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관객 “‘박열’, 아픈 역사 인정해야” vs 극우 “반일망상판타지”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2월 17일 15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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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절을 앞두고 일본서 개봉된 영화 ‘박열’을 보러 극장을 찾은 일본인 관객들. 이날 4회 상영 좌석이 모두 매진됐다. 도쿄=김범석 특파원 bsism@donga.com
3·1절을 앞두고 일본서 개봉된 영화 ‘박열’을 보러 극장을 찾은 일본인 관객들. 이날 4회 상영 좌석이 모두 매진됐다. 도쿄=김범석 특파원 bsism@donga.com
“죄송하지만 매진입니다.”

16일 오전 일본 도쿄 시부야 구에 위치한 영화관 ‘이미지포럼’. 아침부터 사람들이 몰리며 영화관 로비는 발 딛을 틈이 없었다. 이날은 일본 왕세자 결혼식장 폭파를 계획했던 독립운동가 박열과 지난해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된 그의 아내 가네코후미코(金子文子)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박열’(일본판 제목 ‘가네코후미코와 박열)의 개봉 첫 날이었다. 영화 박열은 2년 전 한국에서 개봉돼 235만 명을 동원한 바 있다.

● 3·1절 100주년 앞두고 박열에 마주한 400명의 日 관객들

도쿄 오사카 교토 등 3개 도시를 시작으로 다음 주 나고야, 3월 니가타, 미야기 등 상반기 내 일본 전국 20개 영화관에서 상영된다. 한국 독립운동 및 근대사에 관심 많은 관객 뿐 아니라 가네코후미코 역을 맡은 여배우 최희서, 함께 등장하는 일본인 배우 등 영화 자체에 흥미를 가진 일본인들이 몰리면서 이날 영화관은 4회 상영 좌석(1회 당 98석)이 모두 매진됐다. 오후 들어 표를 구하지 못한 관객들까지 몰리면서 영화관 안에서는 “공간이 비좁으니 안전에 주의하라”는 안내 방송까지 나왔다.

일본 전역 20곳에서 영화 박열을 상영시킨 영화 배급사 ‘우즈마사’ 대표 겸 영화 제작자 고바야시 산시로(小林三四郎) 씨. 도쿄=김범석 특파원 bsism@donga.com
일본 전역 20곳에서 영화 박열을 상영시킨 영화 배급사 ‘우즈마사’ 대표 겸 영화 제작자 고바야시 산시로(小林三四郎) 씨. 도쿄=김범석 특파원 bsism@donga.com
3·1운동 100주년을 2주 앞둔 시점에서 항일 운동가의 일대기를 그린 한국 영화가 일본 전역에서 개봉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이 영화를 들여온 것은 영화 배급사 ’우즈마사‘ 대표 겸 영화 제작자 고바야시 산시로(小林三四郞) 씨(61)다. 16일 영화관에서 만난 그는 “지난해 3월 일본서 열린 오사카 아시안 필름 페스티벌에서 영화 ’박열‘을 처음 접했다”며 “이후 집에서 원고를 보고 (일본에 잘 알려지지 않은) 가네코후미코와 박열을 내가 발견한 것 같아 가슴이 두근거렸다”고 말했다.

일본 내에서 상영하기로 마음먹고 한국 제작사에게 배급 허락을 받고 자막을 입히는 등 1년간의 준비 기간을 거쳤다. “한국 독립운동가를 다룬 영화를 상영해 줄 영화관이 있겠냐”, “영화에 자극 받아 극우 세력이 공격할 수도 있다” 등 주변 지인들의 걱정도 적지 않았다. 그는 “그럼에도 이 작품을 일본에서 공개하는 것이 그런 우려에 대한 ’정답‘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에) 총부리를 들이댄 일본의 역사와 총부리를 받은 한국의 역사가 다르기 때문에 상대(한국)의 역사를 마주하는 것이 지금 필요하다”며 “특히 한일관계가 냉각된 지금, 박열과 가네코후미코가 마주한 것처럼 사람 간의 교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영화 '박열'의 일본판 포스터 '가네코후미코와 박열' 우즈마사 제공
영화 '박열'의 일본판 포스터 '가네코후미코와 박열' 우즈마사 제공

● 관객들, “아픈 역사 日이 인정해야”… 극우 단체 “반일망상판타지 영화”

영화를 본 관객들은 냉각된 한일관계 속에서 과거사에 대한 일본의 반성이 필요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가장 먼저 영화관을 찾은 이케모토 에이코 씨(70)는 “한일 간 아픈 역사가 있다는 것을 일본이 확실히 인정하고 양국 관계를 정립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1회 영화 상영이 끝난 후 일본인 배우들이 무대 인사를 가졌다. 도쿄=김범석 특파원 bsism@donga.com
1회 영화 상영이 끝난 후 일본인 배우들이 무대 인사를 가졌다. 도쿄=김범석 특파원 bsism@donga.com


무대 인사를 하러 나온 일본인 출연 배우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토 마사유키(佐藤正行) 씨는 “아베 정권이 관동대지진 후 조선인 학살에 대해 부정하고 있지만 이는 사실”이라며 “많은 분들이 역사적 진실과 마주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영화관 밖에서는 일부 극우 세력이 영화 박열을 ‘반일망상판타지 영화라며 상영 반대 시위를 벌였다. 도쿄=김범석 특파원 bsism@donga.com
영화관 밖에서는 일부 극우 세력이 영화 박열을 ‘반일망상판타지 영화라며 상영 반대 시위를 벌였다. 도쿄=김범석 특파원 bsism@donga.com

이런 가운데 영화관 밖에서는 일부 극우 세력이 영화 상영 반대를 주장하며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이들은 영화관 앞에서 일장기를 들고 관객들을 위협하는 가하면 인근 도로 앞에서는 확성기를 들고 박열을 ’폭탄을 든 테러리스트‘라고 비난했다. 이들은 “이런 테러리스트를 그린 영화를 일본에서 상영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반일망상판타지 영화‘의 상영을 중단하라”고 외치기도 했다.

도쿄=김범석 특파원 bs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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