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고기정]‘한국형 우버’ 대표가 얻은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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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년 1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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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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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정 경제부장
고기정 경제부장
김성준 대표의 차차크리에이션(차차)은 한국형 우버 중 하나였다. 차량공유 서비스 업계에서 ‘한국형’이라는 말은 ‘외국에선 되고 한국에선 안 되는’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차차도 그랬다.

김 대표의 사업모델은 렌터카와 대리운전기사를 결합한 것이다. 대리기사 A가 자기 명의로 렌터카를 장기 대여한 뒤 고객이 차에 탑승하면 자동으로 렌터카의 대여자가 A가 아닌 고객이 된다. A는 고객의 렌터카를 대신 운전해주는 대리기사로 신분이 바뀐다. 차량 호출은 모바일 앱으로 한다. 승용차로 영업을 할 수 없으니 렌터카를 이용하자는 구상이었다.

재작년 10월 시범서비스를 시작한 차차의 회원 수는 4만 명, 앱 다운 수는 10만 건이 넘었다. 인스타그램으로만 홍보했는데 이 정도면 꽤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

사달이 난 건 지난해 7월이었다. 국토교통부는 차차의 요금 구조가 택시나 다름없다고 통보했다. 대리기사가 받는 요금에는 고객이 있는 곳까지 차량을 운행한 대가가 포함된 것으로 봐야 하기 때문에 렌터카로 영업을 못 하게 한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김 대표의 아이디어도 절묘했지만 국토부 논리도 기가 막혔다.

그 즈음 만난 김 대표는 억울한 심경에 그야말로 펄펄 뛰었다. “국토부가 처음엔 문제없다고 했다가 이제 와서 택시업계 눈치에 불허 결정을 내렸다”는 것이다. 행정소송이든 뭐든 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손을 써볼 새도 없이 투자 유치는 없던 일이 됐고, 자본금에 김 대표 사재를 더한 30억 원도 속절없이 사라졌다. 대리기사 75명과 직원 15명도 모두 떠났다.

그런 김 대표와 최근 다시 연락이 닿았다. 이대로 그만두기엔 사업모델이 너무 아까워 다시 시작해 보겠단다.

첫 도전에서 실패한 가장 큰 이유가 뭐였던 것 같으냐고 물었다. 그는 택시업계를 껴안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동안 상생 방안을 마련했다. 차차의 플랫폼을 택시조합에 개방해 카카오택시처럼 이용하게 하고, 택시기사를 차차가 직접 고용하는 길을 열어주는 식이다.

그렇다고 해서 한번 불허된 사업모델이 정부 문턱을 통과할 수 있을 것 같은지 물었다. 김 대표는 기존 접근 방식에 문제가 있었다고 했다. 이번에 안 사실이었지만, 그는 회사를 시작하기 전에 사업모델을 조각조각 잘라서 국민신문고에 민원 형태로 한 건씩 질의해 회신을 받았다. 정부에선 모두 합법이라고 했다. 한꺼번에 묶어서 질의하지 않은 건 ‘시간’ 때문이었다. 정부의 최종 판단을 기다리다간 몇 년이 걸릴 수도 있다는 게 당시 변호사들의 조언이었다. 스타트업은 속도가 생명이다. 김 대표는 당장의 속도를 위해 나중에 발목을 잡힐 것을 감수해야 했다.

그럼에도 끝내 정부가 안 된다고 하면 어떻게 할 거냐고 물었다. 그는 “그동안 얻은 교훈은 ‘정부와 각을 세우면 안 된다’는 것”이라는 말로 대답을 대신했다.

두 번째 스타트업 도전에 나서는 김 대표는 한국에서 뭔가를 해보려면 경쟁자인 이해관계자를 껴안을 방법을 자기가 직접 찾아서 설득까지 해내고, 사업이 언제 가능할지 몰라도 묵묵히 참고 기다려야 하며, 설령 정부가 반대하거나 도와주지 않더라도 무조건 고분고분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그전까지 사회적 약자였던 직업군마저 변화를 거부하는 기득권으로 치부되거나, 기득권 세력이 변화를 추동하는 혁신가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신기술이나 아이디어보다 사회의 이해조정 능력이 더 필요하다고들 한다. 우리는 신기술도, 아이디어도, 이해조정도 개인이 다 해내야 할 판이다. 김 대표가 한 번의 실패에서 얻은 교훈이 이런 거라 생각하니 씁쓸할 뿐이었다.
 
고기정 경제부장 koh@donga.com
#차차크리에이션#김성준 대표#한국형 우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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