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 설계부터 운영까지 총체적 부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3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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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관조사위, 중간조사 결과
시스템 통합제어-충격 보호 미흡
2017년 8월이후 21차례 화재, 정밀진단 통과 후에 불난 곳도
정부, 재생에너지 비중 확대 급급… 안전기준 없이 정책 펴다 화 초래


2017년 8월부터 한 달에 한 번꼴로 발생한 에너지저장장치(ESS) 설비 화재의 원인이 생산부터 운영까지 ‘총체적 부실’이라는 민관합동 조사위원회(조사위)의 중간 조사결과가 나왔다. 정부의 신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에 발맞춰 설비는 급속도로 늘었지만 시스템 설계부터 설비 운영까지 전 과정에서 안전관리에 허점이 있었다는 뜻이다. ESS는 생산된 전기를 배터리에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방출하는 설비로 발전량이 일정하지 않은 태양광,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발전 시스템에 주로 쓰인다.

14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조사위는 12일 한국화학융합시험연구원 과천청사에서 ESS 관련 기업 관계자를 대상으로 비공개 간담회를 열고 중간 조사결과를 전달했다. 이날 간담회에는 LG화학, 삼성SDI, LS산전 등 ESS용 배터리 생산과 시스템 설계를 하는 기업들이 참석했다. 간담회에 참석한 기업 관계자에 따르면 조사위는 “시스템 통합제어와 배터리 본체 및 보호장비 설계, 설치 및 운영 등에서 미흡한 점이 발견됐고, 이런 부분이 화재 원인이 됐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조사위는 당초 이달 말로 예정됐던 공식 결과 발표를 5월로 미루기로 했다.

2017년 8월 전북 고창군의 한국전력 실증단지에서 화재가 발생한 이후 올해 1월 21일 울산 대성산업가스 공장까지 ESS와 관련된 화재는 총 21번이나 발생했다. 조사위가 원인으로 추정하고 있는 ‘시스템 통합제어 미흡’은 ESS의 핵심인 배터리와 배전반, 에너지관리 시스템 등 각종 주변 설비가 통일된 시스템으로 제어되지 않아 화재가 발생했을 수 있다는 뜻이다. 또 배터리를 외부 충격으로부터 보호하는 장치가 충분하지 않고, 배터리 셀과 모듈 자체에 결함이 있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부실시공 사례도 다수 발견됐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신재생에너지 확산 정책을 펴면서 안전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아 부실을 자초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2017년 1.2GWh(기가와트시)였던 국내 ESS 설비 규모는 지난해에는 이의 4배에 가까운 4.7GWh로 늘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정부가 ESS 도입 기관에 신재생에너지공급인증서(REC) 가중치를 부여하는 등 각종 인센티브를 주면서 급격히 늘어나기 시작했다. 심지어 이미 여러 차례 화재가 발생한 지난해 7월에도 정부는 “공동주택 ESS 구축 사례를 창출하겠다”며 추가로 정책을 내놓기도 했다.


정부는 지난해 11월에야 뒤늦게 국내 1300여 곳에 이르는 ESS 설치 사업장에 대해 정밀 안전진단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 뒤에도 6번의 화재가 잇따랐다. 특히 이 중 4번은 이미 안전진단을 통과한 곳에서 발생해 ‘제대로 진단한 게 맞느냐’는 불신까지 키우고 있다. 결국 정부는 지난해 12월 가동 중단 권고를 했고 현재 700여 곳이 가동을 멈췄다.

한 업체 관계자는 “정부가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발전량 비중 20% 달성을 뜻하는 ‘재생에너지 3020’ 정책을 위해 안전기준을 제대로 마련하지 못한 채 ESS 보급 정책을 무리하게 펼쳤고, 업체들은 점유율 늘리기에만 신경 썼기 때문에 생긴 일”이라고 말했다.

황태호 기자 taeho@donga.com
#ess#에너지저장장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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