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 2층이 애들 놀이터 된 까닭

  • 주간동아
  • 입력 2019년 1월 12일 11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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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호영 기자]
[지호영 기자]
백화점에는 오랜 공식이 있다. 1층은 화장품, 2층은 여성복, 3층은 남성복, 4층은 영캐주얼, 5층은 리빙·가구, 6층은 음식점 등 전국 어느 백화점이든 큰 차이가 없다. 그래서 이름이 다른 백화점을 방문해도 익숙한 느낌을 받는다.

매장 배치를 보면 백화점과 쇼핑센터에서 주 고객으로 삼는 타깃이 누구인지 짐작할 수 있다. 시간 여유가 많아 평일에도 방문율이 높은 주부들을 위해 1, 2층에는 주로 관련 매장을 집합해놓는다. 위층으로 올라갈수록 영캐주얼, 남성패션 등 주부의 관심이 덜한 매장들이 자리한다.

특히 키즈 매장은 5층 이상 고층에 자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백화점과 쇼핑센터 매출에서 차지하는 파이가 그리 크지 않기 때문. 사정이 이렇다 보니 유모차를 끌고 아이와 함께 방문하는 소비자는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다.

서울 서초구 반포동에 거주하는 30대 주부 김모 씨는 “주로 집 근처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을 방문하는데 아이들과 함께 갈 때면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9층 키즈카페 ‘리틀란드’에 가려면 둘째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첫째의 손을 잡은 채 엘리베이터를 타야 하는데 평일에도 사람이 많아 한 번에 탈 수가 없다. 에스컬레이터를 타려면 유모차를 접고 아이 둘을 챙겨야 하는 데다 어지러울 정도로 올라가야 해 힘들다. 키즈카페가 5층에만 있어도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근 저층부에 영·유아를 위한 매장과 체험공간을 전면 배치한 신규 쇼핑센터와 백화점이 부모들 사이에서 호평받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12월 14일 위례신도시에 오픈한 ‘스타필드 시티 위례’. [지호영 기자]
최근 저층부에 영·유아를 위한 매장과 체험공간을 전면 배치한 신규 쇼핑센터와 백화점이 부모들 사이에서 호평받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12월 14일 위례신도시에 오픈한 ‘스타필드 시티 위례’. [지호영 기자]
이런 가운데 백화점 층별 공식을 깨고 2층에 과감히 아이들을 위한 매장을 배치해 환영받는 곳이 속속 생겨나고 있다. 지난해 12월 7일 경기 안산시 단원구에 리뉴얼 오픈한 ‘롯데백화점 안산점 신관’과 같은 달 14일 경기 하남 위례신도시에 문을 연 라이프스타일몰 ‘스타필드 시티 위례점’이 그 주인공이다.

1월 7일 스타필드 시티 위례점을 찾았다. 이곳은 대지가 협소한 도심지역에 기존 스타필드의 장점을 살린 쇼핑센터다. 위례 신도시 서북쪽에 자리해 접근성이 좋지는 않지만 문을 연 뒤 사흘 동안 12만 명이 다녀갔을 정도로 인근 주민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

지상 4층 주차장과 연결된 입구를 통해 매장으로 들어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는데, 인조 넝쿨로 장식한 천장 덕분에 온실에 들어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지하 1층부터 지상 4층까지 층고를 개방한 것은 여타 스타필드와 비슷해 통일감이 느껴졌다.

2층은 곳곳을 아기자기하게 꾸며 쇼핑센터라기보다 커다란 키즈카페를 연상케 했다. 아이 연령대에 따라 섹션을 구분해둔 것이 무엇보다 눈길을 끌었다. 생후 12개월까지 신생아를 위한 ‘마리스 베이비 서클’존은 각종 산후용품과 유모차, 카시트 등을 한번에 구비할 수 있게 꾸며놓았고, 안쪽에는 커피숍 같은 ‘엘빈즈’ 이유식 카페테리아가 있었다. 이곳에서는 커피를 주문하듯 아이 기호에 따라 이유식을 주문하면 점원이 즉석에서 이유식을 데워줘 엄마가 편히 아이에게 먹일 수 있었다.

