년. 당시 주원홍 감독(63·전 대한테니스협회 회장·현 서울시체육회 수석부회장)이 동호인들을 위해 슬레진저컵을 개최했다. 동호인들 사이에서 최고로 큰 대회였다.

성기춘 회장이 경기 남양주테니스클럽에서 테니스를 치고 있다.
“우승 상금만 150만 원이었다. 지금으로 말하면 1500만 원보다 더 큰 액수다. 그 대회에서 우승하면서 동호인테니스계에 이름을 알렸다. 당시 세계 최고 권위의 윔블던테니스대회 참관 기회가 주어였다. 정말 꿈같은 일이었다. 그 때 ‘나도 돈을 벌면 동호인들을 위해 큰 테니스대회를 열어야 하겠다’는 꿈을 갖게 됐다.”

슬레진저컵 우승으로 테니스에 대한 애정은 더 커졌고 1995년부턴 주원홍 감독과 신충식 대한테니스협회 동호인위원회 위원장 등과 함께 동호인 랭킹을 만드는 데 힘을 보탰다.

“동호인랭킹은 한국동호인테니스협회의 시작이다. 처음엔 대한테니스협회 산하에서 움직이다 2001년 한국동호인테니스협회가 발족했고 신충식 위원장이 초대회장을 맡았다.”

탤런트였던 신충식 회장(77)은 2006년까지 회장을 맡은 뒤 2007년부터 성 회장에게 바통을 넘겼다. (사)한국동호인테니스협회는 2007년 (사)한국테니스진흥협회로 이름을 바꿨다.

당시 테니스 인기가 좋았다. 1995년 전국지방자치제가 시작되면서 각 지자체가 축제 때 테니스대회를 만들었다. 대회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성 회장은 동호인랭킹에서 1996년부터 2002년까지 7년간 ‘넘버 1’을 지키기도 했다.

“동호인테니스대회는 단식이 아닌 복식으로 랭킹 점수를 준다. 수준별로 전국 대회 성적에 따라 랭킹 포인트를 주는 것이다. 솔직히 7년간 랭킹 1위를 지키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9주 연속 우승하기도 했다. 2001년에는 한해에 13개 대회에서 우승한 적도 있다. 지금까지 전국대회 140회 우승했다.”

주방기기 사업을 하던 성 회장은 서울에서 가장 테니스 잘 치는 동호인 10여명을 주축으로 ‘그랑프리테니스클럽’을 만들기도 했다. 매주 만나서 훈련하고 경기했다. 2000년대 초반까지는 이 모임 멤버들이 동호인대회를 거의 석권했다.

성 회장은 1995년 무렵부터 기업 스폰서를 받아 동호인대회를 치르기 시작했다. 기아자동차컵, 하나은행컵, 암웨이컵, 헤드컵…. 지금도 성 회장은 동호인들을 위해 기업 스폰서를 잡기 위해동분서주하고 있다.

“동호인들에게도 대회는 중요하다. 대회가 없는 것은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입시가 없는 것과 같다. 사람은 테니스를 웬만큼 치면 누구든 대회에 나가고 싶어 한다. 뛸 대회를 많이 만들어 줘야 붐이 일고, 그래야 테니스가 발전한다.”

동호인랭킹을 만든 이유도 동호인들의 관심 유발과 대회 참가를 유도하기 위해서다.

“어느 종목이나 마찬가지이지만 사람들은 테니스를 치게 되면 자신의 실력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를 알고 싶어 한다. 수준별 랭킹 점수를 통해 사람들은 동기 부여도 받는다. 랭킹이 높으면 유지하려고, 낮으면 높아지려고 한다.”

성 회장은 지난해부터 서울시와 함께 서울컵동호인대회를 만들었다. NH농협은행배도 만들었다. 하나은행컵과 함께 국내 최고의 대회다. 참가 인원만 매 대회 2000명에 가깝다. 대회 상금도 다른 동호인대회보다 높다. 메이저대회는 1인당 300만 원(복식팀당 600만 원), 일반 대회는 100만 원(복식팀당 200만 원)이다. 올해는 서울컵이 4월 11일부터 14일까지, NH농협은행배가 4월 18일부터 21일까지 열린다. 하나은행컵은 5월 9일부터 12일까지 열린다.

“솔직히 내가 상금을 크게 올렸다. 과거 상품이 라켓 등 테니스 용품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발전이다. 그런데 초창기엔 여기저기서 나를 비난하기도 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지금은 날 비난하는 사람은 없다.”

최근 테니스 동호인들이 엄청 늘었단다.

“사실 요즘은 대회를 치르기가 힘들 정도다. 참가자가 너무 많아 코트 확보가 어렵다. 테니스 발전을 위해선 좋은 일이긴 하지만….”

최근 케이블 TV 와 종편 TV 등에서 테니스를 중계하면서 팬들의 관심이 높아졌단다. 메이저대회는 물론 각종 테니스 대회가 TV를 통해서 중계된다.

“테니스는 운동량이 엄청나 건강에 큰 도움이 된다. 코트를 이쪽저쪽 뛰어 다니려면 체력이 좋아야 한다. 그리고 기술도 어느 정도 돼야 한다. 기술을 배우는 재미와 활용하는 재미, 그것은 안 해본 사람은 모른다. 가장 중요한 것은 테니스는 골프와 달리 다양한 사람과 금세 친해질 수 있다. 복식으로 대회를 나가야 하기 때문에 다양한 사람과 파트너가 될 수 있다.”

