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보다 가난하게 살아갈 우리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노래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3월 15일 15시 35분


코멘트
Sultans of swing - Dier Straits

오늘 제가 이 곡을 소개할 수 있다는 사실이 저에게는 영광입니다. 제 사춘기의 테마곡이었으니까요. 노래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Dm(디마이너)로 쿵다라다 작작, 이 이야기를 할까 말까 망설이다가, 라시플랫도, 솔시플랫솔미, 레미레도~(젠장, 해서 뭐해? 해도 안될텐데~)’라고 짜증을 냅니다. 여기서 보편적 음계를 벗어난 시플랫은 체념섞인 냉소죠.

그 다음 간주에서는 똑같은 푸념을 삼도화음으로(‘삐꾸’가 아니라 손가락으로 쳐서) 심화시킨 후, ‘미레도, 미 미레, 솔라시플랫시?(그런데 왜 내가 윗세대의 잘못을 책임져야 해?)’라는 소심한 분노를 터뜨립니다.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저에게는 록음악의 역사를 바꿔놓았다고 평가되는 이 기타 리프가 그렇게 들렸습니다.

그 유명한 레드제플린이나 AC/DC가 “이 빌어먹을 세상을 다 바꿔버리자”고 고함칠 때, 초짜 마크 노플러의 처량한 “어두운 빗속에서 덜덜 떨다가 우연히 들어간 술집의 엉성한 스윙 밴드에서 내 삶을 직시한다”는 주절거림이 제 마음을 대변해준다고 느낄 때부터 제 삶이 주류에 속하지 않을 것이란 것을 알았어야 했습니다. ‘지금 알고있는 것을 그때 알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노플러는 분노와 절망의 멜로디에 해학적인 가사를 입힙니다. 변두리에서 연주하는 이 밴드는 록앤롤이나 디스코를 듣고 싶어하는 아이들 앞에서 제즈, 그 것도 관악기가 동반된 사분의 사박자의 낡아빠진 ‘크레올(Crelole)’을 연주합니다. 이 밴드가 성공할 가능성은 없죠. 그런데 이들은 자신들을 스윙제즈의 제왕이라고 소개합니다. ‘스웨그(Swag)’였을까요, 자학적 게그였을까요? 노플러는 노래에서 그들의 열정을 그려내고 있으니 전자라고 보았던 것 같습니다. 그들에게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음악을 고집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았던 것이죠.

여기에서 저는 이 시대의 아이들, 그리고 저의 아이들을 생각하게 됩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희망이 없어보이는, 부모와 같은 수준의 삶을 살 수 없을 것 같기에 무력해진. 당시의 노플러나 결국 사라져갔을 ‘스윙의 제왕들’과 비슷한. 신문에서 새학기에 대해 긍정보다 부정적인 형용사가 더 많다는 통계 수치를 보며, 저를 비롯한 우리 부모 세대의 잘못을 보았죠. 또한 남의 일이라 여겼던 너무도 변화된 세상을. 우리 아이들은 우리가 부모와 전혀 다른 삶을 살았듯, 우리와 전혀 다른 삶을 살아야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김창기 전 동물원 멤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김창기 전 동물원 멤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그리고 제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들을 생각해봤습니다. 무례가 아니라면, 어쩌면 여러분도 유용하게 사용하실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요약된 내용을 적어봅니다. 관계 없으시다면 무시하거나 욕을 하셔도 됩니다.

1. 스윙은 좋은 음악이란다. 아빤 스윙보단 포크와 록앤롤이 더 좋았고, 다행히 아빠가 살던 세상도 그런 걸 필요로 했어. 하지만 너희들의 세상은 무엇을 필요로 할지 난 모르겠구나. 고지식하게 옛틀에 집착하지 않기를 바라지만, 집착하겠다고 결심했다면 아주 열심히 해야 해. 그래야 잘 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보다는 너희들의 세대에 맞는 삶을 살았으면 해.

2. 냉면을 먹을 때 계란 먼저 먹지 마. 냉면은 면과 육수의 맛의 균형을 즐기기 위해서 먹는 거잖아? 취향은 다를 수 있지만 냉면에서의 계란의 기능은 중간의 맛의 변화나 입가심이야. 과정이 중요해. 과정에 충실해야 진정한 맛을 느낄 수 있어. 마크 노플러처럼. 계란에 집착하는 사람들은 아직도 계란이 면보다 귀했던 시절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야. 냉면이 싫으면 다른 것을 먹어.

3. 인생의 일부에 대해 지금 아는 것을 그 때 알았다면 하고 후회하지 말아라. 알려주겠다고 설치는 사람들에게도, 달달한 위로에도 속지 말고. 먼저 알았다면 참 좋았겠지만, 살아보지 않고 먼저 아는 사람들은 거의 없단다. 그리고 먼저 알았다고 해도 결국 끝은 스리쿠션, 나에게 가장 소중한 관계들과의 정립으로 끝난단다. 그러니까 빨리 이겨도 결과는 늘 같아. 그리고 너희들의 인생은 너희들이 살아야 하는 거야. 물론 빨리 이기면 불필요한 경쟁을 그만 두고 인생을 즐길 수 있겠지만, 인생은 일부만이 아니고 전체적이기에 ‘자유로운 인생의 즐김’은 신선들도 못 했던 것이란다.

4. 단 한번 살아 보는 이 짧은 인생, “우리가 최고야!”하고 외치는 swag를 한번 해봐야 하지 않겠니? swag를 할 수 있는 시기는 매우 짧단다. 사실 나는 한번도 해보지 못 했어. 하지만 모든 것이 명료해보이는 그 젊은 시기의 swag는 죄악이 아니라 축복이란다. 그만큼 최선을 다 하고 있다는 거니까. 하지만 ‘디스(dis)’는 자제하렴. 우린 눈안의 들보를 우리는 보지 못 하니까.

5. 마지막으로 ‘우리(We)’를 잃지 말렴. 우리는 아직도 포유류고, 공유할 수 있는 소중한 사람이 없으면 스윙도, 의미도 없는 거란다. 그리고 아빠에겐 내 생명보다 너희들이 더 소중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줘. 그리고 너희들도 너희의 아이들을 그렇게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그렇게 사랑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것을.

p.s. 뭐, 이런 이야기도 하고 싶었지만, 너무 길어서 망설여 집니다만….

1. 사이다적 직언은 세상을 호도하고, 고구마적 철학은 세상을 정체시킵니다. 그 중간의 균형은 서핑처럼 찰라적이죠. 하지만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것은 그 균형이고, 다행인 것은 인생은 짧지만 파도는 더 짧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우리는, 다시 파도를 만나러 나갈 수 있는 어깨의 힘이 남아 있을 때까지는, 몇 천번의 좋은 파도를 더 만날 수 있죠.

2. 이런 말을 하고 나니 내가 천재가 아닌가 하고 느껴지는구나. 하지만 너희들이 제일 잘 알잖니? 내가 삶의 전반적인 균형을 얻지 못 한 바보라는 것을?

3. 사람 사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는데, 원해서 태어난 것은 아니지만 어쩌다보니 사람으로 태어난 우리가 어떻게 하면 사람처럼 살 수 있나에 대한, 사실 저도 모르는, 하지만 인간이기에 가질 수밖에 없는, 큰 백지에 기리 남을 명작을 그리고 싶은 욕망에 대한 막막한 이야기를 써보고 싶었는데 잡담만 하다가 끝냅니다. 죄송합니다.

김창기 전 동물원 멤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