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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윤승옥]비주류의 짜릿한 전복… 우리 곁에 ‘박항서’는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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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윤승옥]비주류의 짜릿한 전복… 우리 곁에 ‘박항서’는 없나

윤승옥 채널A 스포츠부장 입력 2018-12-17 03:00수정 2018-12-17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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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승옥 채널A 스포츠부장
지금 베트남은 광기 그 자체라고 한다. 베트남 호찌민에 살고 있는 후배는 전화 통화에서 “도시 기능이 마비된 것 같았다”고 전했다. 박항서 감독이 이끄는 축구대표팀이 10년 만에 스즈키컵 우승을 차지한 직후, 길거리는 응원단과 오토바이가 점령했다.

시민들은 길이 막혀 16일 0시를 넘어서야 집에 도착했다고 한다. 거리마다 밤새 환희로 들끓었다. 베트남 언론은 “온 국민이 잠들지 못했다”고 전했다.

베트남의 경기를 보면서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찌 보면 공놀이에 불과한 축구. 그 안에 무엇이 도사리고 있길래 온 나라를 흔드는 에너지가 발산되는 걸까.

진화생태학적 주장을 보면, 축구는 원시의 본성과 맞닿아 있다. 두 발로 달리게 된 인간이 팀을 이뤄 목표(Goal)인 사냥감을 잡는 것. 그 원시 사냥을 현대적인 경기로 그대로 구현한 것이 축구라는 것이다. 그래서 누구나 축구를 본능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축구가 문화권을 떠나 어디서든 환영받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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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경기가 열리면 사회가 광적으로 돌변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사냥의 성공과 실패는 집단의 생존이 걸린 문제였다. 그래서 공동체는 사냥에 앞서 축제를 열고, 구성원 모두가 큰 소리로 사냥꾼에게 힘을 불어넣는다. 그리고 사냥꾼들의 성과에 환호로 화답한다. 현대인들이 축구를 응원하는 것 역시, 우리의 유전자 속에 깊이 각인돼 있는 생존 본능과 맞닿아 있는 것이다.

그래서 베트남 국민은 이번 축구의 성취를 통해 자신들의 미래를 낙관하게 됐을 것이다. 특별히 스즈키컵의 에너지가 더 컸던 건, 태국이라는 존재 때문이었다. 베트남은 태국을 라이벌로 여긴다. 우리가 일본을 보듯, 그런 관계다. 경제적으로 태국이 더 부유하고, 유행도 빠르다. 축구도 더 잘한다. 태국은 스즈키컵 최다 우승국이었고, 이번에 대회 3연패를 노렸다. 그래서 이번에 베트남이 태국을 제치고 우승을 차지하면서, 그 자신감이 급속히 확산된 것이다.

그런데 왜 대한민국까지 베트남 축구에 열광하는 것일까. 이번 스즈키컵 결승전 시청률은 20% 가까이 나왔다. 압도적이었다. 스즈키컵의 존재를 알았던 국민이 몇이나 됐을까. 너무 파격적인 수치다. 물론, 박항서 감독 때문이다. 그렇다면 박 감독의 무엇이 우리 국민의 마음을 움직인 것일까.

스포츠 사회학자들의 의견은 대체로 비슷했다. 박항서 감독은 우리 사회 주류에서 배제된 사람이다. 국내에서 일자리가 없어 변방 베트남 축구에 겨우 자리를 잡았다. 그렇다고 원래 잘났던 사람도 아니다. 배경이 좋은 사람도 아니다. 그는 요즘 우울한 대한민국 서민의 자화상이다. 우리 국민은 자신과 박 감독을 동일시했다.

그런 그가 기적 같은 힘을 발휘했다. 박 감독의 성취를 보며 용기를 얻었다. 자신도 모르게 박수를 보냈다. 물론 결과에 이르는 과정에서 드러난 박 감독의 공정하고 따뜻한 리더십도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불공정하고, 너무 냉정한 사회에 대한 반발이었다. 성공한 영화의 스토리텔링이 대부분 이렇다. 그런데 스포츠는 각본이 없다. 영화보다 더 현실적이다.

박 감독의 성취에 진심으로 박수를 보낸다. 동시에 우리 사회의 결핍을 본다. 박 감독이 베트남 국민에게 안겨준 희망, 그건 우리에게도 필요한 것 같다. 베트남 경기를 보며 환호하면서도, 씁쓸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던 이유다.
 
윤승옥 채널A 스포츠부장 touch@donga.com
#베트남#박항서#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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