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전성철]혁신성장 열매 맺으려면 여당부터 달라져야 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0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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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철 정치부 차장
전성철 정치부 차장
중소벤처기업부는 현재 정부 부처 가운데 유일하게 이름에 영어 단어 ‘벤처(venture)’가 들어 있는 곳이다. 그런데 정작 중소벤처기업부의 영문 이름(Ministry of SMEs and Startups)에는 벤처가 안 들어 있다. 우리가 벤처기업이라고 하는 곳들은 외국인 기준에서는 스타트업이라고 불러야 더 쉽게 전달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한국에서는 왜 스타트업을 벤처라고 부르게 됐을까. 1997년 말 ‘벤처기업 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벤처기업법)’이 제정되고 그 직후 출범한 김대중 정부가 외환위기 극복의 활로를 벤처기업에서 모색한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당시 대학생이던 기자의 주변에서조차 학교도 채 졸업 안 한 누군가가 벤처를 준비 중이라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들렸고, 개중에는 실제로 벤처사업에 성공해 큰돈을 번 경우도 있다. “동네 꼬마들조차 벤처 이야기를 하며 논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그 시절 성공한 벤처사업가는 모두의 선망의 대상이었다.

김대중 정부를 계승한 현 정부도 비슷한 캠페인을 하고 있다. 소득주도성장, 공정경제와 함께 문재인 경제정책의 3대 축 중 하나인 혁신성장이 그것이다. 하지만 20년 전과 비교하면 분위기는 너무 다르다. 소득주도성장은 컨트롤타워가 김동연 경제부총리냐, 장하성 대통령정책실장이냐를 두고 시끄럽기라도 하지만 혁신성장은 누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조차 안 보인다.

혁신성장 정책의 주무부서인 기획재정부가 유능한 직원들을 추려서 서울에 별도 본부까지 꾸리고 지혜를 짜내고 있지만, 정부가 그런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벤처로 출발해 국내 대표 정보기술(IT) 기업으로 성장한 다음커뮤니케이션(현 ‘카카오’)의 창업자 이재웅 ‘쏘카’ 대표가 혁신성장 민간본부장을 맡았는데도 이 정도인 걸 보면 정책 담당자의 역량 탓으로 돌리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문제는 오히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 있다. 청와대는 혁신성장의 발판인 창업 생태계 조성을 위해 각종 규제를 푸는 일에 공을 들여 왔다. 하지만 번번이 청와대의 발목을 잡은 것은 야당이 아니라 여당이다. 올 8월 임시국회에서 인터넷전문은행에 대한 은산분리 규제 완화는 재벌에 은행을 넘겨주는 일이 될 것이라며 여당 의원들이 법안 통과를 막아선 것이 대표적인 장면이다. 여권 내에서조차 “삼성이 돈 빌려 쓸 곳이 없어서 직접 인터넷은행을 하겠나. 걱정도 심하면 병이다”라는 비판이 나올 정도다.

차등의결권 도입도 여당 내부 반대를 넘어서는 것이 가장 큰 변수로 꼽힌다. 정부와 여당지도부는 벤처기업법을 고쳐 비상장 벤처기업에서 모든 주주가 동의할 경우, 1주가 2∼10개의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주식을 발행하는 것을 허용하는 안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여당 일각에서는 “차등의결권이 대기업의 지배력 강화 수단으로 쓰일 수 있다”거나, “상법에 명시된 ‘1주 1의결권’ 원칙을 깰 정도로 벤처기업 문제가 중요하나”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 외에도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현장방문을 하며 챙긴 데이터경제 활성화 역시 여당 내부에는 개인정보 보호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혁신을 독려하고 기업가를 존중하고, 그들이 자유롭게 상상력을 펼 수 있도록 도와도 좋은 기업을 키워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물며 당청이 다른 목소리를 내며 행정부가 어느 장단에 춤을 출지 모르는 상황을 만들어서는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없다. 여당 내부에서 ‘혁신성장이 우리가 나아갈 길이다’라는 합의부터 해야 한다.
 
전성철 정치부 차장 dawn@donga.com
#벤처기업#스타트업#혁신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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