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유근형]마음은 콩밭에… 장관님의 이중생활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2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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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사당 전경/뉴스1
국회의사당 전경/뉴스1
처음엔 관람객을 안내하는 국회 직원인 줄 알았다.

정장을 차려입은 남성을 한 무리의 사람들이 졸졸 따라갔다. 그들은 국회의사당이 잘 보이는 국회 앞마당 포토존에서 단체사진을 찍었다. 관광객으로 가득한 런던과 파리의 국회의사당 풍경을 보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좀 더 가까이 가서 보니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풍경이었다. 익숙한 얼굴의 인솔자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출신 A 장관이었다. 국회를 방문한 자신의 지역구 인사들을 챙기고 있었던 것이다. 방문객 한 명 한 명과 손을 맞잡는 모습이 지역구 행사장을 연상케 했다.

유근형 정치부 기자
유근형 정치부 기자
며칠 전 국회 앞의 일이었다. 의아한 마음에 시계를 봤다. 오전 11시 40분. 장관의 공식 업무시간인 평일 오전에 지역구 활동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더구나 국회는 여야 대치로 1월에 이어 2월도 사실상 ‘올 스톱’ 상태. 국회는 상임위원회, 본회의 등 일정이 없는 날이었다. 장관이 국회까지 올 이유가 없어 보였다. A 장관의 국회 방문은 해당 부처 공무원들도 모르는 눈치였다.

장관들의 지역구 챙기기가 불법은 아니다. 국회법 제29조 1항은 ‘의원은 국무총리 또는 국무위원(장관) 직 외 다른 직을 겸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현역 장관도 의정 활동을 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장관직을 소홀히 한다’는 비판 여론을 의식해 지역구 관련 활동은 자제하는 편이다. 한 장관의 정책보좌관은 “정치인 장관은 주말에도 지역구 가는 게 조심스럽다. 평일 대낮에 국회에서 지역구를 챙긴 건 너무 뻔뻔하다”고 했다.

사실 A 장관의 과도한 지역구 사랑은 이전부터 꽤나 유명했다. 그는 장관직에 오른 뒤에도 의원실 보도자료를 내서 지역 관련 업적을 홍보했다. 지역구 특산품인 한우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기 위해 “돼지고기는 안 먹는다”는 농담도 종종 했다. 설 연휴에는 지역구 특산물인 사과를 주변에 선물로 돌리기도 했다.

A 장관은 부처 출입기자들과 만날 때도 지역구 얘기를 자주 꺼냈다고 한다. 장관이 된 후 첫 기자단 상견례에선 장관으로서 정책 비전을 밝히기보다 “다음 총선에 꼭 당선되고 싶다”고 말했다고 한다. “내가 지역구를 못 가 아내가 대신 지역행사를 챙긴다”고도 했다. 그를 보좌하는 공무원들조차 자주 고개를 갸웃거렸다고 한다.

물론 정치인 출신 장관은 장점이 적지 않다. 관료, 학자 출신에 비해 부처를 강하게 장악하고, 추진력을 발휘해 성과를 내는 데 능하다. 하지만 국민의 삶보다는 자기 정치에 더 열정을 쏟는 장관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염불보다 잿밥이 관심인 장관 밑에서 얼마나 많은 공무원이 제대로 일하겠는가.

다가올 개각에서 내년 총선에 출마할 정치인 장관들이 국회로 복귀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민주당 중진의원들이 청와대에 로비전을 펼친다는 말도 들려온다. 인사권자인 문재인 대통령이 옥석을 잘 가리길 바랄 뿐이다.
 
유근형 정치부 기자 noel@donga.com

#국회의원#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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