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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만발 도시락에 담은 ‘소확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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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만발 도시락에 담은 ‘소확행’

신규진 기자 입력 2018-10-11 03:00수정 2018-10-19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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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들 사이 건강-취미생활 발전
도시락을 싸고 ‘혼밥’을 하는 직장인들은 주 52시간 근무제 실시 이후 “음식을 준비할 시간적 여유가 생겼다”고 말한다. 이들은 음식을 만들고 꾸미는 것 자체에 만족감을 느낀다. 소시지에 칼집을 내기도 한다(왼쪽 사진). 소셜네트워크서비스 화면 캡처
“아보카도는 쉽게 갈변돼요. 사진을 찍었을 때 잘 나오게 하려면 레몬즙을 뿌려야 해요.”

‘도시락족’이 된 지 두 달 남짓, 직장인 강지영 씨(31)가 익숙한 듯 말했다. 그는 점심 값으로 1만 원 이상 드는 것이 아까워 도시락을 싸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느새 취미가 됐다. 계란 샐러드부터 불고기 볶음밥까지 메뉴도 매일 다르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도시락그램’ ‘직장인도시락’ 등 해시태그(#)를 달아 사진을 올리며 팔로어들과 그날 도시락 레시피를 공유하는 것도 일상이 됐다.

강 씨처럼 최근 직장인 사이에서 1인 도시락 싸기 열풍이 불고 있다. 다이어트나 식비 절감을 넘어 건강과 취미 생활의 일환이다. 주 52시간 근로제 도입으로 시간적 여유가 생긴 직장인들의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으로 번지는 모양새다. 이들에겐 먹는 것 못지않게 도시락을 잘 꾸미는 것도 중요하다. 힘들여 만든 도시락인 만큼 SNS 팔로어나 회사 동료들에게서 “예쁘다”는 말을 들을 때 만족도도 높다. ‘도시락족’에게 별, 원형 모양틀 등은 필수다.

최근 도시락 만들기에서 파프리카나 아보카도는 건강식이기도 하면서 색감을 다채롭게 하는 필수 아이템. 이영실 씨(29)는 “애플민트 이파리, 파슬리도 도시락 멋내기에서 ‘치트키’ 같은 존재”라며 “소시지 한 개를 먹어도 칼집을 내고 모양을 내야 직성이 풀린다”고 했다.수준이나 구성도 크게 바뀌고 있다. 초기엔 비교적 만들기 쉬운 볶음밥 위주였다. 하지만 최근엔 상당한 내공을 요구하는 장어구이 덮밥이나 초밥을 만드는 이도 적지 않다.

한 취업정보업체가 최근 직장인 350여 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 가운데 20.1%가 집에서 싸온 도시락을 먹는다고 답했다. 사실 한국 직장 사회에서 ‘도시락족’의 식사 환경은 척박하기만 하다. 이들이 주로 식사를 하는 곳은 구내식당이나 야외 벤치. 먹을 곳이 마땅히 없는 경우 사무실에 앉아 해결할 때도 많다. 신유진 씨(30)는 “(직장인 사이에도) 식비를 아끼거나 다이어트를 이유로 도시락을 싼다는 고정관념이 있다”며 “도시락을 싸가기 시작하니 동료들이 먼저 걱정부터 하더라”고 말했다.

그래도 이들은 “차라리 ‘혼밥’이 편하다”고 입을 모은다. 하루 8시간 이상을 보내는 회사에서 도피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2년 차 직장인 김지민 씨(28)는 “동료들과 먹으면 점심에도 업무, 상사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다”며 “점심만이라도 일 생각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어 ‘혼밥’을 택했다”고 말했다.

도시락 열풍은 주 52시간 근로로 도시락에 공을 들일 시간적 여유가 생긴 게 크게 작용했다. 도시락족들은 “저녁 시간에 숨통이 트이며 SNS에 올라온 다양한 도시락을 직접 만들어볼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이유영 씨(33)는 요즘 퇴근 뒤 항상 마트에 들러 다음 날 점심 재료를 산다. 그는 “야근이 줄어 저녁에 장을 보고 미리 재료를 손질한다. 회식도 줄다 보니 아침 일찍 일어나 음식을 준비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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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락 SNS 스타’까지 생겼다. SNS에 꾸준히 올린 도시락 레시피 덕분에 유명 ‘인플루언서(Influencer)’와 비슷한 대접을 받기도 한다. 지난해 2월부터 자신의 도시락 사진을 업로드한 양정미 씨(40)는 “초기엔 주부들의 ‘남편 도시락’ 관련 문의가 많았는데, 요즘은 직장인들의 레시피 요청이 늘어났다”고 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사회적으로 ‘워라밸’을 중시하는 문화가 만들어 낸 직장인 신풍속도”라며 “굳이 개인주의 잣대로 볼 게 아니라 자아 실현의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도시락#혼밥#소확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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