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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윤승옥]“골프가 꼭 어렵다는 법 없다” 현상 유지를 깬 혁신가 디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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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윤승옥]“골프가 꼭 어렵다는 법 없다” 현상 유지를 깬 혁신가 디섐보

윤승옥 채널A 스포츠부장 입력 2018-11-08 03:00수정 2018-11-08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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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승옥 채널A 스포츠부장
항공우주 기업 보잉사 엔지니어였던 호머 켈리는 30대 중반에 골프를 시작했다. 스윙이 뜻대로 되지 않자, 일주일간 휴가를 내 해법을 찾았다. 그래도 원하는 답을 찾지 못한 켈리는 사표를 내던지고 차고에서 연구에 몰두했다. 그렇게 오래 걸릴 줄 몰랐다. 28년 뒤인 1969년에야 그가 쓴 골프 교본 ‘더 골핑 머신’이 세상에 나왔다.

기하학과 물리학의 원리를 골프 스윙에 적용한터라 아주 난해한 책이라고 정평이 났다. 수학과 과학을 좋아했던 고교생 골퍼 브라이슨 디섐보는 이 책에 푹 빠졌다. 그는 특히 ‘제로 시프팅 모션(Zero Shifting Motion)’이라는 개념에 주목했다. 어떤 클럽을 쓰든 동일한 자세로 스윙하는 것이 가장 좋다는 것이다.

일견 고개가 끄덕여진다. 동일한 자세로 스윙해야 오차가 적을 것이다. 하지만 알고 보면 말 같지 않은 말이다. 골프 클럽은 서로 다른 거리를 만들기 위해 길이, 무게 등이 다 다르게 제작된다. 클럽이 달라지면 자세와 공의 위치가 달라지고, 그에 맞게 몸의 균형도 달라지고, 그에 따라 스윙도 달라진다. ‘동일한 스윙’은 이상적인 개념이지, 결코 현실적이지 않다.

디섐보는 이상을 현실로 바꾸기로 했다. ‘꼭 길이가 다른 클럽들을 써야 하나?’라고 질문했다. 버려진 클럽(3번부터 웨지까지 10개의 아이언)을 주워 와 길이, 무게를 모두 같게 만들었다. 다만 헤드의 각도와 그립의 무게 등은 정교하게 조정했다. 성공적이었다. 10개의 쌍둥이 아이언을 동일한 자세로 휘둘렀는데, 각각 의도했던 거리 차이를 보였다. 길이가 다른 아이언만 정답으로 믿어온 골프계는 그를 ‘이단’ 취급했다. 고교 시절 탁월한 성적에도 불구하고 명문대 코치들은 그의 아이언을 보고 스카우트를 포기했다.

대학 무대도 평정한 디섐보는 프로 무대에서도 빛나고 있다. 며칠 전 슈라이너스 아동병원오픈마저 정상에 서면서 올해에만 미국프로골프(PGA)투어에서 4승을 거뒀다. 최근 들어 거의 매달 우승이다. 상승세가 예사롭지 않다. 그런데 그는 우승만 바라보지 않는다. 자신의 혁신으로, 더 많은 사람이 더 쉽게 골프를 즐기는 걸 궁극적인 목표로 삼고 있다. 괴짜가 아니라 ‘필드의 혁신가’인 셈이다.

골프계도 수십 년간 대중화를 외쳤지만, 복잡하고 어려운 스윙에 대한 노력만을 강요했다. 기존의 것을 신봉하는 ‘현상 유지 편향(status quo bias)’에 붙들렸기 때문이다. 이 편향은 개선하기에 너무 많은 비용(전환비용)이 들 때도 그렇지만, 골프의 아이언처럼 현 상태를 절대적인 기준으로 여길 때 주로 나타난다. 문제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해결할 생각 자체를 하지 못한다.

변화의 속도가 느리거나, 현상 유지가 어느 정도 합리적일 때는 편향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요즘처럼 불과 얼마 전의 성공 방정식조차 성장의 걸림돌이 되는 변화의 시대에는 얘기가 다르다. 당연한 것을 부정해 보고, 뒤집어보는 디섐보식 사고와 도전정신은 그래서 더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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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섐보는 최근 퍼팅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망치처럼 생긴 퍼터를 들고 나오기도 하고, 여성들이 한쪽으로 다리를 모으고 말 위에 올라탄 모습과 비슷한 사이드 새들(side-saddle) 퍼팅을 선보이기도 했다. 내년에는 홀에 깃대를 꽂은 채 퍼팅을 하겠다고 한다. 그게 적중률이 더 높다는 것이다. 그는 필드에서 세상의 편향에 계속 도전하고 있다.
 
윤승옥 채널A 스포츠부장 touch@donga.com
#디섐보#골프#현상 유지 편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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