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정세진]애자일 경영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1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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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함 관리 앱 ‘리멤버’를 개발한 국내 스타트업 드라마앤컴퍼니는 2013년 창업 초기 명함 인식률이 떨어져 어려움을 겪었다. 이를 해결하려면 인식 기술을 향상시키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어 보였지만 회사는 ‘수기 입력’을 택했다. 사용자가 스마트폰으로 찍어 올린 명함을 500여 명의 타이피스트가 직접 입력한 것이다. 정보기술(IT) 업계에선 미친 짓이었으나 시간이 지나자 경쟁자를 압도했다. 높은 정확도로 회원이 급증한 데다 명함 중복이 늘면서 입력 시간은 줄고 인식 기술도 향상됐다. 한정된 자원밖에 없던 스타트업이 ‘애자일(Agile·기민한)’하게 일하는 방법을 바꿔 위기를 극복한 것이다.

▷국내외 기업이 빠르게 도입 중인 애자일 경영은 원래 소프트웨어의 개발 방식에서 나왔다. 고객의 수정 요구에 지친 개발자들이 정해진 계획에 따라 최종 결과를 내놓는 ‘워터폴(Waterfall·폭포수)’ 방식보다 그때그때 민첩하고도 지속적으로 수정하는 애자일 방식을 선호한 것. 목표 기간을 짧게 잡고, 제품 출시를 앞당기며, 수정을 거듭하는 애자일 기법은 다양한 업종으로 확산됐다. 이들 기업의 성공률은 이를 채택하지 않은 기업보다 4배나 높다는 것이 컨설팅업체 베인앤드컴퍼니의 파트너 대럴 릭비의 연구 결과다.

▷애자일 경영이 만병통치약은 아닐 터다. 최근 빠른 의사결정을 위해 네이버와 카카오가 분사(分社)를 추진했지만 급여와 복지가 깎일까 봐 우려하는 직원들의 불만에 효과가 나타날지 모르겠다는 지적도 나온다. 아침에 간단히 회의하는 ‘데일리 스탠드업 미팅’ 같은 애자일 기법도 억지로 참여한다면 시간 낭비다. 직원들이 비전을 공유하지 못하면 어떤 경영 기법도 통하기 어려운 법이다.

▷신기술이 기존 산업을 뿌리째 흔들고, 상품의 유행 주기는 빨라지고 있다. 과거처럼 전문가나 천재적인 경영자만을 믿고 거대 조직이 느리게 움직여서는 생존조차 힘들다. 결국 빠르게 결정하고 작은 실수를 수정해가는 애자일 사고가 이 시대 경영철학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리더는 권한을 위임하고, 단기적인 결과로 직원을 평가하려는 유혹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정세진 논설위원 mint4a@donga.com
#스타트업#애자일 경영#워터폴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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