할머니, 엄마, 자녀 3대가 나란히 앉아 이유식을 먹이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인근 아파트에 거주한다는 주부 A씨는 “집에만 있기 답답해 친정엄마와 바깥 공기를 쐬러 나왔다. 이유식을 준비해 왔지만 다른 재료로 만든 이유식을 먹여보고 싶어 주문했는데 다행히 아이가 잘 먹어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바로 옆에는 수유실을 마련해놓아 신생아와 엄마의 동선을 최소화하도록 배려했다는 것이 느껴졌다.

2층 키즈존에 부모들 반색

‘스타필드시티 위례’ 2층에 마련된 ‘별마당 키즈’는 누구나 자유롭게 동화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으로 이곳 명물로 자리 잡았다. [지호영 기자]
‘스타필드시티 위례’ 2층에 마련된 ‘별마당 키즈’는 누구나 자유롭게 동화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으로 이곳 명물로 자리 잡았다. [지호영 기자]
유아기 아이를 위한 ‘스타필드 키즈’존에는 여러 키즈 의류매장이 모여 있었다. 중앙에는 놀이공원에나 있을 법한 회전목마가 자리해 눈길을 사로잡았다. 동전을 넣고 목마 위에 앉으면 서서히 돌아가는 진짜 놀이기구인가 싶어 자세히 보니 바닥에 ‘포토존’이라고 쓰여 있었다. 부모들은 아이를 회전목마 앞에 세워놓고 사진을 찍기도 했다.

바로 옆에는 아이들의 천국으로 불리는 ‘토이킹덤’ 매장이 있었다. 특히 이곳은 미취학 아동을 위해 아기자기하게 꾸민 흔적이 보였다. 입구에는 기차 모양의 포토존을 배치했고, 중앙에는 어른 키보다 큰 티라노사우루스 모형이 전시돼 있었다. 이 장난감이 고개를 움직이면서 눈을 끔뻑거리고 공룡 울음소리를 내자 놀란 아이들이 부모 품으로 달려가 쏙 안겼다. 그 뒤편으로 레이싱카를 조종할 수 있는 미니트랙, 레고 놀이를 할 수 있는 대형테이블, 매니큐어를 칠할 수 있는 화장대 등이 줄지어 자리했다.

단순히 장난감만 진열하지 않고 곳곳에 체험부스를 만들어 아이들의 발길을 끄는 ‘토이킹덤’ 매장. [지호영 기자]
단순히 장난감만 진열하지 않고 곳곳에 체험부스를 만들어 아이들의 발길을 끄는 ‘토이킹덤’ 매장. [지호영 기자]
계산대 앞에 어떤 장난감이 가장 많이 팔렸는지 알려주는 ‘베스트 파이브’ 기록이 적혀 있어 흥미로웠다. 1위 쏘슬라임 팩토리, 2위 핑크퐁 동전노래방, 3위 플레이도 싱글캔 도우, 4위 리틀퓨처북 뽀로로펜 3.0, 5위 띠띠뽀 말하는 관제센터 놀이세트로 생후 36개월 이내 영아뿐 아니라 슬라임과 플레이도 등 초등학생이 좋아하는 장난감이 높은 순위를 기록했다.

서울 코엑스 리모델링으로 탄생한 ‘별마당 도서관’을 축소해 아이를 위한 공간으로 꾸민 ‘별마당 키즈’도 이곳의 명물이다. 토이킹덤 매장 옆으로 난 통로를 이용하면 별마당 키즈로 바로 갈 수 있는데, 곳곳에 마련된 소파에 아이들이 반쯤 드러누워 책을 보거나 부모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중앙 소파를 둘러싼 책꽂이에 놓인 테블릿PC로는 감성지수를 확인해볼 수 있다.

