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전성철]변호사비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3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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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정권에서 고위직을 지낸 A 씨는 직권남용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으며 ‘돈고생’을 단단히 하고 있다. 적폐로 찍혀 일자리 구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소송비용을 마련해야 해서다. 2년째 재판을 받으며 쓴 변호사비는 1억 원 가까이 된다. 그나마 오랜 고향 친구들이 상대적으로 적은 수임료를 받고 사건을 맡아준 덕분이다. 그 돈으로는 서초동에서 수사기록 한 번 읽는 데 보름 이상 걸리고 2, 3년씩 재판을 해야 할 사건을 맡겠다는 변호사를 만나기 어려웠다.

▷고위 법관들이 줄줄이 기소된 사법농단 사건 변호인 중에 대형 로펌이 눈에 띄지 않는 것은 수임료가 주요한 이유 중 하나다. 대형 로펌은 시간에 따라 비용을 청구하는 ‘타임 차지’를 하는데 법원장·검사장 출신은 시간당 80만∼100만 원, 부장판사·부장검사급은 50만∼70만 원 선이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처럼 기록만 20만 쪽에 달하고 공소사실이 복잡하면 최소 5∼8명의 변호사로 팀을 꾸려야 하는데 그 비용만 수십억 원대다. 그래서 기소된 법관들은 수임료가 싼 실무형 변호인을 선임하고 변론 준비를 직접 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해도 변호사비가 수억 원씩 필요해 집을 처분하기도 한다.

▷수임료를 마련해도 검찰과 맞서기는 쉽지 않다. 무죄를 받으려면 검찰 논리를 깰 새 증거를 찾아야 한다. 하지만 수십 명의 검사가 달라붙는 대형 정치 사건에서는, 변호인의 조력을 받아도 수사기록에 짓눌려 검찰 공격을 방어만 하다 재판이 끝나는 경우가 허다하다. 한 변호사는 “기록 중 상당 부분은 ‘피고인은 나쁜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려는 간접증거지만 대응하지 않을 수는 없어 품이 많이 든다”고 했다.

▷형사재판은 일반인에게는 아예 가시밭길이다. 변호사비 마련도 문제지만 적게는 수백만 원에서, 많게는 억대의 수임료를 부르는 변호사 중 누구 손을 잡아야 할지 판단하기도 쉽지 않다. 법원 판결문 자체가 비공개여서 변호사의 승률조차 모른 채 ‘깜깜이’ 선임을 해야 한다. 피고인과 가족이 수사와 재판을 준비하는 과정부터 고통을 받는 현실은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전성철 논설위원 dawn@donga.com
#변호사 수임료#로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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