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념은 무슨, 춤이나 춰!… 신명난 포로수용소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2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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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 강형철 감독의 ‘스윙키즈’
1951년 거제 수용소가 배경… ‘댄스 연합군’ 맛깔나게 그려

가장 아픈 시대에 가장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이 만나 ‘춤’으로 행복하고자 몸부림친 이야기를 담은 영화 ‘스윙키즈’. NEW 제공
가장 아픈 시대에 가장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이 만나 ‘춤’으로 행복하고자 몸부림친 이야기를 담은 영화 ‘스윙키즈’. NEW 제공
참신하고 파격적이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지금, 감각적이고 세련된 연출이 돋보이는 한국 영화가 관객들을 찾아간다. 영화 ‘과속스캔들’과 ‘써니’로 충무로에 이변을 일으킨 강형철 감독의 새 영화 ‘스윙키즈’다.

강 감독이 3년 만에 내놓은 ‘스윙키즈’는 3분의 1 이상이 퍼포먼스로 구성된 국내에선 흔치 않은 작품이다. 대사 대신 춤으로 이야기하고 억지 눈물 대신 음악으로 감정을 전달하는 독창적 전개가 돋보인다. 한국영화의 흥행 공식이라는 신파와 울분, 선악 구도가 사라진 것만으로도 박수를 쳐주고 싶다.

‘스윙키즈’는 6·25전쟁 당시 15만 명 가까이 수용했던 거제 포로수용소가 배경이다. 실제로 반공·친공 포로가 대립하고 이념 갈등이 심했던 이곳을 무대로 했지만, 영화는 정치를 뒤로하고 신명나는 춤판을 벌인다는 상상을 펼친다. 강 감독은 “서로 싸우고 죽여야 하는 시대였지만, 이념이나 국가를 떠나 적으로 만났어도 인간 대 인간은 따스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려 했다”고 설명했다.

영화의 시대적 배경인 1951년. 거제 포로수용소장이 대외적 이미지를 위해 댄스단을 만든다는 설정이다. 구성원은 남-북-미-중의 ‘비주류 연합군’. 단장 잭슨(재러드 그라임스)은 흑인이며, 북한 포로 로기수(도경수)와 남한 여성 양판래(박혜수), 포로로 오인받아 잡힌 강병삼(오정세), 중국인 포로 샤오팡(김민호)이 단원이다.

음악의 리듬과 댄서의 몸짓으로 전개하는 연출은 모든 퍼포먼스의 콘티 제작과 촬영 전 애니메이션을 통한 시뮬레이션으로 가능했다. 그라임스는 실제로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손꼽히는 댄서. 주연을 맡은 도경수도 5개월간 탭댄스를 배웠다. 도경수는 “늘 음악을 크게 틀어 현장이 조용할 날이 없었다”고 전했다.

로기수와 양판래가 데이비드 보위의 ‘Modern Love’에 맞춰 춤추는 장면은 세기말적인 시대배경 속에서의 사랑을 그린 레오 카락스 감독의 영화 ‘나쁜 피’(1986년)를 오마주한 대목. 로기수가 춤의 본능을 깨우는 과정을 요리 등 일상의 리듬으로 표현한 연출은 영화 ‘어둠 속의 댄서’(2000년)가 떠오른다.

남북의 이념 대치 가운데 ‘개인의 행복’에 초점을 맞춘 내용이 눈에 띈다. 원작인 창작뮤지컬 ‘로기수’에서 로기수-로기준 형제의 관계를 영화는 로기수와 잭슨의 관계로 확장했다. 이들의 화합을 통해 이념을 이용하려는 극소수의 정치인들과 그들이 일으킨 전쟁의 참혹한 실상을 역설적으로 일깨운다. 그러나 영화는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고 말을 아낀다. 댄스단이 무대를 선보일 때 잭슨이 이렇게 외칠 뿐이다.

“춤의 제목은 ‘빌어먹을 이데올로기(f**k ideology)’입니다.”

우려되는 건 일반 관객이 공감대를 형성할 여지가 얼마나 될까 하는 점이다. 탭댄스라는 낯선 장르에 이념 대립까지 벗어난 내용이 생소해 감정 이입이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상업적 성공을 거둔 감독이 흥행 공식을 답습하지 않고 실험 정신으로 작품을 밀고 나갔다는 점은 높이 살 만하다. 결말이 무겁지만 엔딩크레디트가 끝날 때까지 극장을 떠나지 말길 권한다. 한국 영화에 처음으로 삽입된 비틀스의 원곡이 희망을 노래하기 때문이다.

●영화 스윙키즈 플레이리스트 ♬

루이스 조던 ― Caldonia
엘린 바턴 ― If I Knew You Were Comin′, I′d′ve Baked a Cake
아이슬리 브러더스 ― Shout
리타 김 ― 하바나길라
정수라 ― 환희
바흐 ― 평균율 1권 1번 다장조
데이비드 보위 ― Modern Love
유러피언 재즈 트리오 ― The Christmas Song
베니 굿먼 ― Sing Sing Sing
비틀스 ― Free as a Bird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스윙키즈#도경수#강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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