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아 단독 인터뷰] “평화무드 깨질까 못 데려오나? 北 억류 한국인 6명 데려와야!”

  • 신동아
  • 입력 2019년 2월 19일 15시 5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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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억류 735일’ 케네스 배의 애끓는 호소



북한에 735일간 억류돼 교화소에서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주 6일 중노동을 한 사내가 있다. 교화소 기록에 따르면 정권을 전복하려 했다는 죄목으로 처벌받은 테러리스트다. “석방된 것 자체가 기적”(엘리슨 후커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다.

한국인 여섯 명이 아직도 북한에 억류돼 있다. 지난해 남북 정상회담이 세 차례나 열렸으나 6인이 한국으로 되돌아왔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 한국의 가족은 그들이 살았는지, 죽었는지조차 모른다.

하루 10시간씩 중노동


“억류된 국민을 외면하는 국가는 나라가 아니다.”

735일간 북한 교화소에 수감됐던 ‘그 사내’, 케네스 배(51)는 “국적이 한국이 아니기에 말하기 조심스럽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북한에 최장 기간 억류된 미국인이다. 프로야구 빙그레(현 한화) 이글스 배성서 초대 감독의 아들로 1985년 미국으로 이민했다.

국가전복음모죄로 ‘15년 노동교화형’을 선고받고 수감된 지 90일 만에 체중이 27㎏ 줄었다. 북한 교화소는 한국의 교도소 격이다. 중노동을 하루 10시간씩 했다. 외국인 특별 교화소에서 노역(勞役)했다. 한국인 억류자 6인은 일반 교화소에 수감된 것으로 보인다.

그는 교화소에서 영양실조로 쓰러졌다. 저칼로리 음식을 먹고 중노동을 해서다. 수감 기간 2년 동안 병원과 교화소를 세 차례 오갔다. 백지(白紙)가 악몽 같던 북한 생활을 떠올리게 한다. 반성문, 사죄문, 경과보고서를 날마다 썼다.

“누구도 당신을 기억하지 않는다”는 말을 북한 검사 등으로부터 들을 때 심적으로 특히 괴로웠다. 형벌보다 힘든 건 기약 없는 기다림이었다. 한국인 억류자 6인도 비슷한 처지일 것이다.

그는 2012년 11월 3일 관광객을 인솔해 북한을 찾았다가 체포됐다. 이듬해 노동교화형 15년을 선고받았다. 미국은 제임스 클래퍼 당시 국가정보국(DNI) 국장을 방북시켜 2014년 11월 9일 735일 만에 그를 구출했다.

2017년 그는 북한 인권 개선과 한반도 통일을 위한 NGO(비정부기구) ‘느헤미야 글로벌 이니셔티브(NGI)’를 설립했다. NGI는 세계에 흩어진 전쟁 난민을 돕는 일도 한다. 중국 내 탈북 난민을 구출하는 일에도 적극적이다. 1월 25일 케네스 배를 만났다.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 ‘조선신보’가 2013년 7월 3일 공개한 캐네스 배 NGI 대표의 북한 억류 시절 모습. ‘조선신보’는 “5월 14일 교화소에 입소했으며 오전 6시에 기상해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콩씨를 뿌리고 거름 내기와 감자, 강냉이 등의 밭 김매기를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조선신보 홈페이지 캡처]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 ‘조선신보’가 2013년 7월 3일 공개한 캐네스 배 NGI 대표의 북한 억류 시절 모습. ‘조선신보’는 “5월 14일 교화소에 입소했으며 오전 6시에 기상해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콩씨를 뿌리고 거름 내기와 감자, 강냉이 등의 밭 김매기를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조선신보 홈페이지 캡처]
- 트라우마는 없습니까.


“구출된 지 5년이 지나 이젠 괜찮아요.”

