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 이야기]저기압이 수탉을 울게 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2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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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상민 케이웨더 공기지능센터장
차상민 케이웨더 공기지능센터장
저녁에 수탉이 울면 비가 온다는 속담이 있다. 수탉은 자기 영역 수호에 집착하는 싸움꾼이다. 새벽에 깨어나자마자 소리 높여 자기 영역을 선포한다. 수탉은 뇌 속 빛을 감지하는 송과체가 발달해서 여명의 빛에도 예민하게 반응하여 잠에서 깨어날 수 있다. 그런데 저녁에 수탉이 우는 것은 신경이 날카로워져서 경쟁자가 침입해 올지도 모른다는 불안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은 대체로 저기압일 때 나타난다. 기압이 낮아지면 수탉은 신경이 자극되어 공격적으로 변해 싸울 듯 울어댄다. 이는 비구름이 몰려온다는 신호가 된다. 이러다 보니 수탉이 저녁에 울면 비가 내린다는 속담이 생기게 되었다.

우리의 기분도 날씨에 영향을 받는다. 저기압으로 습도가 높아지면 신진대사가 원활하지 못해 사람들은 쉽게 피곤해지고 짜증을 내며 범죄 발생도 증가한다. 2014년 서울지방경찰청에 접수된 3만9620건의 가정폭력 신고 사건을 조사한 연구 결과는 습도가 높아질수록 가정폭력도 늘어남을 보여준다. 겨울이 되어 밤이 길어지고 햇빛을 받는 시간이 줄어들면 체내 비타민D 생성이 지장을 받고 긍정적인 기분을 높여주는 세로토닌 분비도 줄어든다. 결국 우울증 환자가 늘어나는 ‘윈터 블루스’ 현상이 나타난다. 17세기 영국 성공회 주교 로버트 버턴이 쓴 ‘멜랑콜리의 해부’는 절망과 좌절, 그리고 자살로 이어지는 인간의 감정 변화에 날씨가 얼마나 깊이 연관되어 있는지를 이미 잘 설명해주고 있다.

하지만 날씨가 기분에 미치는 영향은 우리의 행동과 사고방식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닉 해슬람 호주 멜버른대 심리학 교수는 “날씨의 영향은 생물학적이라기보다는 심리적이며 사회적인 것이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날씨가 감정을 쉽게 좌우하도록 내버려두면 때로는 돌이킬 수 없는 낭패에 이르게 된다. 인간이 목석이 아닌 다음에야 감정에 치우치지 않을 수는 없지만 수양을 위한 교훈으로 장자(莊子)에 나오는 목계지덕(木鷄之德)의 고사가 도움이 될 것이다.

닭싸움을 좋아하는 왕이 최고의 싸움닭을 만드는 조련사에게 언제쯤 싸움에 내보내도 될지 여러 번 되물었다. 왕은 조련사로부터 “이제야 닭이 교만하고 들떠 있는 단계(虛교而恃氣)를 지나 작은 소리와 그림자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는 단계(應嚮景)도 지나 미움이 가득한 단계(疾視而盛氣)를 거친 후 마침내 다른 닭이 울든 말든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고 마치 나무로 깎아 만든 닭처럼 되었다”는 답변을 들을 때까지 기다려야만 했다. 교만, 초조, 분노, 미움을 떨쳐버리고 평정을 찾은 후에야 아무도 대적할 수 없는 최고의 투계가 되었다는 것이다.

최근 우리 주변에는 즐거운 소식보다는 불안, 좌절, 혐오, 분노, 우울을 일으키는 얘기들이 더욱 많이 들려온다. 여기에 더하여 겨울 날씨와 미세먼지는 우리의 기분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를 힘들게 하는 언짢은 감정들을 무심한 마음으로 바라보는 목계지덕을 스스로에게 베풀어 봄 직하지 않을까.
 
차상민 케이웨더 공기지능센터장
#저기압#비#수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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