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습 비난할 생각은 없지만 아름다운 퇴장이 교회 살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1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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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 은퇴’ 교계의 신선한 충격… 거룩한빛광성교회 정성진 목사

조기 은퇴를 선언한 거룩한빛광성교회 정성진 목사. 십자가 아래 ‘행백리자반어구십(行百里者半於九十)’이라는 메모는 길을 가는 데 처음 90리와 나머지 10리가 맞먹는다는 뜻이다. 그는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해 자나 깨나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양=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조기 은퇴를 선언한 거룩한빛광성교회 정성진 목사. 십자가 아래 ‘행백리자반어구십(行百里者半於九十)’이라는 메모는 길을 가는 데 처음 90리와 나머지 10리가 맞먹는다는 뜻이다. 그는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해 자나 깨나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양=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명성교회의 변칙 세습이 사회적으로 물의를 빚고 있는 가운데 거룩한빛광성교회 정성진 목사(63)가 조기 은퇴를 선언해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다. 거룩한빛광성교회는 출석 신자가 1만 명이 넘는 예장통합교단의 주요 교회 가운데 하나로 지난달 청빙에 관한 투표를 통해 정 목사의 뒤를 이어 곽승현 목사를 제2대 담임목사로 선정했다. 정 목사는 분립(分立)하는 거룩한빛운정교회 목회를 보다 내년 12월 은퇴한다. 교단법상 담임목사의 정년은 70세다.

1997년 이 교회를 개척한 정 목사는 △6년마다 담임목사에 대한 신임 투표 실시 △담임목사 정년 65세 △원로목사직 맡지 않기 등을 실천해 왔다. 최근 경기 고양시의 교회에서 만난 그는 “교회 바깥의 변화보다 내부의 변화가 느릴 때 교회는 죽는다”는 목회자이자 리더십의 대가인 고든 맥도널드의 말을 인용하며 소감을 밝혔다.

―조기 은퇴라 해도 너무 빠른 것 아닌가.

“시대가 변하는데 한 사람이 20, 30년 담임목사로 있는 건 장려할 일이 아니다. 40, 50대 목회실업도 심각하다. 부목사를 뽑는다고 장신대 게시판에만 알렸는데 100여 명이 왔다.”

―교회는 왜 분립해야 하나.

“신자 2450명의 가정을 방문하는 ‘심방’을 하다 포기했다. 하루 장례를 네 번 치른 적도 있는데 이걸 정상으로 볼 수 없다. 신자 100명이 정답이고 300명은 대형, 1000명은 초대형 교회다. 그 이상은 명예욕이고 탐욕이다. 목자(牧者)가 양을 알고 그 음성을 들어야 하는데 교인을 못 만난다. ‘이건 가짜다’라고 생각했다.”

―같은 교단의 명성교회 세습 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됐다.

“세습은 교회의 공공성 때문에 안 하는 게 맞다. 하지만 예수가 남을 비난하라고 한 적은 없다. 각자 좋은 모범으로 선한 영향력을 행사해야 한다.”

그의 집무실은 차향(茶香)이 가득했다. 보이차를 건네던 그는 명성교회 이야기에 이르자 복잡한 표정이었다. 그는 “김삼환 목사님은 제게 좋은 영향을 많이 주셨고, 큰형님처럼 가까운 분”이라며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좋은 마음으로 직언(直言)할 것”이라고 했다.

―원로목회자들의 아름다운 퇴장이 쉽지 않아 보인다.

“기독교(개신교)는 시장(市場)의 영성이다. 불교로 치면 사판의 영역에 있으면서 수행자 이판승이 되어야 하는 어려움과 비슷하다. 신앙도 문득 하나님의 성령이 임하고, 그 뒤 계속 노력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 깨달음이 온 뒤에도 수행하는 불교의 돈오점수(頓悟漸修)처럼. 법정 스님은 길상사가 자기 절로 비칠까 봐 잠도 자지 않고 가셨다고 한다. 남의 종교라도 본받아야 한다.”

―그만큼 어려운가.

“개척해 ‘오너’가 되면 내려놓기가 쉽지 않다. 제가 한 해 500억∼600억 원을 결제한다. 교회와 관련한 복지재단 직원만 500여 명이다. 위임 리더십이 아니면 못 한다. 스스로 절제하고 교인들에게 공언했기 때문에 그나마 내려놓기가 쉬웠다. ‘토 홀더(toe holder)’, 발가락 잡는 사람들, ‘아니 되옵니다’ 하는 사관들이 있어야 한다.”

―행백리자반어구십(行百里者半於九十)이란 메모가 눈에 띈다.

“길을 가는데 처음 90리와 나머지 10리가 맞먹는다는 것으로 무슨 일이나 처음은 쉽고 끝맺기가 어렵다는 의미다. 1년 전 이걸 보고 깜짝 놀랐다. 저는 90리는 왔다고 생각했는데 하하. 마무리 투수의 공이 크더라. 요즘 항상 ‘잘 끝내자’고 자나 깨나 다짐한다.”
 
고양=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명성교회#세습#정성진 목사#조기 은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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