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정소연]시험에 든 것은 우리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0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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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멘 난민, 임시 체류자격 얻었지만 철회 가능하며 난민인정과 거리 멀어
한국에 체류하는 외국인 이미 180만 명
예멘인들 더해져도 큰 변화 없다고 봐
결국 우리 역량과 포용력에 대한 시험

정소연 객원논설위원·법률사무소 보다 변호사
정소연 객원논설위원·법률사무소 보다 변호사
법무부가 제주도로 입국했던 예멘 출신 난민 신청자 중 339명에게 인도적 체류 허가 결정을 했다. 난민인정자는 없었다.

인도적 체류란 엄격한 의미의 난민에 해당하지는 않지만 본국으로 돌아갈 수 없는 사정이 있는 사람들에게 부여하는 보충적 체류자격이다.

인도적 체류라 하니 무척 인도적(人道的)인 것 같지만 인도적 체류는 그저 임시 체류자격으로 난민인정과는 거리가 멀다. 우리나라 체류자격 중 ‘기타’에 해당하는 G-1비자로 1년간 체류를 허가하는 것이다.

취업활동을 할 수 있다고 하지만 1년 뒤 한국에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사람을 채용할 곳은 거의 없다. 한국 어디든 갈 수 있다고 하지만 교통비가 있어야 이동할 수 있기 때문에, 실제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얼마나 이동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생계지원도 가족결합도 적용되지 않는다.

예멘은 중동 아라비아반도에 있는 나라다. 우리처럼 남북으로 나뉘어 있다가 소련이 해체하며 통일했다. 예멘 내전은 2014년경부터 시작되었다. 예멘은 2011년 평화로운 독재 종식과 민주화에 성공했었다. 그러나 불안한 정세에서 쿠데타가 발발했고, 이 쿠데타에 인접 강대국인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가 개입하며 예멘은 강대국들의 대리전장이 되고 말았다. 몇몇 나라는 열심히 무기를 팔았다. 어떤 나라들은 군대를 파견했다. 알카에다와 이슬람국가(IS)도 들어갔다.

이러는 사이 예멘에서는 1만 명 이상이 사망하고 콜레라까지 발발했다. 예멘의 인구는 2500만 명, 우리의 절반 정도다. 유엔난민기구 보고서에 따르면 내전 발발 이후 최소한 10%가 고향을 벗어나 탈출했다. 대부분의 사람은 당연히 일단 인근 국가로 간다. 유엔난민기구가 마련한 난민 캠프에 머무르기도 하고, 국경을 맞댄 오만이나 사우디아라비아, 해협 건너 소말리아나 지부티로 건너가는 것이 1차 이동이다.

그 다음부터의 탈출 경로는 제각각의 운과 브로커의 손에 달려 있다. 보통 난민 신청자들은 길고 복잡한 경로를 따라 이동하고,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 잘 모른 채 눈앞의 중개인들에게 돈을 주며 위험한 곳에서 멀어지려고 한다. 목적지가 있는 여행이 아니라, 일단 목숨을 건지려고 이동하는 탈출이기 때문이다.

예멘인 수백 명이 제주도에 입국했을 때 우리나라에서는 큰 저항이 있었다. 전 세계로 흩어지고 있는 예멘 인구에 비하면 많지 않은 수였는데도 예멘인들의 집단입국과 난민신청은 극심한 종교적, 정치적 이슈가 되었다. 이슬람이란 종교에 대한 편견까지 더해져, 거부감과 공포가 위험 수위에 달했다. 급기야 한국인들이 예멘인을 폭행하는 사건까지 있었다. 정부는 이번에 기껏해야 임시 체류자격 부여를 결정했으면서도 ‘언제든 철회될 수 있다’는 해명을 함께 내놓아야 했다.

그러나 흥분을 가라앉히고 잠시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것을 삶의 목적으로 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대부분은 자신이 잘사는 데 힘을 쏟는다. 위기 상황에서 국경을 넘어 탈출할 정도의 의지와 실행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다. 한국에서 범죄를 저지르거나 우리 문화나 관습을 무시하리라 지레 겁먹을 일이 아니다. 생존 의지를 가진 외국인들이 어차피 한국에 온 이상, 이들이 한국에서 제대로 삶을 구축할 수 있게 지원해도 큰일이 나지 않는다.

한국 체류 외국인은 이미 180만 명이다. 예멘인들이 더해져도 퍼센티지 변동조차 없다. 한국이 외국인 수백 명의 행방이나 행동에 불안해할 만큼 치안이 열악한 나라인가? 낯선 문화의 유입에 바로 흔들릴 수준의 문화를 가진 나라인가? 수백 명도 지원하지 못할 만큼 가난한 나라인가?

전 세계가 평화롭고 어떤 분쟁도 없어 시험에 들 일이 없었다면 두루 좋았으리라. 그러나 현실이 그렇지 않은 이상, 이번 사태는 한국이 이방인을 어떻게 대하는 나라인지를 보여주는 경험이 될 것이다. 난민이 아니라, 우리의 역량과 포용력에 대한 시험인 것이다.
 
정소연 객원논설위원·법률사무소 보다 변호사
#예멘#난민#인도적 체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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