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이종수]대학 복수전공이 무늬만 남은 이유는?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1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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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총장들이 ‘융합’ 교육 외쳐도 실제 문과-이과 교차 선택 드물어
인문계가 따로 듣는 공학 수업 등
실질적 교차 전공 길 열어줘야 제대로 된 창의성 키울 수 있어

한국에서 교육열은 딱 대학입시까지다. 대입 후의 교육에 대해 관심을 갖는 학부모를 만나 본
이종수 객원논설위원·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이종수 객원논설위원·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적이 없다. 학생들도 교수의 행동과 언어 하나에까지 문제를 제기하면서 정작 교육의 내용과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

교육을 제공하는 결정권은 오롯이 정부와 대학에 주어져 왔는데, 십수 년간 정부 당국자와 대학의 총장들은 교육혁신의 방향으로 ‘융합’을 외쳐 왔다. 지나치게 세분화된 전공들 때문에 정작 중요한 현상을 놓치거나 새로운 창조의 기회를 포착하지 못하고, 사회문제의 전체성을 응시할 눈을 갖출 수 없게 되니 학문 간 벽을 넘어 교육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십여 년이 흐른 지금 현실을 점검해 보자. 적어도 교육에 관한 한 복수전공 제도가 모든 대학에서 자리를 잡았다. 큰 대학의 경우 15∼20% 정도의 학생이 복수전공 혹은 부전공 제도로 상이한 전공을 공부하고 있다. 이것 자체만 보면 큰 변화이고 성공 같다.

그러나 현실을 좀 더 들여다보면 융합교육의 현실을 알 수 있다. 단과대학 간 이동하는 복수전공은 거의 인문대학에서 상경계와 사회과학으로 이동하는 것이고, 나머지는 대부분 동일 단과대학 내의 유사한 전공 간 이동이다. 특히, 인문사회 분야의 전공에서 과학이나 공학으로 이동하는 학생은 0∼3% 수준으로 매우 적다.

연세대, 고려대, 서울대의 사례를 보자. 세 대학 중 한 곳의 행정학과 재적생은 620명이고 이 중 113명이 이중전공을 하고 있는데, 이공계 학과로 가서 이중전공을 하는 학생은 1명뿐이다. 한 명만 생명공학을 복수로 공부하고 있다. 다른 대학교의 지구환경 전공에는 지난 4년간 실질적인 인문사회 전공에서 복수전공과 부전공으로 총 8명이 왔다. 이나마 많은 편이다. 또 다른 대학의 기계공학과는 재적생이 700명인데, 이 학과에 이중전공으로 인문사회 전공에서 온 학생은 1명이다. 전교에서 30명의 학생이 기계공학을 복수전공으로 하고 있으나 29명은 유사한 이공계에서 왔고 1명만 사학과에서 왔다.

이쯤 되면 심각해진다. 복수전공이나 부전공은 활성화되었는데, 정작 중요한 인문사회 전공의 학생들이 과학과 공학을 겸하여 공부하는 경우는 드물다. 미래의 기업과 정부 활동은 기술 발전과 과학의 실태를 긴밀하게 알 필요가 있는데 말이다. 최소한 선진국이 되려면, 기업과 정부 그리고 사회 각층의 동량들이 과학기술에 친화적 마인드를 형성하고 대학을 졸업해야 차후라도 과학기술을 이해할 수 있다.

사실, 대학에서 융합교육의 가장 큰 필요는 인문사회 전공과 과학기술 분야 사이에 존재한다. 인문사회 내에서 동종교배에 가까운 유사 전공 더하기나 단순 취직에 유리한 전공으로 소속을 반쯤 이전하는 이동은 진정한 융합이 아니다. 이런 식의 복수전공은 외려 학생으로 하여금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없도록 시간과 기회를 박탈할 뿐이니 하지 않는 게 낫다고 뉴욕타임스가 지난달 경고한 바 있다.

문제가 어디서 비롯되었을까? 인문사회 전공자들이 이공계로 복수전공을 못 가는 이유는 제도적 절벽 때문이다. 세분화된 이공계 전공으로 의욕만 가지고 가면 학점의 바닥을 형성하거나 생존 자체가 힘들다고 학생들은 고백한다. 이공계 교수 역시 인문사회 학생들이 오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그 결과 정말 필요한 융합이 꽃피지 못한다.

대안이 무엇일까? 인문사회 전공자들이 과학과 공학의 흐름을 공부할 수 있게 대학들은 이과대학의 다양한 학과에서 대표적인 주요 과목들을 추출하여 ‘이학사’ 트랙을 열어주고, 공과대학은 여러 공학 전공에서 대표적인 과목을 수렴하여 ‘공학사’ 트랙을 개설할 필요가 있다.

이곳의 과목들은 인문사회 전공자들만 수강할 수 있도록 묶고 제도적으로 인문사회의 이공계 복수전공을 장려하면 상황이 달라질 것이다. 진정한 융합을 통해 학생들은 도전성과 유연성, 창의성을 체득하고 대학은 커다란 브랜드 가치를 획득할 수 있을 것이다.
 
이종수 객원논설위원·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복수전공#인문대학#사회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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