책을 관리하는 직원은 “겨울방학을 맞아 아이들과 이곳에서 시간을 보내는 부모가 늘었다. 책은 자유롭게 꺼내 보고 빈 공간 아무 데나 꽂아놓으면 된다. 특별히 감시하지 않아도 보는 눈이 많아 가져가거나 하는 경우는 없다. 이용에 어떤 제한도 없어 아이 대부분이 마음껏 책을 읽으면서 시간을 보낸다”며 분위기를 전했다.

별마당 키즈 맞은편에 자리한 영풍문고 역시 외부에는 아이들을 위한 책이 주로 진열돼 있었는데, 안으로 들어갈수록 초중고 순으로 대상 연령대가 높아지는 구조였다. 부모와 아이들이 주 고객이다 보니 전략적으로 책을 배치한 것으로 보였다. 특히 화제의 책을 진열해두는 중앙 매대의 경우 최근 드라마 ‘SKY 캐슬’에서 독서토론 책목록에 포함됐던 ‘이기적 유전자’를 빼곡히 올려놓아 철저히 학부모들을 공략했다.

아이 많은 신도시에 맞춤형으로

[지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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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이 아이들을 공략한 공간이라면 다른 층은 어떻게 꾸며졌을지 궁금했다. 여성을 위한 매장은 대부분 1층에 있었다. 여성패션과 잡화, 뷰티 매장이 18곳이었다. 특이한 점은 BMW 매장이 1층에 자리하고 있다는 것. 월요일 오후시간대에 찾은 터라 매장에는 손님이 거의 없었다.

반면, 맞은편 스타벅스 리저브 매장은 평일 낮시간대 중년 여성들의 만남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었다. 또 대각선 방향으로 일반 쇼핑몰 1층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편의점 ‘이마트24’가 자리하고 있는데, 의외로 손님이 가장 많았다. 가족 단위, 젊은 커플 등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간단하게 필요한 물품을 사려고 들르는 듯했다. 3층에는 신세계 계열 쇼핑센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자제품 매장 ‘일렉트로마트’와 함께 중·장년 남성을 위한 ‘스타필드 맨즈’ 매장, 나이키, 아디다스 등 젊은 층을 공략한 스포츠 매장이 자리했다. 지하 1층, 지상 4층은 식음료 매장과 생활용품 매장이 주를 이뤘다.

층별 매장 구성에 변주를 준 이유에 대해 구필모 신세계프라퍼티 홍보실 부장은 “오픈 전 상권조사를 하면서 해당 지역에 영·유아와 초등학생 거주 비율이 높은 것으로 파악됐다. 이 때문에 하남점, 고양점의 경우 3층에 자리한 키즈존을 위례점에서는 2층으로 내렸다. 아직 오픈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집계하기 어렵지만 키즈존에 대한 반응이 매우 좋다. 주말에 현장조사를 가보면 2층에 머무르는 고객이 월등히 많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12월 7일 문을 연 ‘롯데백화점 안산점 신관’도 2층에 키즈 매장을 배치해 이용객의 편의를 높였다. [지호영 기자]
지난해 12월 7일 문을 연 ‘롯데백화점 안산점 신관’도 2층에 키즈 매장을 배치해 이용객의 편의를 높였다. [지호영 기자]
롯데백화점 안산점 신관도 2층에 키즈 매장을 배치해 인근 주민들로부터 호평을 받고 있다. 이곳은 원래 주차장과 호텔로 사용하던 대지에 지하 1층, 지상 5층 규모의 백화점 매장을 설립하면서 층별 구성을 기존과 다르게 시도했다.

1월 8일 찾은 롯데백화점 안산점 신관은 상업지구 대로변에 자리해 접근성이 비교적 좋았다. 대도시 백화점보다 작았지만 새로 지은 지 얼마 안 돼 깔끔하고 세련된 분위기가 풍겼다. 1층은 무인양품 매장이 대부분을 차지했고, 바로 옆으로 드러그스토어 롭스, 중앙부에는 커피숍이 자리해 상당히 신선했다. 에스컬레이터 옆으로는 벽걸이 화분이 규칙적으로 걸려 있어 따스하고 온화한 느낌을 줬다.

