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이철희]北에 간 제주도 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1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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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 바람 부는 겨울밤 이불 속에서 귤을 까먹다 보면 껍질만 한 바구니 수북이 쌓이는 것은 순식간이다. 지금은 귤이 우리네 겨울 간식을 대표하는 과일이 됐지만, 예전엔 제주도에서도 매우 귀한 존재였다. 박정희 정부 시절 감귤 산업을 진흥하기 전까지 제주도에선 ‘대학나무’라고 불렸다. 흔히 농촌에서 소를 팔아 자식을 대학에 보낸다지만, 제주도에선 귤나무 한두 그루만 있으면 자식 대학 공부까지 시킨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청와대가 어제 평양 정상회담 때 북측의 송이버섯 선물에 대한 답례로 제주산 귤을 북한에 보냈다. 우리 군 수송기가 이틀간 네 차례에 걸쳐 제주공항에서 평양 순안공항까지 10kg짜리 상자 2만 개, 모두 200t을 실어 나른다. 북한에서도 귤은 귀한 ‘수령님 하사품’이었다. 노동당 간부나 공로자들에게, 그리고 집단체조에 동원된 학생들에게도 귤 몇 개씩을 쥐여줬다고 탈북자들은 전한다. 다만 2000년대 중반 이래 중국산 귤이 대량으로 들어오면서 장마당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게 됐다고 한다.

▷청와대의 제주산 귤 답례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서울 답방, 나아가 한라산 등정까지 염두에 둔 선택으로 보인다. 평양 정상회담 때 ‘백두산 환대’를 받은 문재인 대통령은 최근 기자들과의 산행에서 “백두에서 한라까지, 이런 말도 있으니 한라산 구경도 시켜줄 수 있다”고 했고, 청와대 여야정 회동에선 한라산에 헬기장이 없어 걱정이라는 얘기도 했다. 과거 북한에 귤을 보내는 ‘비타민C 교류사업’을 했던 제주도의 기대는 한층 큰 듯하다. 원희룡 제주지사는 10일 한라산 정상을 찾아 헬기 착륙이 가능한지 살펴보기도 했다.

▷제주도와 김정은의 인연도 새삼 관심을 끈다. 김정은의 생모인 재일교포 출신 무용수 고용희의 아버지, 즉 김정은의 외조부 고경택은 제주 출신이다. 몇 해 전 고경택의 허묘(虛墓)가 제주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김정은의 서울 답방도 아직 불투명한데, 제주도 방문까지 거론하는 것은 이른 감이 있다. 경호나 일정도 문제겠지만, 김정은 자신이 백두혈통이 아니라 ‘째포(북송교포)의 자식’으로 부각되는 것을 과연 달갑게 여길지 의문이다.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귤#청와대#송이버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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