탈북민 구출 프로젝트


- 지난해에는 북한에 억류됐다 미국으로 돌아오자마자 사망한 오토 웜비어의 부모와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인권 콘퍼런스에서 함께 연설했더군요.

“아들의 죽음에 굉장히 비통해하시더군요. 북한 인권 문제 개선에 기여하겠다는 사명을 갖고 계셔요. 살아 돌아온 사람으로서 그분들에게 죄송하죠.”

- NGI는 어떤 일을 해요.

“한국, 미국, 브라질, 홍콩에 각각 법인이 있습니다. 북한 인권 개선 운동과 탈북민 돕는 일을 합니다. 작년에 탈북민 59명을 구출했어요. 중국에 나와 있는 탈북민을 한국으로 이주시킨 겁니다. 올해는 300명 구출 프로젝트를 진행해요.”

- 1월 23일 종교계, 학계, 탈북민, 시민사회단체 대표 등 100명이 참여해 발기인 대회를 연 ‘북한 종교와 신앙의 자유 국제연대’에도 참여했더군요.

“신앙·종교의 자유는 인권 문제 중 핵심입니다.”

북한 헌법 68조에 ‘공민은 신앙의 자유를 가진다’고 돼 있다. ‘신앙의 자유’는 ‘종교의 자유’와 다르다. 종교의 자유는 ‘무종교인 또는 다른 종교를 신봉하는 사람을 포교·개종할 자유’를 포함하나 신앙의 자유는 믿고, 기도할 자유만을 뜻한다. 북한에서 선교하면 체포돼 처벌을 받는다.

- 평양의 장충성당, 봉수교회, 칠곡교회는 외부 선전용이라고 봐야겠군요.

“신앙의 자유가 외세를 끌어들이거나 나라의 질서를 해칠 때는 용납하지 않는다는 조항이 헌법에 추가돼 있습니다. 북한에서 헌법보다 상위에 있는 게 노동당 규약이에요. 당 규약은 신앙의 자유조차 허용하지 않습니다. 장충성당, 봉수교회, 칠곡교회는 외국인에게 보여주려는 용도죠.”

그는 2010년 처음 방북했다. 이듬해 북한 관광 여행사를 세웠다.

“23차례에 걸쳐 17개국 300명을 북한에 들여보냈습니다. 저는 18차례 방북했고요. 마지막 방북 때 북한에 갖고 들어간 외장 하드에 체제를 비판하는 내용이 담긴 게 문제가 됐습니다. 300명은 기독교인입니다. 하나같이 북한에서 기도했죠. 미국 핵무기보다 사상·문화 책동이 더 문제라더군요. 조직적으로 국가 전복 음모를 꾀했다고 몰아붙였습니다. 수령과 조선노동당에 대한 믿음을 깨뜨려 하나님 나라를 세우려 했으니 국가전복음모죄라더군요. 예배와 기도로 국가를 전복하려고 했다고 기소장에 써 있습니다.”

인질 외교

지호영 기자
지호영 기자
- 처음엔 외화 획득에 도움을 주는 미국인이라며 북한 관료들이 좋아했겠군요.

“그럼요. 사건 터지기 전까지는 환대가 대단했죠. 관광객이 크리스천인 걸 다 알았어요. 기도·예배도 문제 삼지 않았고요.”

북한은 2013년 2월 3차 핵실험을 했다. ‘인질 외교’라고 그는 말했다.

“3차 핵실험으로 인해 대미(對美) 관계에서 긴장이 높아지니 미국인인 나를 정치적 흥정물로 쓰고자 15년형을 선고해 코를 꿴 거죠. 미국인을 잡아놓으면 여러모로 활용 가치가 있으니까요. 북한 사람들도 ‘미국 국민이 아니었으면 집에 갔다. 재판도 없었다’고 하더군요. 버락 오바마가 석방을 요구하는 친서를 김정은에게 보내기도 했습니다.”

그는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에서 인권 문제가 논의돼야 한다”고 했다.

