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종국 기자의 슬기로운 아빠생활]<2>첫째 때와는 전혀 달랐던 둘째의 출산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9월 23일 09시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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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일어나서 씻어!”

2018년 9월 00일 새벽 6시 쯤. 아내가 나를 깨웠다.
“진통 시작이야?”
“응”

‘배가 아파’라던고 깨우던 첫째와는 달랐다. 둘째가 나오겠구나 싶었을테다. 대충 씻고 나왔다. 그런데 배를 움켜쥐고 있을 줄 알았던 아내는 집 정리를 하고 있었다.
“오잉? 안 아파?”
“아프지.”
“근데 왜 청소를 해?”
“진통이 오긴 오는 것 같은데 초기인 것 같아. 집은 치워야지.”

아내는 차분했다. 아니 노련해 보였다. 이와중에 집 정리라니. 라마즈 호흡법(산모의 진통을 줄여주는 호흡법)도 하고 진통이 오가는 시간도 재며 난리 법석이었던 첫째의 출산과는 사뭇 달랐다.?

아내가 말했다.
“미리 병원 갈까? 조금 있으면 출근 시간인데 차가 밀릴 수도 있잖아?”

마치 애 10명은 낳아 본 마냥 노련했다. 미리 챙겨 놓은 짐을 가지고 병원으로 향했다. (첫 째의 출산 이야기는 변종국 기자페이지 ‘슬기로운 아빠생활 1편’ 참조)

병원으로 가는 길, 음악을 크게 틀었다. 첫째보다 상대적으로 많이 덜한 태교를 지금에라도 하기 위해서다. 첫째 때는 동요도 부르고 동화책도 읽어주려고 했었는데, 둘째는 상대적으로 그러질 못했던(그렇게 안했던) 아쉬움과 미안함에서랄까? 병원에 도착했다. 아니나 다를까 출산 까지는 조금 더 기다려야 한단다. 아내는 침대에 누워있었고, 나는 대기실에서 부모님과 회사에 소식을 알렸다. 그런데 아내에게서 카톡이 왔다.

“셀카 찍을까?”


셀카(셀프카메라, 자기 모습을 스스로 카메라로 찍는 행위)라니…. 너무 아파서 아내가 정신이 나갔나 싶었다. 진통 중에 셀카라니…. 셀카찍을 여유가 있다니 세상에. 둘째 엄마는 뭔가 달라도 다르다더니…. 아내 곁으로 갔다. 진통 주기가 짧아졌다. 우리 부부는 진통이 몇 초나 오는지 초시계로 재는 여유까지 부렸다. “1분에서 50초로 줄었어. 오오.” 철딱서니 없는 남편의 진통 체크에 아내는 자포자기 한 듯 장단을 맞춰줬다.

바로 옆 침대엔 아내보다 먼저 와 있던 한 산모가 고통스런 소리를 내 뱉으며 진통을 겪고 있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긴데 산모마다 진통이 겪는 방식이 다르단다. 소리를 뱉는 사람도 있고 소리를 참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일본 산모들은 소리를 내 뱉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출산 수술실이 조용하다고 하다는 말도 들었다. 소리를 참으려 이를 악물대가 치아 교열이 어긋나는 산모도 있다고 한다. 정말 고통스런 순간인가보다.

잠시 밖으로 나간 사이 간호사가 오더니 가운을 입고 수술실로 오란다. 아내는 이미 수술실로 들어가 있었다. 간호사가 아내 옆에서 손이라도 잡아주면 도움이 된다며 나를 수술실로 불렀다. 예상치도 못하게 아내의 진통 순간을 옆에서 지켜봤다. 내가 다 미치겠더라. 내 몸에도 힘이 들어갔다. 차라리 내가 아팠으면 했다. 미안하고 고맙고 대견하고 위대하고…. 별 감정이 다 들었다.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것밖엔 할 것이 없었다. 아내는 내가 수술실에 들어왔던 사실도 나중에 알았다고 한다. “내가 머리도 쓰다듬어 줬는데?”라고 하니 “아 그게 자기야?. 나는 왠 간호사가 이리도 따스한가 싶었네”라고 말했다.? “쩝….”

20분 정도 흘렀을까? 둘째가 태어났다. 사내놈인건 알고 있었지만, 내 시선은 나도 모르게 아들 몸의 중심부, 묵직한 곳을 향했다. “사내가 맞구나.” 손가락 발가락 확인을 하고는 탯줄을 잘랐다. 첫 째 때도 그런 느낌이었는데 역시나 곱창을 자르는 느낌이었다. 의사선생님이 따스한 물을 받아주셨다. 둘째를 물 속에 넣고서 따스한 인사를 건네라고 했다. 나는 “건강하게만 자라다오”라고 말했고 아내는 “사랑해”라고 말했다. 오늘 처음 본 남자에게 사랑한다는 말이 먼저 나오다니, 엄마의 모성애는 대단했다.

병실로 돌아온 아내는 첫째 때 보다 더 빨리 회복을 하는 것 같았다. 첫째 때 아내가 무리하게 수유를 하러 가다가 병동에서 쓰러진 경험이 있어서, 둘째 때는 휠체어에 태워서 수유를 하러 갔다. 아내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자기 출산할 때는 도대체 얼마나 고통스러운거야?” 아내의 답변은 지금도 나를 할 말이 없게 만든다.
“응 그게, 수박이 항문을 통해서 나오는 느낌이랄까?”
“…”

내가 잘 못 들은 것일까?

“워터멜론(Watermelon) 할 때 그 수박?” 되물었다.
“응.”

수박? 항문에? 아니 이 대답에 “아 그렇구나”라고 공감을 하자니, 나는 대변 말고는 항문을 통해 뭔가가 나와 본적이 없을뿐더러 그것이 또 수박이라고? 상상도 안됐다. 진짜 뭔가 무지 아프겠구나 싶긴 했다. 첫째 때와는 달라진 아내의 반응과 처세술이 놀라우면서도, 아내의 얼굴에서 뭔가 엄마가 됐다는 느낌을 받았다. 군 제대 이후 복학한 첫 학기 첫 수업 조모임에서 만났던 후배였던 아내. 우여곡절 끝에 결혼을 하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아내가 유난히 더 예뻐 보였던 건, 태어난 아기에게만 집중했던 첫째 때와는 다르게 아내의 얼굴 까지도 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기 때문일까?

아내는 마지막으로 이런 말을 남겼다. 셋째는 없어“ 하지만 아무도 모른다(계속).

변종국 기자bj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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