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에게 묻는 기성용, “우린 얼마나 ‘행동’ 했을까요”

  • 뉴스1
  • 입력 2018년 10월 15일 10시 43분


코멘트
기성용은 “모두가 말은 쉽게 하지만 정작 행동하는 이들은 없는 것 같다”고 아쉬움을 전했다. (대한축구협회 제공) © News1
기성용은 “모두가 말은 쉽게 하지만 정작 행동하는 이들은 없는 것 같다”고 아쉬움을 전했다. (대한축구협회 제공) © News1

강호 우루과이까지 2-1로 꺾으면서 상승세를 이어간 축구대표팀의 ‘오픈트레이닝데이’ 행사가 열리던 지난 13일 파주NFC는 그야말로 아이돌 그룹의 콘서트장을 방불케 했다. 사전신청을 통해 선착순 마감된 950명의 참가인원 중에는 대구와 경주, 강원 화천에서 달려온 팬도 있었다.

공식행사가 오전 10시30분부터 시작됐고 NFC 주변이 9시 넘어서부터 북적됐던 것을 감안한다면 얼마나 이른 시간부터 움직였을지 짐작도 어렵다. 전날 우루과이전 직관부터 1박2일 코스로 움직인 이들도 있었다.

강행군(?)이었으나 모두 싱글벙글이었다. 이승우와 악수를 한 여학생은 왼손으로 오른손목을 조심스레 감싼 뒤 “이제 절대 손 안 씻을 것”이라고 외쳤다. 김영권의 사인을 받고 뛸 듯 좋아하는 초등생 아들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입가에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팬들만 즐거운 시간이 아니었다. 선수들 역시 쏟아지는 사인세례와 비명에 감당 못하는 표정이었다. 이런 분위기가 익숙지 않은 선수들은 수줍게 “정말 고맙습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는 경직된 인사말과 함께 부끄럽게 사인을 이어갔고 끼가 넘치는 이승우나 김민재 등은 팬들과 셀카 찍기에 여념 없었다.

그야말로 오랜만에 찾아온 ‘축구의 봄’이다. 12일 우루과이와의 평가전 공식 입장객은 6만4170명이었다. 서울월드컵경기장 개장 이래 8번째 만원사례였다. 불과 몇 개월 전만해도 비난의 중심에 있었던 축구임을 떠올린다면 사실 잘 이해가 안 되는 일이다. 그래서일까. 그 누구보다 대표팀을 둘러싼 공기변화를 잘 알고 있는 기성용은 행복해하면서 또 조심스러웠다.

바쁘게 팬들 사이를 오갔던 기성용은 공식행사 후 “지금의 이 열기가 감사하고 너무 좋다. 어린 선수들은 이런 분위기가 처음일 텐데 더 좋을 것”이라면서 “경기력에 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는 이런 인기를 굳이 거부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선수들이 지금의 열기와 인기를 즐기고 누렸으면 좋겠다”고 기쁨을 표했다.

하지만 이내 “이러다 한순간에 분위기가 달라질 수 있음도 생각한다. 모든 일이 다 그렇듯,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면서 “부디 지금의 열기가 꾸준하게 유지됐으면 좋겠다”는 말로 눈에 보이는 지금에 취해서는 곤란하다는 중요한 뜻을 전했다. 그렇기 때문에 ‘축구의 봄’ 햇살이 대표팀만 향하고 있는 게 못내 아쉬웠는지 모른다.

기성용은 “축구에 대한 관심 많아진 것 같아 분명 행복하지만 사실 대표팀에만 이런 열기가 있는 게 아쉽다”면서 “평소에도, 주말에도 축구장에 많은 팬들이 찾아준다면 좋겠다. 이런 분위기가 K리그의 활성화로 이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고 속내를 끄집어냈다.

현재의 환호성이 한국 축구 전체를 향한 것은 아니라는, K리그와는 별개의 흐름이라는 것을 간과해선 안 된다는 일부의 지적과 궤를 같이 하는 발언이었다.