- 남북 관계를 개선하려면 인권 문제를 후순위로 둬야 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핵을 포기하고, 평화가 조성되면 인권 문제가 자연스럽게 해결된다? 결코 그렇지 않아요. 북한에 인권은 핵보다 더 큰 아킬레스건입니다. 핵을 내려놓더라도 체제를 유지하려면 인권을 탄압해야 합니다. 국제사회가 압박해야 해요. 협상할 때마다 인권 문제를 적극적으로 제기해야 합니다. 탈북민 한 분에게 ‘한국에 오니 뭐가 좋습니까’라고 물었더니 ‘자유요’라고 답하더군요. 정상국가가 뭡니까. 자유가 보장되는 곳입니다. 한국인이 촛불을 들고 그릇된 정권에 저항한 것도 자유 덕분입니다. 한국이 안전하고 평화롭기만 하면 북한에 사는 사람들의 인권은 무시해도 좋다? 그게 ‘진보’입니까. 북한 주민들이 앞으로 20년, 30년, 40년을 과거처럼 사는 게 옳습니까? 북한 사람들이 예전 같지 않아요. 밖을 잘 압니다. 하릴없이 체제를 따르는 것이지 자유를 갈망합니다.”

“종교·신앙의 자유 요구해야”

그는 “북한이 정상국가가 되려면 첫걸음이 종교와 신앙의 자유를 허용하는 것”이라고 했다.

“김정은 위원장이 육성으로 ‘앞으로 성경을 읽고 예배하는 것을 포함한 종교와 신앙의 자유를 허용합니다’라고 말하는 게 북·미 정상회담이나 남북 정상회담에서 이뤄질 딜에 포함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 인권 문제를 적극적으로 제기해야 한다는 주장이군요.

“문재인·트럼프 대통령이 인권 문제와 더불어 신앙의 자유도 말해야 해요. 무엇보다도 북한에 억류된 대한민국 국민의 안전한 귀환은 꼭 풀어야 할 숙제입니다. 그분들이 살아 계신지조차 모르는 게 현실입니다. 생존해 있는지, 무탈한지 파악해 가족에게 알려주는 것은 국가의 의무예요. 그런 일을 하지 않으면 국가가 아니죠. 한국 정부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해주길 바랍니다.”

-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북·미 싱가포르 정상회담을 앞둔 지난해 5월 평양에서 김정은 위원장을 만난 후 북한에 억류된 미국인 3명과 함께 미국으로 돌아갔습니다. 미국인 억류자는 북한에 한 명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나는 미국 정부에 빚을 졌습니다. 미국 관료들이 실패한 미션까지 포함해 나를 석방시키고자 최소 3차례 평양을 방문했습니다. 수십 명이 달라붙어 수백만 달러를 썼어요. 국가는 국민의 안전을 최우선시해야 합니다.”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지난해 9월 1일 워싱턴에서 열린 한 행사에서 “국무부 장관으로 일하는 동안 가장 하이라이트였던 날은 북한에 억류된 미국인 3명을 집으로 데려온 것”이라고 밝혔다.

그가 “대한민국 국적이 아니기에 말하기 조심스럽다”면서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포용과 화합은 위대한 가치입니다. 평화를 추구한다는 것에 토 달 사람은 없으나 한국만 평화로우면 그만입니까. 북한 사람들이 자유롭습니까, 평화를 누립니까. 그런 평화가 무슨 소용일까요. 자유민주주의 기치 아래 통일을 이뤄낼 때 진정한 평화가 옵니다. 남북이 함께 잘 사는 하나 된 대한민국을 지향해야 해요.”

“‘보내주세요’ 한마디로 끝이어서야”

- 2월 27, 28일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다음 수순으로 김정은 위원장의 서울 답방이 거론됩니다.

