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찌민 거리 곳곳엔 北빼닮은 선전화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2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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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 기자의 베트남 현지 르포

호찌민 시내에 걸려 있는 공산당 선전물. 붉은 베트남 국기와 각 계층을 상징하는 인물들이 구도를 이룬 그림은 북한 선전화를 연상케 한다.
호찌민 시내에 걸려 있는 공산당 선전물. 붉은 베트남 국기와 각 계층을 상징하는 인물들이 구도를 이룬 그림은 북한 선전화를 연상케 한다.
#장면1. 2월의 뜨거운 햇볕에 달아오른 베트남 호찌민 시내 도로 옆에 낯익은 광고판이 눈에 들어왔다. 베트남 국기를 바탕으로 노동계급을 상징하는 노동자가 있고, 그 뒤로 농민, 군인, 체육인, 지식인을 상징하는 사람들이 서 있는 그림이었다.

북한 노동당이 가장 많이 쓰는 선전화와 구도가 판박이였다. 밑에 적힌 베트남어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북한이라면 저 밑에 “당의 기치 따라 사회주의 혁명의 승리를 향하여 앞으로”라는 구호가 적혀 있을 것이다. 선전화를 보는 순간 ‘베트남이 공산당 국가구나’라는 생각을 새삼 떠올렸다. 강력한 붉은색을 바탕으로 그려진 선전화는 시내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베트남의 국부 호찌민 전 주석이 선전화 속에서 인자한 미소를 보내고 있었고, 선전화의 대다수가 계급적 화합과 충성을 강조하고 있었다. 밑에 적힌 베트남어만 아니라면 북한 선전화라고 해도 전혀 차이점이 없어 보였다.

#장면2. 베트남에서 규모가 제일 큰 ‘호찌민 전쟁기념관’에서 북한 황해남도 신천군에 있는 ‘신천박물관’을 떠올렸다. 기념관 입구에 전시된 미군 전투기와 탱크를 볼 때만 해도 승전국 전쟁 기념관이기에 북베트남군이 승리한 기록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기념관에는 전쟁으로 인한 끔찍한 참상들만이 전시돼 있었다. 학살의 기록을 담은 사진과 전시물들을 보면서 ‘신천박물관’을 떠올렸다. 기념관 측은 전시 의도에 대해 “미군을 고발하기 위해 전시한 것이 아니라 전쟁이 인간을 얼마나 비인간적으로 만들 수 있는지를 세상 사람들이 깨닫게 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철저히 미군의 잔혹성에 치를 떨도록 기획한 신천박물관과 다른 점이었다. 북한도 북-미 관계를 정상화한 뒤 신천박물관에 “증오가 아닌 기억을 위한 것”이라는 설명문을 새로 붙이게 될지 모른다.

#장면3. 관광지 해변에서 택시 운전사는 노선이 표시된 구글맵을 꺼내 보여주는데도 태연히 방향과 반대로 차를 몰고 갔다. 영어로 설명해도 못 알아듣는 척이다. “스톱”이라고 외치자 ‘그럼 차를 돌릴까’라는 제스처를 취한다. 머리를 끄덕이자 왔던 길로 돌아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돌아갔다. 이 택시 운전사를 보면서 외국 기업들이 들어가는 족족 사기를 당해 결국 짐을 싸고 나오는 북한을 떠올렸다. 외국 기업에 대한 북한의 호의는 차에 오를 때까지다. 전 세계가 신뢰할 수 있는 사회주의라는, 중국과 베트남도 이루지 못한 일을 북한은 과연 이뤄낼 수 있을까.

호찌민=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베트남#호찌민#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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