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X 탈선, 29분간 교신기록 보니…관제사 “서울행 열차가 탈선했다고?”

  • 동아닷컴
  • 입력 2018년 12월 12일 09시 43분


코멘트
해당 사진은 기사와 관련 없음. 사진=동아일보 DB
해당 사진은 기사와 관련 없음. 사진=동아일보 DB
지난 8일 발생한 강릉발 서울행 806호 KTX 산천 열차의 탈선 사고 전후 상황이 담긴 관제 녹취록이 공개됐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자유한국당 이헌승 의원이 코레일 등으로부터 제출받은 사고 당시 관제 녹취록에는 당일 선로 이상 신호가 감지된 오전 7시 7분부터 열차 탈선 직후인 7시 36분까지 29분간의 상황이 기록돼 있다.

사고 28분 전 강릉역 인근 선로전환기가 고장 났다는 신호가 감지됐지만 경보시스템이 엉뚱한 곳을 지목하는 바람에 역무원들이 사고와 관련 없는 문제 해결을 위해 헛심만 쓰는 과정이 그스란히 담겨있다. 결국 KTX 806호는 별다른 주의를 받지 않은 채 강릉역에서 평소처럼 출발했다 날벼락을 맞았다.

사고 발생 28분 전 오전 7시 7분 강릉기지 관제사가 "청량신호소 21호가 기지에서 내려오는 게 장애가 발생해가지고"라고 말한다. 선로전환기 이상을 감지한 것이다. 구로 관제사는 "큰일 났네 이거"라고 말한다.

당시 고장은 강릉역에서 서울로 향하는 방향의 철길에 설치된 선로전환기에서 발생했지만 고장 신호는 인근 강릉차량기지를 오가는 철로에 있는 선로전환기를 가리키고 있었다.

경보시스템과 연결되는 두 선로전환기의 회로가 뒤바뀌어 끼워져 있었기 때문이다. 두 전환기는 30m 정도 떨어져 있다.

구로 관제사가 7시 11분 "H1636열차가 강릉에서 8:13분 출발해야 하는데 이것부터 (차량기지에서) 못 나오고 있고, 그 다음에는 D1691이 있다"라고 한다. 'H'는 차량기지에서 나가는 차량을, 'D'는 기지로 들어가는 차량을 뜻하는 기호로 이들 차량은 영동선을 오가는 일반 열차다.

H1636이 운행하려면 차량기지에서 나와 강릉역으로 갔다가 출발해야 하는데 고장 때문에 차량기지에서 나오지 못하게 된 것이다.

구로 관제사는 7시 12분 문제의 선로전환기를 정비하기 위해 초기대응팀을 빨리 내보내라 재촉했고 역무원이 직접 선로전환기를 제어하는 '수동취급' 할 준비를 하라고 지시한다.

7시 17분, 구로 관제사가 강릉역 쪽에 "806 열차가 나가는 데는 지장이 없느냐"라고 묻자 강릉역 관제사가 "이거 21호 보내는 건 보낼 수 있다. 신호에서 그렇게 얘기했다"라고 답한다.

녹취록을 보면 사고 열차인 806 열차 쪽 선로전환기가 고장 났지만 아무도 이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이들은 차량기지를 오가는 선로전환기 문제에만 집중했다. 구로 관제사는 7시 21분 "806 나가고 지금 H1636, H808이 나올 게 있지 않냐. 일단 H1636 열차부터 수동취급 할 준비하고 있어라. 준비하고 있다가 806 통과하면 H1636부터 출고시키자"라고 한다.

이후 7시 26분 강릉역에서 대기 중이던 806호 기장이 출발 신호가 떨어졌다는 '출발 감속'을 외친다. 그리고 806 열차는 30분에 출발했다.

7시 35분 사고 직전까지 관제사들은 차량기지 선로전환기 이야기만 나눴다. 그러다 열차 탈선 직후 806 기장이 "분기선에 가다가 열차가 탈선했다"라고 한다. 시속 105㎞로 속도를 내다 서울방향 선로전환기 인근에서 탈선했다.

7시 36분 강릉역 관제사가 "806 열차 탈선했다고 했냐"라고 묻는다. 이어 강릉기지 관제사가 "806 열차가 올라가다가 탈선했다고 한다. 기지에서. 진로를 만진 모양이다"라고 한다.

이헌승 의원은 "고장 신호를 감지하고 조금만 더 현장에서 신속하게 판단을 잘 했다면 사고를 막을 수 있었지만 아무도 열차(운행)를 중지시키지 않았다"면서 "국토부가 제대로 조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소정 동아닷컴 기자 toystory@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