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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신광영]교무부장 아버지가 쌍둥이 제자에게 남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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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신광영]교무부장 아버지가 쌍둥이 제자에게 남긴 것

신광영 사회부 사건팀장 입력 2018-11-15 03:00수정 2018-11-15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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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광영 사회부 사건팀장
경찰은 숙명여고 시험답안 유출 사건 수사결과를 최근 검찰에 넘기며 쌍둥이 자매를 법정에 세워야 한다는 의견을 달았다. 아버지인 전 교무부장 A 씨와 공범이라고 판단했다. 학사비리의 수혜자인 미성년자가 기소된 사례는 거의 없다. ‘정유라 이화여대 부정입학 사건’에서도 어머니 최순실 씨와 교수들은 실형 선고를 받았지만 정 씨는 기소되지 않았다.

경찰은 A 씨와 쌍둥이 딸이 줄곧 혐의를 부인해 엄격한 처분이 불가피하다고 했다. A 씨의 변호인이 “자백하면 아이들은 기소도 안 되고 조사도 안 받을 수 있다”고 조언했을 때도 A 씨는 “끝까지 가보겠다”며 굽히지 않았다. 학사비리 피의자들은 대체로 범행을 시인하며 선처를 구하는 게 일반적인데 그는 다른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A 씨는 “경찰이 정황증거만으로 유죄로 몰아간다”고 항변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결정적 물증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교무실에 폐쇄회로(CC)TV가 없어 A 씨가 금고 속 시험답안을 빼돌리는 장면은 누구도 보지 못했다. 그 대신 경찰은 간접증거 20여 개로 퍼즐을 맞췄다.

자매는 시험지 귀퉁이 가로 3cm, 세로 3cm의 작은 공간에 정답 30여 개를 깨알처럼 적었다. 2학년 1학기 기말고사 전 과목(12개) 정답을 기록한 암기장과 포스트잇도 발견됐다. 휴대전화에서는 시험 3일 전 메모한 영어시험 정답이 나왔다. A 씨는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며칠 전 야근하며 시험지가 보관된 금고를 열어봤는데 유독 이때만 야근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A 씨는 “시험 후 반장이 불러주는 정답을 받아 적은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고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자매가 미리 정답을 외운 뒤 시험지를 받자마자 깨알처럼 적었다”는 경찰 판단에 신빙성이 높다고 봤다.

만약 A 씨가 거짓으로 혐의를 부인한다면 아직 열일곱 살인 두 딸의 미래가 염려되기 때문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절체절명의 압박 속에서 계속 거짓말을 해야 하는 상황이야말로 딸들에게 씻기 힘든 상처가 될 수 있다.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알면서도 스스로를 거짓의 상자에 가두는 것은 청소년에겐 인격이 무너지는 경험이라고 심리학자들은 지적한다. 이미 친구들과 학부모들로부터 “더는 괴물이 되지 말라”는 비난을 받는 자매가 다시 세상에 나올 기회마저 막아버릴 수 있다. 부모라면 자식에게 해선 안 되는 일이다.

2년 전 경기 성남시의 한 고교에서 비슷한 일이 있었다. 여자 교무부장이 같은 학교 3학년이던 딸의 학교생활기록부를 위조해 성균관대에 합격시킨 사실이 드러났다. 그는 법정에서 “딸을 가진 어머니로서 욕심에 눈이 멀었다”며 울먹였지만 법원은 징역 1년을 선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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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범행 당시 ‘딸을 위하는 길’이라고 생각했겠지만 결국 딸의 인생에 큰 멍에를 안겼다. 훗날 자신의 어머니가 같은 처지에 있던 다른 부모들의 가슴을 찢어놓았다는 것을 깨닫게 될 때 딸은 정체성의 파괴를 피하기 어렵다.

대학입시는 성공이든 실패든 삶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인생의 첫 성취 경험이다. 이때 경험을 밑천삼아 인생 항로에서 만나는 여러 어려움을 헤쳐 나간다. 이 귀한 첫 단추를 거짓으로 끼워 당당함과 자신감을 앗아가는 게 자녀를 향한 부모의 사랑일지 의문이다.

숙명여고에서 22년 근무하며 교무부장까지 오른 A 씨는 평소 제자들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자상한 선생님으로 평판이 좋았다고 한다. 쌍둥이 자매에게도 아버지인 동시에 그런 선생님이었을 것이다. 두 딸에게 ‘부끄럽게 이기기보다 지더라도 정정당당해야 한다’고 가르치는 스승이어야 한다는 것을 그 역시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신광영 사회부 사건팀장 neo@donga.com
#숙명여고#교무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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