KATA는 1년에 53개 대회를 치른다. 사실상 매주 대회를 3~4일씩 치르는 셈이다. 모두 성 회장이 뛰어다닌 노력의 결과다. 성 회장은 그동안 KATA 대회 운영비와 물품 등 100억 원의 스폰서를 끌어왔다. KATA 대회에 출전하고 있는 동호인은 전체 약 10만 명이고 부상 등 개인적인 일정을 감안하면 연간 7만 여명이 대회에 출전하고 있단다. 성 회장은 동호인들을 위해 KATA 랭킹 시상식도 연다. 레벨과 성별 랭킹 포인트 1~10위까지 시상한다. 우수 동호인들에게는 메이저대회 관람 기회도 준다.

2017 프랑스오픈 여자 단식 챔피언 엘레나 오스타펜코(라트비아)와 함께. 성기춘 회장 제공.
올 1월 호주오픈테니스대회에서. 성기춘 회장 제공.
“지난해 농협컵 우승한 동호인 등 38명과 올 초 호주오픈을 보러 다녀왔다. 지난해 9월 KCC배에서 우승한 동호인 등 40명과는 US오픈을 보고 왔다. 잘하는 동호인들에게는 그만큼 기회를 줘야 한다. 메이저대회를 보고 온 동호인들을 보고 다른 동호인들이 부러워하며 잘 할 것 아닌가? 이런 선순환적 대회 운영을 해야 한다.”

성 회장은 국내 최고의 국제대회인 코리아오픈을 살리기 위해서도 뛰어다녔다. 대회조직위가 스폰서를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를 때 테니스를 하며 구축한 인맥을 통해 스폰서 확보에 큰 도움을 줬다고. 성 회장은 모두 ‘테니스의 힘’이라고 말했다.

“테니스가 귀족 스포츠인 만큼 기업 수뇌부에서는 거의 테니스를 즐겨한다. 난 테니스를 치면서 정말 많은 사람들과 인연을 만들었다. 그 인연의 힘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사실 풀뿌리 테니스에 관심을 가진 기업의 도움이 없었다면 오늘의 대한민국 테니스도 없었을 것이다. 늘 후원해주는 기업에 감사의 마음을 이 자리를 빌러 다시 전한다.”

성 회장은 아마추어 대회를 개최하며 유망주들에게 장학금도 주고 있다.

“대회 출전비에 1인당 2000원씩을 유망주 장학금으로 걷고 있다. 어느 누구도 반대하지 않는다. 연간 약 8000만 원 정도 들어오는데 모두 유소년테니스 발전기금으로 쓰고 있다.”

성 회장은 지난해 유망주 한찬희(서울 마포중1)와 박소현(17·여)에게 각 1500만 원씩 지원하는 등 꿈나무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했다.

성 회장은 테니스를 시작한 뒤 단 한번도 건강에 이상이 생기질 않았다. 매일 즐겁게 테니스 치며 철저하게 관리했기 때문이다. 주변 사람들은 “철두철미한 관리가 아직도 아마추어 최강자로 자리를 지키는 이유”라고 말한다. 간 질환을 앓은 뒤 음주는 물론이고 탄산음료도 입에 대지 않는다.

성 회장은 사실상 하루 종일 ‘관리’를 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침대 위에서 옆으로 누워 다리 들어올리기를 한쪽 다리 당 200번씩 한다. 스트레칭 체조를 한 뒤 10분 정도 걷고 스윙 연습을 혼자 300~400번 정도 한다. 그리고 식사 한 뒤 출근한다.

“화요일과 목요일은 오후 2시부터 6시까지 경기 남양주테니스코트에서 게임 위주로 테니스를 한다. 이와 별도로 월화목금엔 오전 일찍 20~25분 씩 고수와 함께 테니스를 친 뒤 출근한다. 기술보다는 다양한 반복 동작으로 공을 넘기는데 집중한다. 내게 기술이 뭐가 중요한가. 공을 네트 너머로 잘 넘기면 되지….”

올 3월 열린 청주직지배 ‘베테랑부’에서 준우승한 뒤. 성기춘 회장 제공.
성 회장은 지난해에도 6개 대회에서 우승했다. 올해도 3월 열린 청주직지배에서 준우승했다. 성 회장은 아마추어 초보자들에게 늘 말한다. “공을 세게만 치려하지 말고, 일단 ‘네모’ 안에 넣으란 말이야! 테니스는 실수를 줄여야 이기는 게임이여~.” 테니스는 잘 치는 사람하고 쳐야 한다는 지론도 설파한다. “시간을 투자해 연습하고, 자신보다 잘 치는 사람과 공을 쳐야 실력이 는다. 나보다 못 치는 사람과 아무리 쳐 봐라. 실력이 느는지.”

성 회장에게 여기저기서 테니스 치자는 요청이 많이 들어온다. 그 때마다 주저하지 않고 나간다.

“테니스는 건강을 위한 운동이기도 하지만 사람을 알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테니스 치면서 그 사람과 친해지고 또 살다보면 그 사람에게 도움도 요청하기도 하는 것 아니겠느냐.”

성 회장이 가지고 있는 ‘대한민국 동호인테니스의 전설’이란 명성. 그냥 온 것이 아니었다.


양종구기자 yjong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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