“국민 인권이 침해되고 있는데 국가가 방기해서는 안 됩니다.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억류자 여섯 분을 모셔와야 해요. 정상회담 때가 좋겠으나 시기적으로 어려우면 그 이후에라도 모셔와야죠. 6인 중 한 분인 김정욱 선교사는 억류된 지 5년이 넘었어요. 노동을 시키든 뭐든 벌을 주겠죠. 교화소 중노동을 버텨내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경험해봤기에 더 안타깝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버티기 쉽지 않을 거예요.”

억류자 6인 중 3인이 선교사다. 중국에서 탈북민을 돕다가 납치됐거나 북한으로 유인된 것으로 추정된다.

“억류자는 북한에서 범죄자입니다. 평화 분위기가 조성된다고 석방되는 게 아니에요. 한국의 요청으로 사면하거나 추방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한국 정부가 여러 이유로 데려오려는 노력을 못 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억류된 분들이 돌아와 기자회견을 열어 북한 실정을 폭로하면 해빙 무드에 걸림돌이 될 수 있죠. 정부가 이 같은 이유에서 적극적이지 않은 게 아닐까요. 어떻게 해서든 모셔와야 해요. 시민사회가 목소리를 높여야 합니다. 내년에 한국에서 총선이 있습니다. 억류자 송환이 이뤄지지 않으면 총선 때 억류자 문제가 부각돼야 한다고 봐요.”

-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4월 27일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위원장에게 한국인 6명의 조속한 송환을 요청했습니다.

“얘기는 했다는데 답변이 없다고 손놓고 있잖아요. ‘보내주세요’ 한마디로 끝이면 안 됩니다.”

- 한국인 억류자가 더 많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20여 명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국군포로, 납북자 문제 해결에도 ‘나 몰라라’ 한다는 비판을 듣는다.

“바늘도둑에서 소도둑으로”

- 기독교계의 공격적 북한 선교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선교 목적으로 여행사를 세웠나요.

“아뇨. 여행사 명칭이 ‘Love DPRK Tour’예요. ‘조선사랑여행.’ 북한의 문화·자연·사람을 사랑하자는 것을 모토로 한 체험 관광이었습니다. 우리끼리 기도는 했으나 선교한 적은 없습니다. 예배하는 것은 북한 당국도 허용했고요. 기도하면서 ‘하나님이 돌아오는 나라가 되게 해달라’고는 했죠. 북한에서 구출된 후 탈북민을 구출하는 일을 하니 북한 당국이 바늘도둑을 소도둑으로 키운 격입니다. 현재는 북한 정권에 공격적인 활동을 한다고 하겠습니다.”

- 문 대통령이 북한과 바티칸 사이에서 교황 방북을 중개(仲介)하기도 했습니다.

“잘한 일입니다. 북한은 외부 세계가 어떻게 보는지에 관심이 굉장히 많아요. 밖에서 인권 문제와 종교, 신앙의 자유를 떠들어야 해요. 핵을 내려놓으려고 하는 것은 정상국가를 지향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북한 처지에서도 뭔가 하는 척해야죠. 정치범 수용소? 당장 폐쇄하지 못해요. 제재를 완화해주는 조건으로 인권과 종교·신앙의 자유를 제기해야 해요. 중국만 해도 교회를 못 가게 하지 않거든요. 김정은 위원장이 통 큰 결단을 내려주면 정상국가로 가는 큰 길이 열립니다.”

- 그 길이 정상국가로 가는 첩경이다?

“그렇죠. 미국은 기독교의 나라예요. 기독교인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신앙의 자유는 허용할게요’ 한마디가 대서특필되는 순간 북한이 얻을 게 많습니다. 트럼프 대통령 주변의 보수 우파가 독실한 기독교인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제재 완화와 인권 문제 해결을 연계하는 민주당을 설득하는 데도 지렛대가 되고요. 거듭 강조하건대 인권 문제 중 핵심이 종교와 신앙의 자유입니다.”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이 기사는 신동아 3월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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