2층은 키즈 매장이 연령대별로 이어져 있었다. 생후 12개월 이내 영아를 위한 매장들 사이에는 이유식 카페 ‘에코맘 산골이유식’이 자리해 즉석에서 구매해 먹일 수 있었다. 이 밖에 영·유아 창의놀이 장난감 매장 ‘마이리틀타이거’, 레고 조립 체험을 할 수 있는 ‘맥킨더’ 등 완구 매장과 ‘블루독’ ‘리틀그라운드’ ‘초코엘’ 등 영·유아 패션 매장이 자리했다.

한쪽 코너에는 ‘뽀로로 맘앤키즈 카페’가 있었는데 평일 오전 이른 시간임에도 아이와 함께 방문한 엄마들이 두세 팀 눈에 띄었다. 인근 지역 주민이라고 밝힌 주부 B씨는 “겨울이라 아이를 데리고 마땅히 다닐 곳이 없다 보니 실내 놀이시설을 찾게 된다. 아이가 뽀로로를 좋아하는데 동네 백화점에 마침 뽀로로 키즈카페가 생겨 벌써 몇 번 방문했다. 평일 오전이 그나마 사람이 적어 종종 방문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지역별 오프라인 매장 혁신 필요”

2층 코너에 자리 잡은 ‘뽀로로 맘앤키즈 카페’. [지호영 기자]
2층 코너에 자리 잡은 ‘뽀로로 맘앤키즈 카페’. [지호영 기자]
뽀로로 맘앤키즈 카페 직원은 “홍보를 대대적으로 한 것도 아닌데 오픈 첫날부터 지역 주민이 많이 찾아줬다. 평일에는 약 150명, 주말에는 2~3배가량 더 입장하는 것으로 집계된다. 크리스마스에는 줄을 서 기다리는 가족 단위 고객이 많았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김한준 롯데쇼핑 홍보실 담당은 “신관 오픈 전 지역 소비자 타깃 조사에서 자녀를 둔 30, 40대 부모의 비중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인근에 새로운 아파트 단지가 들어설 것으로 예상돼 잠재 고객을 위한 전략이 필요했다. 오픈 한 달째인데 통상 고층부에 있던 유·아동 관련 매장을 2층으로 배치한 것에 대한 소비자 만족도가 높다”고 설명했다.

백화점이나 쇼핑센터에서 이렇게 변화를 시도하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 소비트렌드가 변하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구혜경 충남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쇼핑의 중심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넘어간 지 오래다. 오프라인 매장들은 고객을 일단 집 밖으로 끌어내려고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 키즈존을 2층에 배치한 것도 그 일환이라고 볼 수 있다. 아무리 싱글족이 늘어났다 해도 자녀가 있는 가정이라면 소비의 중심은 자녀에게로 자연히 맞춰진다. 씀씀이도 싱글족에 비해 클 수밖에 없다. 이들의 지갑을 열려면 철저히 입맛에 맞는 전략적인 매장 배치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런 전략을 모든 백화점이나 쇼핑센터에 적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20, 30대 싱글족과 커플이 주로 찾는 서울 강남역이나 홍대 앞 백화점과 쇼핑센터, 여행객이 넘치는 명동 한복판의 백화점과 쇼핑센터 저층부에 키즈존을 배치할 수 없는 노릇이다. 이 때문에 주요 타깃층의 소비패턴을 파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구 교수는 “앞으로 오프라인 매장은 점점 더 눈으로 확인만 하는 쇼룸으로 기능할 가능성이 높다. 결국 소비자가 방문해 지갑을 열게 하려면 온라인에서 줄 수 없는 쇼핑의 즐거움을 타깃에 맞춰 극대화하는 전략이 필요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혜연 기자 grape06@donga.com

<이 기사는 주간동아 1172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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