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TV’ 만들고픈 백악관, VOA 장악하나?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2월 14일 23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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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우’ 배넌 우군, 내년 VOA 수장 될 가능성
트럼프 “미국 진짜 모습 보일 언론사 만들 수도” 발언
反트럼프 “VOA 편집권에 간섭 없어야”

VOA 스튜디오
VOA 스튜디오
“CNN은 미국 밖에선 독점적 위치를 점하고 있다. 미국의 진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전 세계로 방송되는 언론사를 하나 만드는 것도 방법이다. 굉장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27일 자신의 트위터에 이같이 적었다. 얼핏 보면 ‘국영 트럼프 TV’를 만들겠다는 선언처럼 보이는 이 발언이 나오자 미국 정부가 운영하는 언론사인 ‘미국의소리(VOA)’의 중립성이 위기에 빠질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해외에 백악관의 의중을 그대로 전달하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언론사는 현재로서는 전 세계에 47개 언어로 보도되는 VOA가 유일하기 때문이다.

현지 언론은 트럼프 대통령이 올 6월 VOA를 관리하는 글로벌매체국(Agency for Global Media) 최고경영자(CEO)로 지명했던 마이클 팩의 상원 인준 표결이 해당 매체의 중립성을 가르는 분수령이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팩이 극우 성향의 전직 백악관 수석전략가인 스티브 배넌과 과거 협업한 경험이 있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배넌은 14일 보도된 LA타임스 인터뷰에서 “워싱턴 내부자들이 VOA를 완전히 장악한 상태”라며 “VOA는 썩은 물고기 같다”라고 비판했다. 배넌의 우군으로 평가되는 팩이 VOA는 물론 글로벌매체국이 운영하는 다른 매체인 자유아시아방송(RFA) 등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의 ‘아메리카퍼스트’ 메시지를 더 충실하게 전달할 거라는 예측이 나오는 배경이다. LA타임스에 따르면 배넌은 백악관에서 일하던 당시에도 꾸준히 대통령이 VOA를 장악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VOA의 중립성을 지켜야 한다는 목소리도 꾸준히 나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을 꾸준히 비판해온 밥 코커 상원의원(공화·테네시)은 LA타임스에 “VOA가 프로파간다 기관으로 변하는 것은 정말 보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내부적인 반발 목소리도 높다. 팩이 인준되면 자리를 비워야 하는 존 랜싱 글로벌매체국 CEO는 4일 미공영라디오(NPR)에 “VOA의 편집권에 그 어떤 간섭도 없어야 한다는 것은 법에 적혀있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어맨다 베넷 VOA 국장도 NPR에 “VOA의 역할은 미국의 이야기를 객관적으로 전달하는 것”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팩의 인준과 관계없이 글로벌매체국이 운영하는 언론사가 중립성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은 올해 들어 이미 제기된 바 있다. 쿠바에서 방송되는 글로벌매체국 계열 매체인 ‘TV마티’는 5월 트럼프 대통령에 비판적인 유명 투자자 조지 소로스를 ‘(유대인임에도) 유대교를 믿지 않는 올곧지 못한 도덕성을 가진 인물’이라고 칭하는 방송을 보도했다가 논란에 휩싸였다. 글로벌매체국은 사과문을 발표한 뒤 내사를 진행 중이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이 VOA에 대해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있어 중립성 위기가 그리 심각하지 않다는 평가도 나온다. VOA의 미국 국내적 인지도가 약해 트럼프 대통령이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배넌은 LA타임스에 “트럼프 대통령이 VOA를 거물급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LA타임스는 VOA의 중립성을 옹호하는 우군들은 대통령의 이 같은 무관심을 오히려 환영하는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한기재 기자 recor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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