오랜만에 대표팀을 향한 관심이 뜨거운 가운데, 기성용은 이 열기가 K리그로 이어지길 소망했다. © News1
오랜만에 대표팀을 향한 관심이 뜨거운 가운데, 기성용은 이 열기가 K리그로 이어지길 소망했다. © News1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그에게 앞으로 7년 뒤 K리그로 복귀해서 뛰면 어떻겠냐는 질문을 던졌다. “7년 뒤에는 축구 안 할거다”라고 웃은 기성용은 “노력해야 할 것들, 발전해야할 것들이 너무 많아 아쉽다”는 말과 함께 한국 축구와 K리그를 둘러 싼 모든 구성원들이 함께 고민할 화두를 던졌다. 그가 FC서울을 떠나 유럽에 처음 진출했던 때가 2009년이다. 10년이 지났다. 강산이 변할 시간이지만 K리그는 달라진 게 없다는 토로였다.

그는 “(발전과 변화라는 것이)한 번에 딱딱 바뀔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장기적인 노력들이)필요한데, 내가 K리그에 있을 때와 크게 달라진 게 없다. 어쩌면 그때보다 더 축 처진 것 같다. K리그를 떠난 지 거의 10년이 됐는데 (달라진 게 없으니)그게 좀 아쉽다”고 쓴맛을 다셨다.

이어 “그나마 전북이 투자하지(전체적으로 경직돼 있다)… FC서울도 마찬가지다. 너무 아쉽다. 그 순위를 하고 있다는 게…”라면서 잠시 말을 삼켰다. 한 마디 한 마디에 오래 생각하는 게 여실히 느껴졌다. 그저 ‘밖에서의 말’로 비춰질 수 있음을 아는 까닭이다.

위기감도 잘 느끼지 못하는 요즘, 이렇게 지적하는 사람도 필요하다는 말에 그는 다시 “난 그 현장에 없기에 조심스럽다”는 입장을 전했다. 이어 “밖에서는 누구나 쉽게 이야기한다. 한국축구의 문제가 무엇이라고 이것저것 말한다. 하지만 실제로 일을 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고 담담한 목소리로 소견을 전했다. 쓴 소리는 차고 넘치지만 정작 애정을 담은 행동은 없다는 답답함이다.

그는 “선수들도 문제고 구단 직원들도 문제고, 솔직히 미디어도 문제다. 이런 사실을 다 알고 있다. 해야 할 것들도 안다. 선수라면 어떻게 좋은 경기를 할까 고민하고 최선을 다해야한다. 구단은 구단대로, 미디어는 미디어대로 노력해야한다”고 말한 뒤 “그러나 정작 일을 하는 사람은 없고 ‘네가 문제, 네가 문제’라고만 떠넘기니 발전이 어렵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기성용은 “대부분 말만 앞선다. 선배들도 그렇다. 누구나 대표팀이 뭐가 문제다, 말은 쉽다. 하지만 그들이 진짜 대표팀을 위해, K리그를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한발 떨어져 있기에)나도 조심스러운 것”이라며 무겁지만 모두가 공유할 내용을 차분하게 펼쳐놓았다.

그는 “그래도 난 K리그에서 뛰어봤기에 상황과 환경을 안다. 그래서 늘 고민한다. K리그와 한국축구에 대해 무슨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정말 고민한다”고 말한 뒤 “나중에 K리그에서 다시 뛰는 것도 좋겠다 생각을 하다가, 내가 간다고 해서 뭐 달라질까 푸념도 든다. 고민이 많다”면서 복잡한 생각이 담긴 표정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기성용이 말한 것처럼 단박에 바뀔 일이 아니고 누군가가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하지만 매사 단초나 계기가 없으면 열매는 기대할 수도 없는 법이다.

한창인 선수가, 이제 스물아홉 현역 선수가 이 정도 깊은 고민을 하고 있다면 자못 심각한 문제다. “모두들 행동하고 있습니까”라는 그의 질문에 당당하게 답해줄 수 있는 이들이 좀 많이 나와야한다.

(서울=뉴스1)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