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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하 기자의 서울과 평양 사이]평양을 강타한 인도 열풍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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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하 기자의 서울과 평양 사이]평양을 강타한 인도 열풍의 비밀

주성하 기자 입력 2018-10-10 03:00수정 2018-10-10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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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북한에서 엄청난 인기를 모았던 인도 영화 ‘바후발리’의 포스터. 2015년과 2017년 1, 2부가 제작된 이 영화는 왕위 찬탈 과정을 다루고 있다. 동아일보DB
주성하 기자
북한에서 한류 열풍이 거세게 불고 있다고 알고 있는 사람들에겐 미안한 얘기지만, 올해 평양 여성들은 인도 영화 ‘바후발리’의 남주인공 프라바스에게 푹 빠져버렸다. 남자들은 영화의 여주인공인 타만타 바티아와 아누슈카 셰티에게 열광한다. 올해는 한류가 아니라 인도 열풍이 평양을 강타한 해였다.

바후발리는 올해 1월 1일부터 평양 시내 ‘정보봉사소’들에서 일제히 판매됐다. CD 2장에 북한 돈 1만5000원(약 1.8달러). 고가임에도 처음 발매한 수만 장이 순식간에 다 팔려 다음 날 구할 수 없게 됐다. 그리고 10월인 지금까지 평양 사람들은 유치원에 다니는 애들까지도 그 영화를 보고 또 본다.

영화를 직접 보니 남녀 주인공이 미남, 미녀인 점도 이유가 됐겠지만 북한에선 상상할 수 없었던 영화의 화려한 영상미와 액션, 촬영기술 등이 열풍의 근원이라 생각된다. 평양에 가면 이 영화에 노래가 열몇 개 나오고, 춤 동작은 어떻고 하며 전부 외우고 있는 젊은이도 많다. 휴일에 모란봉에 가면 인도식 춤을 추는 남녀도 꽤 볼 수 있다.

영화는 형제끼리 왕위를 찬탈하는 과정을 그렸는데, 김정남 암살 사건을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라 영화 내용을 놓고 논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5월부터 일요일마다 두 개 부씩 방영된 중국 드라마 ‘붉은 수수밭’(60부)도 인기가 많았다. 북-중 관계가 경색됐을 때는 중국 드라마를 보는 것도 처벌 대상이었는데, 김정은 방중 이후인 4월 ‘모안영’이란 영화가 방영된 것을 계기로 중국 드라마가 조금씩 방영된다. 몇 달 전 ‘불순물’인 중국 드라마를 봤다고 평양에서 추방된 사람들은 너무 억울할 듯싶다. 그럼에도 ‘불순’ 녹화물이나 출판물에 대한 통제가 훨씬 강화돼 지금도 여전히 걸리면 무조건 노동교화형이고, 평양은 가족이 지방으로 추방된다. 그래서 평양 사람들은 이젠 한국 드라마는 거의 보지 않는다. 그 대신 북한은 인도 영화나 중국 드라마의 사례처럼 선택적으로 높게 세웠던 문화적 방화벽을 차츰 낮추고 있다.

여기서 가장 주목할 점은 TV에서 새 외국 영화나 드라마를 방영하기 전에 일단 국영 ‘목란비데오사’에서 제작한 CD부터 시중에 판매된다는 것이다. 새 중국 드라마의 경우 8개 부가 담긴 DVD가 북한 돈 8000원(약 1달러)에 팔린다. 또 휴대전화 게임이나 프로그램을 넣어주고 사진 인쇄, 일반 인쇄, ‘왁찐’(백신) 봉사 등을 하는 정보봉사소에서 돈을 받고 휴대전화에 드라마를 넣어준다. 드라마 1부 또는 중국 소설 1권당 보통 북한 돈 800원이다. 인증 번호를 설치해야 하기 때문에 파일을 주고받을 순 없다.

판매 이익금은 당국과 정보봉사소가 7 대 3의 비율로 나누어 가진다. 즉, 드라마 1개 부를 팔면 봉사소가 240원을 갖고, 나머지 560원은 상부에 바친다.

정보봉사소는 평양에 약 100개가 있는데 소속이 노동당 39호실이다. 39호실은 김정은 비자금 관리를 비롯해 노동당 자금을 관리하는 곳이다. 쉽게 말하면 노동당이 외국 드라마 장사를 시작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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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순이냐 아니냐를 결정하는 권한도 노동당에 있다. 바후발리도 몰래 보다가 잡히면 불순 영화를 봤다는 죄명으로 교화소에 갔을 것이다. 그러나 노동당이 판매한 이상 더 이상 불순 영화가 아니다.

8월 20일부터 평양에서 ‘산과의사’라는 중국 소설이 판매되기 시작했다. 찾아보니 아닌 게 아니라 중국에 산과의사라는 의학 드라마도 있었다. 그럼 다음 수순은 뻔하다. 평양에서 곧 그 드라마 CD도 판매될 것이다. 그러고 나서 TV로 방영될 것이다.

산과의사는 중국의 어느 성급 대학부속병원 산과의사들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눈길을 끄는 점은 이 드라마 주인공들이 삼성 휴대전화를 무척 많이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이 삼성 로고를 어떻게 처리할지도 궁금하다.

노동당이 대북 제재로 말라가는 돈줄을 보충할 기막힌 방법을 찾아낸 것인데 기를 쓰고 통제하던 외부 드라마를 들여다가 돈을 버는 아이디어는 나도 상상하지 못했다. 중국만 해도 매년 수백 편의 드라마가 만들어지니 이걸 들여다가 자막을 입혀 팔면 마를 줄 모르는 돈줄이 될 것이다.

이왕 재미를 본 김에 한국 역사물 드라마나 영화 장사도 한번 해보면 어떨까. 중국 드라마보다 10배 비싸게 불러도 엄청나게 잘 팔릴 것 같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평양#바후발리#붉은 수수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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