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쓰고도 “환불”… 매일 7시간 생떼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2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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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질 고객에 유통업계 속앓이

“장애인 직원이 조리한 음식은 못 먹겠으니까 일반 직원이 만든 걸로 다시 주세요!”

최근 서울의 한 식음료 프랜차이즈 매장에서는 손님이 다짜고짜 음식 수령을 거부하는 일이 발생했다. 주문서 그대로 제공된 멀쩡한 음식이었지만 장애인 직원이 만든 음식은 먹을 수 없다는 이유를 댔다. 인격 모독에 가까운 상황이었지만 이 직원은 손님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그는 “등줄기에 땀이 흐를 정도로 당황했다. 손이 떨리고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면서도 “서비스를 제공하는 입장에서 손님과 언쟁을 벌일 수 없지 않으냐”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갑질 근절’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높지만 고객 응대가 잦은 유통업계에선 여전히 비슷한 사건이 되풀이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9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지난주 인터넷에는 서울의 한 햄버거 매장에서 손님이 햄버거가 담긴 봉투를 아르바이트 직원 얼굴에 던지는 영상이 올라왔다. 주문한 음식이 늦게 나왔다며 언쟁을 벌이다가 급기야 음식을 던지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었다. 지난달 울산의 한 햄버거 매장에서도 한 고객이 주문대로 음식이 나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직원에게 음식을 집어던져 물의를 일으켰다. 이 고객은 폭행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다.

최근에는 행패를 부리는 대신에 업무를 방해하는 악성 고객들도 나타나고 있다. 10월 서울의 한 백화점에선 50대 남성 고객이 3년 전 구입한 스팀다리미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환불을 요청했다. 그는 백화점 측에서 환불을 거부하자 나흘 동안 매장에 찾아와 매일 7시간씩 앉아 있었다. 욕설이나 폭언을 하지는 않았지만 제대로 된 업무를 할 수 없었던 백화점 측은 결국 남성에게 다리미 값을 환불해줬다. 백화점 관계자는 “요즘엔 회사 측에서 촬영을 하는 등 폭행 증거를 남기고 사법처리를 시도하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업무를 방해하는 악성 고객이 종종 있다”고 했다.

‘갑질 고객’들의 횡포로 피해를 보는 직원이 늘자 기업들도 직원 보호와 소비자 인식 개선에 적극 나서고 있다. 신세계백화점은 10월 각 매장에 ‘마주하고 있는 직원을 존중해 주세요’라는 안내문을 게시했다. 현대백화점도 고객상담실 등에 “(직원) 개인의 인권 보호를 위해 고성, 욕설 등의 자제를 부탁한다”는 문구를 붙여 놓았다. 현대백화점은 전화 상담 고객이 욕설이나 폭언을 하면 안내 멘트 후 응대를 중단하는 시스템도 도입했다. 위협적 행동에 대해선 보안팀과 경찰에 즉각 연락을 취하도록 했다.

고객들의 인식 전환을 유도해 이른바 ‘개념 소비자’를 만드는 데도 공을 들이고 있다. 롯데호텔은 이달 초 ‘아찔한 손님’이라는 웹드라마를 제작해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에 올렸다. 갑질 고객을 상대하는 직원들의 에피소드를 재밌게 풀어낸 드라마다. 호텔 측은 이를 통해 상호 존중하는 문화가 형성될 것을 기대하고 있다.

서비스 응대 직원들을 집중 관리하는 업체들도 늘고 있다. 올해 현대백화점은 직원들에게 상황대처 요령을 알려주고 심리 상담을 해주는 감정노동관리사 60여 명을 현장에 배치했다. 롯데호텔도 5성급 호텔에 심리상담 전문 간호사를 배치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직원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폭언, 폭력 등에 대해선 적극 대응하는 동시에 각종 캠페인을 통해 인식 개선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강승현 기자 byhuman@donga.com
#갑질 고객#유통업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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