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김광현]경사노위, 차라리 민노총 없이 가라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2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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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현 논설위원
김광현 논설위원
청와대가 최근 부쩍 힘을 실어주는 곳이 경제사회노동위원회다. 김대중 정부는 외환위기 극복을 위해 노사정 대타협을 강조하며 1998년 노사정위원회를 발족시켰다. 민노총은 정리해고와 파견근로제 도입에 반대하면서 그 이듬해 탈퇴한 이후 20년째 복귀하지 않아 노사정위원회를 ‘반쪽 기구’로 전락시켰다.

사회적 대화를 강조하는 현 정부는 노사정위 후신인 경사노위에 노사관계는 물론이고 국민연금 개혁 등 경제 사회 문제 전반에 걸친 의제까지 다룰 수 있도록 해 이전보다 훨씬 높은 위상을 부여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초청한 자리에서 여야정이 함께 탄력근로제 확대를 합의했는데도 문 대통령은 다시 경사노위의 결정을 기다려 달라고 할 정도로 이 기구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그런데도 민노총은 경사노위에도 참여하지 않고 있다. 민노총을 복귀시키려는 현 정부의 노력은 애처로울 정도다. 대화와 타협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균형감이 중요한데 위원장부터 노동계로 심하게 기울어졌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문성현 위원장은 서울대 출신의 노동운동가다. 졸업 후 프레스공, 선반공으로 노동 현장에 직접 들어가 노조 활동을 지휘하고 민노총 가운데 가장 강력한 금속노조 위원장을 지냈다. 이후 노동계의 정치세력화를 위해 민주노동당 대표를 지낸 노동운동계의 레전드급 인사다. 문 위원장은 경사노위가 여러 계층이 함께 참여하는 조직인데도 이름에 특별히 ‘노동’이란 단어를 넣었고, 공식적 비전도 사회적 대화를 통한 ‘노동 존중 사회’라고 표방하고 있다.

민노총은 도대체 무슨 심정으로 이런 경사노위에 복귀하지 않고 있을까. 민노총 2대 위원장을 지낸 이갑용 민노총 지도위원의 말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이 위원은 올해 1월 조합원들에게 보내는 글에서 “여러 조직이 박근혜 투쟁에 함께하고 고생했다는 말을 할 수 있지만 민주노총 정도는 안 된다”면서 “위원장도 구속되고 조직도 깨지고 수십억 수백억 원의 돈을 들이며 투쟁한 민주노총”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당장 한상균 전 위원장을 풀어주고 촛불투쟁의 주역 민노총에 대한 합당한 대접을 해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근 민노총의 안하무인 격인 행태가 어떻게 나올 수 있는지를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현 정부가 사회적 상생모델로 공을 들이고 있는 ‘광주형 일자리’에 민노총이 정면으로 반대하면서 경사노위의 반쪽짜리 상태가 장기화될 조짐이다. 하지만 민노총이 지금 같은 생각을 바꾸지 않는다면 경사노위에 들어와도 문제다. 전직 동료가 위원장으로 있는 곳에 점령군처럼 들어와 타협보다는 자신들이 탄생시켰다고 생각하는 정권에 청구서부터 내밀 게 뻔하다. 더구나 약속으로는 안 되고 당장 실행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 정도면 사용자, 정부 외에 청년 여성 비정규직 중견·중소기업 소상공인까지 모두 참여한다고 하지만 민노총에 휘둘리기 십상이다. 그래도 협상이 마음에 안 들면 언제든지 뛰쳐나올 수 있는 게 이제까지 보여준 민노총의 모습이다.

요즘처럼 빈부 이념 세대 간 갈등이 극심한 우리 사회에 타협과 대화만큼 절실한 것은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억지 결혼은 안 하느니만 못한 것처럼 모양새를 위한 억지 타협은 차라리 안 하는 게 낫다. 추후에 더 큰 부작용만 가져온다. 차라리 민의를 대표하는 국회가 법을 만들고, 정부는 법에 따라 정책을 집행하고, 기업이나 노동자나 그 법을 엄격히 지키며 제 할 일을 하는 게 사회적 갈등을 줄이는 길일지도 모른다.
 
김광현 논설위원 kkh@donga.com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민노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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