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北-美 담판 앞두고 “남북경협 떠맡겠다”는 대통령의 조바심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2월 21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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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19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북한의 비핵화 조치를 견인하기 위한 상응조치로서 남북 철도·도로 연결부터 경협사업까지 역할을 떠맡을 각오가 돼 있다”고 밝혔다. 북-미 하노이 정상회담을 앞두고 비핵화 조치에 대한 보상책으로 대북 경제지원을 자처하면서 남북 경협사업에 대한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면제를 요청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정상회담의 거의 모든 부분에 대해 논의한 좋은 대화였다”고만 밝혔다.

문 대통령 발언은 당장 국내외적 논란을 낳을 게 뻔하다. 대북제재는 북한을 비핵화 협상에 나설 수밖에 없도록 만든 압박수단인데, 우리 정부가 나서 제재 전선을 허무는 데 총대를 메겠다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나아가 과거 대북 경제지원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여전한 상황에서 국민적 공감대 없이 막대한 부담을 떠맡겠다고 나선 셈이어서 국민이 납득할지도 의문이다. 국회예산정책처가 전망한 경협 비용은 최소 103조 원에 달한다.

북-미 합의문 조율을 위한 본격 실무협상을 앞두고 대북 협상카드를 미리 공개한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 문 대통령 발언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통화에서였지만 사실상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보내는 메시지일 것이다. 여전히 머뭇거리는 북한을 향해 금강산관광·개성공단 재개에 나설 테니 과감한 비핵화에 나서달라는 주문이겠지만, 어떻게든 북-미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해 얼마나 애를 태우는지 우리 속내만 훤히 내보인 셈이 됐다.

물론 문 대통령이 이런 논란을 감수하고라도 나선 데는 다른 속사정도 없지 않을 것이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연일 “서두를 것 없다”며 기대치를 낮추는 것은 ‘빅딜’을 위한 협상이 벽에 부닥쳤다는 신호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간접 보증’에 나서 막힌 협상의 돌파구를 여는 데 일조하겠다는 의도일 수 있다. 김정은의 서울 답방 성사를 위해 어차피 내줄 선물을 미리 북-미 협상에 연계해 카드로 내놓은 것일 수도 있다.

사실 그간 정부의 행보를 보면 경협 재개는 시간의 문제였지 진작 예고된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의 모양새는 손 안 대고 코 풀려는 미국에 우리가 모든 짐을 떠안겠다는 것으로 비칠 뿐이다. 장차 대북 경제지원이 이뤄진다 해도 그 부담은 미국 중국 일본 등 주변국이 골고루 나눠서 져야 마땅하다. 그래야 비핵화와 경제지원의 선순환 구조도 공고해진다. 그 속도와 방식도 비핵화 진전에 맞춘 등가(等價)적 조치여야 하고, 북한이 멈춰서거나 뒷걸음질치면 언제든 중단하거나 되돌릴 수 있어야 한다. 퍼주고 떼이는 일은 없어야 한다.
#북미 정상회담#남북경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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