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유럽 CVID 벽에 부닥친 ‘제재 완화’… 늦춰지는 북핵 시간표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0월 22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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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0일 2차 북-미 정상회담 등 북한 문제 진전과 관련해 “서둘지 않겠다”고 말했다. 미 행정부 고위 당국자도 “2차 정상회담은 내년 1월 1일 이후가 될 것 같다”고 밝혔다고 한다. 트럼프 행정부가 2차 회담을 서둘지 않는 것은 6·12 싱가포르 회담 때 날짜를 급하게 확정한 뒤 의제를 조율하는 바람에 비핵화는 선언적 수준으로 합의문 말미에 넣는 ‘참패’를 겪었기 때문이다. 2차 회담은 비핵화의 실질적 진전이 가능하다는 확신이 들 수준으로 실무협상이 진전된 뒤에 열겠다는 것이다.

북-미 정상회담 연내 개최가 안 되면 한국 정부가 고대하는 연내 종전선언 채택도 어려워질 가능성이 크다. 청와대는 늦어도 11월 중에는 2차 북-미 회담이 열려 종전선언에 의견 접근이 이뤄지고 12월 김정은의 서울 답방 전 남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종전선언을 채택한다는 구상을 갖고 있었다. 종전선언 채택으로 1막을 마무리짓고 남북협력 본격화와 비핵화를 위한 다음 단계로 넘어가겠다는 청와대의 시나리오는 차질이 불가피하게 됐다.

2차 북-미 회담이 지연되는 근본적 이유는 북한이 핵 포기 실행의 첫발도 떼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북한은 최근 들어선 종전선언에 구애받지 않겠다며 아예 제재 해제를 요구하고 나섰다. 그런 요구는 비핵화 과정을 더 꼬이게 만들 뿐이므로 단호히 일축하고 핵시설 신고 및 로드맵 제시를 설득해야 하는데, 현실은 정반대로 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7박 9일 유럽 순방에서 대북제재 완화 필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청와대는 “제재 완화를 공론화하는 성과가 있었다”고 자평하는데, 실제론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에 대한 유럽국들의 분명한 의지를 확인하고 벽에 부닥쳤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만약 비핵화 촉진을 위해 일정 부분 제재 완화가 불가피하다고 판단했다면 미국과 머리를 맞대고 협의하고 설득해 북한의 오판과 비핵화 의지 퇴행을 최소화할 수 있는 단일 전략을 마련했어야 한다. 다른 안보리 이사국들을 상대로 공개적으로 ‘반(反)제재 연합전선’을 구축하려는 듯한 외교 행보를 보인 것은 적절치 않았다.

청와대는 북-미 회담이 늦춰져도 김정은의 연내 답방은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비핵화가 조금도 이행된 게 없는 상태에서의 김정은의 서울 방문은 찬반 논란을 더 격화시킬 가능성이 있다. 남북 관계는 비핵화와 별도로 움직여선 곤란하며, 그렇게 될 수도 없다.
#북미 정상회담#종전선언#유럽 순방#대북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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