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동정민]프랑스와 북한의 수교, 왜 이뤄지지 않았을까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0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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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정민 파리 특파원
동정민 파리 특파원
“프랑스는 그동안 대북 제재를 주도해 왔으므로 그 반대로 북한의 변화를 돕는 데도 긍정적으로 기여해야 한다.”

문정인 대통령통일외교안보특별보좌관이 문재인 대통령의 프랑스 방문을 앞두고 프랑스 일간 르몽드와 한 인터뷰에서 희망사항을 이렇게 밝혔다. 여기서 기여라는 건 북한과의 수교 체결이라고 르몽드는 전했다.

프랑스는 유럽연합(EU) 주요국 중 유일하게 북한과 수교를 맺지 않고 있다. 이웃국가인 영국과 독일은 2000년 서울에서 열린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 때 당시 햇볕정책을 이끌던 김대중 대통령의 요구에 따라 북한과 수교를 맺었다.

그러나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은 응하지 않았다. 이유는 두 가지. 인권 문제와 핵개발 때문이었다. 이후 프랑스는 북한과의 미수교 정책을 한결같이 유지하고 있다. 18년이 지난 지금도 그 이유는 같다. 인권 문제와 핵개발 때문이다.

북한과의 교류협력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2011년 당시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평양에 문화-인도주의 협력 사무소를 설치해 주재원 1명을 파견했고, 이 사무소는 지금도 유지되고 있다. 평양 협력 사무소 개설 당시 책임자였던 자크 랑 전 문화부 장관은 “북한이 핵무기와 인권 문제로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북한을 공식적으로 인정할 수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협력 사무소와 수교는 별개라는 입장을 분명히 한 것이다.

그런 프랑스에서도 올 초부터 내부 논쟁이 있다. 수교 체결 자체가 북한을 두둔하는 것은 아니니 프랑스가 대북 이슈에 소외되지 않도록 수교를 맺자는 의견과 미수교 정책을 바꿀 결정적인 상황 변화가 없다며 반대하는 의견이 맞붙고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정치적 결단을 내릴 수도 있지만 프랑스 정가에선 회의적인 의견이 많다. 최근 한 한반도 전문가는 프랑스 매체에 1명뿐인 평양 사무소 직원을 한 명 더 늘리자고 기고했다가 정부 고위 인사로부터 “곤란한 제안”이라는 답을 들었다. “지금 파견된 1명도 하는 일이 별로 없는데 굳이 더 늘릴 이유가 없다. 자칫 북한에 잘못된 메시지를 줄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문정인 특보는 르몽드 인터뷰에서 “북한이 건설적 태도를 보이고 있으니 우리 정부는 대북 제재의 부분적 완화를 희망한다”고 속내를 밝혔다. EU가 결의한 대북 제재를 완화해 줄 것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EU는 대화는 환영하지만 현 상황에서 제재 프레임은 건드릴 수 없다는 원칙이 확고하다. 남북 간 화해와 협력을 바라는 한국 입장에서는 우리는 한민족이니 한 번 더 믿고 경제 협력부터 하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유럽은 아니다. 북핵 문제를 얼렁뚱땅 넘길 경우 이란 등 다른 핵 개발 및 확산 문제도 막을 수 없다는 걱정이 크다. 이미 수차례 속은 북한에 대한 신뢰도 바닥이다. 문 대통령이 “이번에는 다르다”고 말해도 유럽 분위기는 “아직은 말뿐 아니냐”는 불신이 있다.

프랑스 등 유럽의 냉정한 대북 인식을 보고 느끼면서, 한국 정부가 무리하게 북한의 메신저 역할을 해서는 곤란한 처지에 빠질 수도 있다는 우려가 든다. 북한이 국제사회 모두가 인정하는 실질적인 조치에 착수해 신뢰 회복의 단초를 마련하지도 않았는데, ‘한국은 북한 편’이라는 고정관념이 생기는 순간 한국 주도의 ‘한반도 이니셔티브’마저 위협받을 수 있다. 그게 현실이다.
 
동정민 파리 특파원 ditto@donga.com
#프랑스#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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