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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공부보다 더 낯설어요”… ‘모르는 국어’가 돼버린 모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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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공부보다 더 낯설어요”… ‘모르는 국어’가 돼버린 모국어

김호경기자 , 조유라기자 입력 2018-12-06 03:00수정 2018-12-06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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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으로 가는 국어교육] 기성세대에게 국어는 ‘학원 가서 배우는 과목’이 아니었다. 그런데 최근 사교육 1번지인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에서는 ‘옛날엔 수학이었다면 요즘은 국어 학원 설명회가 가장 빨리 마감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국어 사교육이 성업 중이다. 고교생뿐 아니라 초등 취학 전 아이들조차 학습지로 한글을 배우고 독서도 사교육을 받는다. 모국어인 국어조차 전 생애주기에 걸쳐 사교육이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국어를 가르치는 현장 교사들 사이에서는 “요즘 학생들이 글은 읽을 줄 알지만 그 안의 생각을 이해하고 소통은 못 하는 ‘문맹’이 됐다”란 말이 나온다. 교사들의 목소리는 비슷하다. ‘책을 많이 읽는데도 글의 전체적 의도 파악을 잘 못한다’ ‘남의 의견에 대한 자기 생각을 말해 보라고 하면 모르겠다고 한다’ ‘공식적인 말하기에 대한 자신감이 없어 두 문장이면 많이 말한 거다’ ‘자기 생각을 써보라고 하면 힘들어한다’….

듣기, 읽기, 말하기, 쓰기 등 국어의 4대 영역에서 전반적인 장애가 발생하고 있는 셈이다. 국어교사와 전문가들이 근본적인 원인들을 꼽았다.

○ 제대로 국어 익히기엔 턱없는 수업시간

국어교사 및 전문가들은 “국어의 기초 개념은 70% 이상 초등학교 때 익혀야 한다”며 “그래야 중고등학교에 가서 비평적인 읽기 및 글쓰기가 가능해진다”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의 초등학교 국어 시간은 전체 과목 대비 21%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모국어 수업 시간의 평균 25%보다 적다. 모국어 교육을 중시하는 프랑스(38%)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중고교에서도 국어 수업 시간이 과거보다 줄었다. 2013년 교육부는 국영수 쏠림 현상을 막겠다며 국영수가 총 이수단위의 50%를 넘지 않도록 지침을 만들었다.

○ ‘양으로 승부’하는 독서 경쟁

학생들이 국어에 쏟을 수 있는 시간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독서의 중요성이 강조되자 이른바 독서의 ‘양적 경쟁’이 심화된 것도 문제다. 소병문 서울 우신고 사서교사는 “어릴 때는 책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흥미를 갖는 게 가장 중요한데 모든 게 ‘얼마나 많이 읽었느냐’가 기준이 되고 있다”며 “생각하며 읽는 ‘질적 독서’가 이뤄져야 국어 능력이 향상되는데 건성으로 읽고 독서 권수만 채우려는 아이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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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화점식 교육과정에 교과서 지문은 일부만

서울지역 한 자사고의 국어교사는 “시간은 없는데 교육과정상 배워야 할 각종 ‘성취기준’은 세세하게 적어 놓다 보니 교과서엔 시든 소설이든 전문(全文)이 실려 있는 게 없다”며 “이건 마치 10분만 영화를 보고 작품성을 논하라는 것인데 지금 국어 교육이 다 그렇다”고 말했다. 그러다 보니 배경지식집을 ‘외워서’ 국어 문제를 풀어야 하고 전체 맥락은 놓친 채 일부 지문만 들이파는 모순이 생긴다는 것이다.

김영찬 서울 광성중 국어교사는 “교과서에 있는 것만 가르치고, 교과서에 있는 것만 시험에 내게 한 규정도 문제”라며 “옛날 선생님들은 소설을 가르치면 줄거리뿐만 아니라 사회 문화적 배경이나 비평까지 같이 수업했는데 지금은 그렇게 할 수 없어 학교 교사들만 손발이 묶인 신세”라고 꼬집었다.

○ 강의식 수업·문제풀이에 익숙해진 학생들

일부 지문 분석 및 문제 풀이에 익숙해진 학생들은 시험문제는 풀면서도 정작 남의 글과 말을 이해하고 자신의 생각을 말과 글로 표현하는 데는 어려움을 호소한다. 김동현 경기 용인고 국어교사는 “국어에서 말하기는 굉장히 중요한 역량인데 교육과정에서 정제된 언어로 말하는 훈련이 거의 안 되고 평가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정미선 서울 개원중 국어수석교사는 “사고력, 소통능력, 창의력을 키우는 게 국어 수업의 목표인데 우리는 글의 구조와 형식을 재빨리 분석해 마치 수학문제처럼 독해를 공부한다”며 “국어에서 글쓰기 교육이 빠져 있고 에세이 쓰기에 대한 훈련을 전혀 못 받는 것도 큰 문제”라고 말했다.

○ 국어 왜곡의 마지막 종착역은 ‘입시’

초·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입시가 가까워질수록 국어 교육 환경은 더욱 열악해진다. 입시 문제에 나올 각종 유형을 파악하려면 사실상 문제풀이 위주의 수업을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 국어교사는 “토론이나 글쓰기 수업을 하려고 하면 아이들이 ‘수행평가예요’라고 묻고 그렇다고 해야만 수업에 참여한다”며 “강남지역은 학부모들까지 나서 ‘왜 아이들 시간 뺏느냐’고 항의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고교 3학년 수업 시간이 EBS 문제집 풀이 시간이 된 건 오래된 문제다. 교사들이 “70%였던 EBS 연계를 50%로 낮춘 건 의미가 없고 완전히 폐지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는 이유다. 과거 수능 출제에 참여했던 한 고교 국어교사는 “EBS 연계를 유지하면서도 기출 문제나 기출 작가는 피해야 하고 시대도 안배하면서 여성 작가도 넣어야 하는 등 온갖 조건을 맞추다 보면 기괴한 문제가 나오게 된다”며 “오죽하면 ‘(수능 문제를 출제하는) 평가원 트렌드는 ‘아무거나 묶는 것’이란 말이 있겠느냐”라고 말했다.

김호경 kimhk@donga.com·조유라 기자
#국어교육#문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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