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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이기홍]돼지들은 언제까지 견뎌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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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이기홍]돼지들은 언제까지 견뎌야 하나

이기홍 논설실장 입력 2019-02-21 03:00수정 2019-02-21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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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홍 논설실장
서울 경동시장에 남아있던 개 도축업소가 모두 문을 닫았다고 동대문구가 18일 밝혔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서울시내 개 도축업소를 완전히 없애겠다고 공표했다.

초등학생 시절의 기억이 떠오른다. 서울 변두리에서 자전거를 타다 개천 너머를 봤다. 천변에 슬래브 가건물과 천막이 있고 옆의 철망엔 개 10여 마리가 갇혀 있었다. 한 중년부인이 먹을 사람이 많지 않으니 작은 걸로 맞춰 달라 하니 주인아저씨는 철망에서 갈색 소형 견을 꺼내왔다. 아저씨는 개를 다정하게 쓰다듬으며 흥정을 했고 개는 납작 엎드린 채 바들바들 떨면서도 쓰다듬는 손길에 얌전히 몸을 맡기고 있었다. 잠시 후 중년부인이 돈을 건넸고, 아저씨는 개를 안고 천막 안으로 들어갔다.

요즘 개농장이나 도살장의 잔혹한 풍경과는 많이 다르지만, 어린 마음에 그 장면은 아주 깊은 슬픔으로 새겨졌다. 며칠 후 동네 아주머니들의 대화에서 그 개 도살장 이야기를 엿듣게 됐다. 손님으로 그곳을 찾았다가 주인 부부의 살림집인 슬래브 건물 안으로 들어가 봤는데 사람 사는 곳이라고 믿기 힘들 만큼 가난했다고 한다. 빈틈으로 바람이 쌩쌩 들어오고 넝마 같은 포대엔 아기가 울고 있었단다. 개를 죽여파는 아저씨에 대한 미움과 가난한 그들의 삶에 대한 안쓰러움, 죽음을 앞둔 생명에게 미안한 듯 부드럽게 쓰다듬어주던 모습 등이 뒤섞이면서 오랫동안 마음이 혼란스러웠다.

서울 경동시장의 사례는 국내외에서 숱한 논란을 불러온 한국의 개 도살 문화가 아주 조금씩 해결 실마리를 찾고 있음을 보여준다. 물론 여전히 3000 곳 가까운 개농장이 남아있지만 그래도 “개는 축산물위생관리법 대상이 아니어서 어쩔 방법이 없다”며 방관하던 당국이 적극 나서는 것은 변화한 태도다. 이런 변화 과정에서 영세한 개농장 주인 등에게 생계 대책을 알선해주는 등의 지원도 적극 이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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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걸로 해결은 아니다. 반려견 인구가 급증하면서 개 도살은 변화가 시작됐지만 돼지 닭 등의 경우, 세계 어느 나라와도 비교하기 힘들만큼 끔찍한 공장형 축산이 이뤄지는 대한민국의 현실은 변하지 않고 있다. 구제역 등 전염병이 돌면 일단 대규모로 죽여서 예방하는 살처분 집착 행정도 변하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선 매년 평균 1000만 마리 이상의 가축이 살처분된다. 2010년 겨울 소 돼지 347만 마리, 닭 오리 647만 마리를 생매장 등으로 살처분해 세계를 경악시켰던 이래 생매장은 자제하고 있지만, 현재 쓰이는 이산화탄소 가스 주입 방법 역시 동물을 극심한 고통 속에 죽게 한다.

이산화탄소 대신 질소가스를 사용하면 동물의 고통을 최소화할 수 있지만 우리는 거의 사용을 안한다. 질소가스 거품을 사용해 무산소증으로 기절시킨 후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상태에서 안락사 시키는 방법인데, 국제수역사무국(OIE)도 이를 권고하고 있고 국내에서도 2016년 축산진흥원이 질소가스 거품을 만드는 장비를 개발했다.

하지만 농식품부는 비용이 더 들고 살처분 시간이 길어진다며 소극적이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한해 1050만 마리를 살처분 한다고 가정할 때 질소가스 방법은 연간 30억 원이 더 든다고 한다. 적은 돈은 아니지만 1천만 마리 동물의 고통, 그리고 이를 지켜봐야 하는 방역담당자들과 국민이 받는 정신적 상처를 감안하면 감당할 만한게 아닐까.

공장형 축산은 차라리 외면하고픈 진실이다. 실태를 글로 옮길 수 없을 만큼 처참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설 연휴에 읽었다는 ‘사랑할까, 먹을까’의 저자도 지적했듯 한국에서 사육되는 돼지가 1000만 마리가 넘지만 거의 눈에 띄지 않는 것은 대부분이 공장 같은 건물 내에서 사육되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채식 실천은 쉽지 않은 일이지만 공장형 사육을 농장형 사육으로 바꾸어야 하는건 분명해 보인다”고 했다. 대통령이 강력한 의지로 챙기지 않으면 해당 부처는 미적댈 수밖에 없는 사안이다.

매년 예방 명목으로 살처분되는 1000만 마리의 가축은 물건 1000만 개가 아니다. 비록 언젠가는 도축될 운명이었을지언정, 좀 더 숨 쉴 자격이 있었던 생명이었다. 짧은 평생 내내 몸을 돌리지도 못할 만큼 좁은 스툴(감금틀)에 갇힌채 비육되다 도살되는 동물들도 햇볕과 바람, 장난을 좋아하는 생명들이었다. 사람에게 고기를 내주기 위해 키워지지만, 살아있는 동안만은 쾌적하게 생활하고, 최소한의 고통 속에 마감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게 최소한의 예의다. 육식을 즐기는 대다수 사람들의 정신건강은 물론 육체건강을 위해서도 더 이상 미뤄선 안 되는 과제다.

이기홍 논설실장 sechepa@donga.com

#공장형 축산#살처분#육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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