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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기의 음악상담실]과거와 어떻게 화해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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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기의 음악상담실]과거와 어떻게 화해할까?

김창기 전 동물원 멤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입력 2018-11-10 03:00수정 2018-11-10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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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배리 매닐로―When October Goes
김창기 전 동물원 멤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저에겐 가을 단풍이 봄꽃들보다 더 아름답습니다. 봄꽃들이 밝고 화려한 최신곡이라면, 단풍은 오래된 명곡들이죠. 노란색, 붉은색, 짙은 갈색들의 조화와 그러데이션은 포근함, 그리움과 외로움, 아직 다 태우지 못한 열정 등의 더 복잡하고 깊은 감정들을 느끼게 해주니까요. 제 취향입니다. 제 나이와 처지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비 내린 아침 우수수 떨어져 있는 낙엽들도 아름답더군요. 달려 있을 때와는 또 다른 아름다움이었습니다. 곧 첫눈 소식이 들려오겠죠? 오늘 소개하는 ‘시월이 떠나가면’은 바로 요즘 같은 늦가을에 대한 노래입니다.

시월을 떠나보내며 창밖을 바라보면 저 멀리 다가오는 겨울이 보입니다. 그러면 밝은 빛과 뜨거운 열기에 가려 숨겨져 있던 과거가, 아직 잊지도 떠나보내지도 못하는 ‘당신’의 모습이, 당신과의 추억이 떠오르죠. 유리창에 이마를 대고 이름을 부르면 눈물이 흐릅니다. 겨울 동안 다시 견뎌야 할 고독과, 과거의 슬픔의 무게가 느껴집니다. 이 노래는 아름답지만 짧은 가을을 아쉬워하는 노래가 아니라, 슬픔과 고독을 직면해야 할 겨울이 오는 것을 두려워하는 노래죠.

이 노래를 작사한 조니 머서는 ‘낙엽(Autumn Leaves)’ ‘문 리버’ ‘장미와 포도주의 나날들’ 등의 명곡들을 남겼습니다. 죽음을 앞두고 썼던 이 가사에서 그는 말하죠. 이쯤 되었으면 과거를 극복해야 한다는 것을 안다고. 하지만 이렇게 나이가 들어도 그게 쉽지 않다고.

심한 마음의 상처는 뇌를 손상시켜서 논리적이지 않은, 감정적인 사고와 반응하게 만들곤 합니다. 과거의 상처를 수시로 재경험하는 ‘플래시백(flashback)’이라는 현상이나, 벌에 심하게 쏘였던 사람이 벌만 봐도 경악을 하는 것 같은 극단적 과잉반응을 유발하기도 하죠. 폭행, 학대, 상실 등 과거의 상처가 아물지 않으면 비슷한 작은 자극에도 그 고통이 재생되고, 스스로를 통제하기 힘들게 됩니다.

통제력을 회복하려면, 먼저 자신의 심신과 상황을 진정시키고, 그 안정을 유지하는 방법들을 찾아야 합니다. 참선, 운동, 취미활동, 음료 등 무엇이든 나에게 맞는 것을 찾아서 흥분된 교감신경을 스스로 가라앉히는 데 익숙해져야 하죠. 그래서 진정되었다면, 그 고통은 과거에 일어난 것이고 현재는 안전하다고, 내면의 대화로 스스로를 설득해야 합니다. 고통의 재경험은 기억이지 현실이 아니고, 그 사건은 오래전에 끝났고, 우리는 이제는 안전한 현실에 살고 있다고요.

혼자 힘으로 안 되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을 통해 설득되어야 합니다. 그 도움으로 힘을 얻어서, 과거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는 통제력을 키워야 하죠. 언제까지 의지만 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래서 과거를 과거일 수 있게 했다면, 현재를 살 수 있게 되었다면, 적극적으로 외부 세계와 자신을 연결시켜야 합니다. 안전하고 발전적인 삶을 살게 해주고, 살고 있다고 확인시켜 줄 사람들과 연결되어야 하는 것이죠.

1970년대 대단한 팝스타였던 배리 매닐로는 인기를 잃고 방황하다 재즈 명곡들을 다시 부른, ‘When October Goes’가 들어 있는 ‘2:00 AM Paradise Cafe’라는 멋진 앨범을 냈습니다. 돌아올 수 없는 과거와 결별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요? 결과적으로 매닐로는 예전처럼은 아니지만 다시 환영받는 가수가 되었고, 아마도 현재의 즐거움을 통해 과거와 화해할 수 있게 되었을 것입니다. 우리도 더 소중하고 알찬 현재와 관계를 통해 과거와 화해할 수 있겠죠?
 
김창기 전 동물원 멤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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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리 매닐로#when october go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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