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석탄 밀반입 6가지 미스터리

  • 신동아
  • 입력 2018년 9월 23일 08시 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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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속’ 의견 내고도 ‘석탄 통관시킨’ 관세청
● 남동발전外 ‘화주’ ‘기업’은 ‘선의 취득’ 간주 수사 제외
● 남북 관계 ‘봄바람’ 불자 ‘나 몰라라’ 靑
● 여수항서 유류 1만4000t 실은 ‘라이트하우스 원모어’
● 北 중개무역 알선 ‘수수료’조로 석탄 받아

북한산 석탄을 한국으로 실어 나른 진룽호.
북한산 석탄을 한국으로 실어 나른 진룽호.
북한산 석탄 밀수입·부정수입 사건은 미스터리 투성이다. 관세청이 “일부 수입업자들의 일탈”로 봉합했으나 남북 관계에 악영향을 줄 것을 우려한 정부가 대북제재 단속망을 허술하게 가동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가시지 않는다. 석탄 외 철광석을 녹여 만든 선철도 러시아산으로 위장돼 국내에 반입됐다. 석탄·선철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 금수품목이다.

미스터리① 남북 관계 ‘봄바람’ 불자 ‘나 몰라라’ 靑


국가정보원은 지난해 10월 북한산 석탄 반입 관련 사안을 청와대 국가안보실에 보고했다. 외교부도 10월 3일 ‘우방국’ 첩보를 국가안보실에 전달했다. 우방국은 미국을 가리킨다. 관세청은 10월 3일, 11일 스카이에인절(SKY Angel)호와 리치글로리(Rich Glory)호에 북한산 석탄이 실렸다는 첩보를 국정원과 외교부를 통해 입수했다.

국가안보실은 10월 16일, 10월 24일, 11월 10일 북한산 석탄 반입과 관련해 3차례 회의를 열었다. 국정원, 외교부, 통일부, 관세청, 해양수산부·해경, 기획재정부, 금융감독원이 참석했다. 법무부가 참석했으므로 검찰도 정보를 공유했을 가능성이 높다.

10월 16일 청와대 회의에서는 관계 부처 간 상황 평가가 이뤄졌으며 미국과 긴밀히 공조하기로 했다. 10월 24일에는 진전 상황을 공유하고 관세청에서 최대한의 검색·수사를 하기로 했다. 11월 10일에는 북한 석탄 반입 등과 관련한 기업 계도 활동과 안보리 결의 이행 체계를 점검했다.

노석환 관세청 차장이 8월 10일 오후 정부대전청사에서 ‘북한산 석탄 등 위장 반입사건’에 대한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노석환 관세청 차장이 8월 10일 오후 정부대전청사에서 ‘북한산 석탄 등 위장 반입사건’에 대한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관세청은 북한산이라고 봤는데도…”

청와대 회의 내용을 보면 초기 단계에서는 사건의 엄중성과 관련해 관계 부처 간 충분히 이해했으며 진위를 밝히는 데 관세청 조사가 긴요하다는 데 인식을 공유했다. 국가안보실은 “청와대는 관세청과 검찰 등 조사기관의 법령상 권한과 전문성을 존중하며 미국과 긴밀한 협의하에 철저한 검색과 수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고 밝혔다.

청와대가 엄중하게 대응한 지난해 10월, 11월은 미국의 대북 선제 타격이 거론되는 등 한반도가 얼어붙어 있을 때다. 남북 관계도 경색돼 있었다.

관세청이 사실상 북한산 석탄으로 내부 결론을 내린 것은 올해 2월이다. 관세청 수사 결과로 상황이 더욱 위중해졌는데도 청와대는 2월부터는 대책회의를 열지 않았다. 7월 20일이 돼서야 ‘석탄 반입 관련 관계부처회의’가 열렸다.

올해 2월은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로 남북 관계에 ‘봄바람’이 불어온 때다. 2월 9일 평창올림픽 개막식이 열렸다. 이튿날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특사 자격으로 청와대를 방문했다. 2월의 봄바람은 4월 27일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 9월 18~20일 평양 정상회담으로 이어졌다.

미스터리② ‘구속’ 의견 내고도 석탄 통관해준 관세청… “왜 그랬을까”


진룽(JIN LONG)호가 싣고 온 북한산 석탄 4517t이 동해항(강원 동해시)에 들어온 것은 청와대 국가안보실이 관계 부처 회의를 두 차례 연 뒤인 지난해 10월 27일이다. 관세청은 11월 10일 석탄 4517t 통관을 보류했다.

관세청은 압수수색 3회, 참고인 조사 10여 회, 피의자 조사, 러시아 세관과 공조를 거쳐 2월 ‘구속’ 의견으로 검찰에 지휘를 건의했다. 검찰이 관세청에 수사를 보완하라고 지휘하면서 수사가 탄력을 잃었다. 북한산 석탄 4517t은 2월 7일 통관돼 3월 남동발전에 인계됐다.

관세청이 구속 의견을 냈다는 것은 증거와 진술을 상당히 확보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국가안보실 회의에 법무부가 참석했으므로 검찰도 사안의 위중함을 파악했을 개연성이 있다.

관세청이 진룽호가 싣고 온 석탄 4517t을 수사가 끝나지 않았는데도 통관해준 것도 의문이다. “쌓아두고 있으면 보관료를 내야 하며, 확증이 없었다”는 것인데, 검찰에 구속 지휘를 건의한 것과는 상충된다. 수사가 마무리될 때까지 통관을 보류하는 게 정석이다.

10월엔 석 달 쌓아놓고 조사, 8월엔 3일 만에 러시아산?


정부가 “서류상으로는 이상 없다” “조사 중”이라는 해명을 내놓던 8월 4일 진룽호가 포항항에 또다시 입항했다. 진룽호 입항은 미국 연방정부가 운영하는 미국의소리(VOA)가 러시아에서 석탄을 싣고 포항에 들어왔다고 보도하면서 알려졌다.

억류나 나포까지 할 수 있었으나 출무 검색만 했다. 사흘 만에 내린 결론은 러시아산 석탄이라는 것이다. 지난해 10월 27일 들어온 북한산 석탄을 석 달간 붙잡아둔 것과 대비된다. 왜 이렇게 서둘러 러시아산이라고 결론내린 걸까.

외교부는 8월 7일 “진룽호는 이번에 (서류상) 러시아산 석탄을 적재하고 들어왔으며, 관계 기관의 선박 검색 결과 안보리 결의 위반 혐의는 확인된 바 없다”고 밝혔다. 석탄 그 자체가 아니라 문서를 보고 러시아산이라고 본 것이다.

미스터리③ 면죄부 받은 ‘남동발전’… “사유는 몰랐다?”


한전 발전 자회사인 남동발전은 석탄이 북한산이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것으로 간주돼 기소 대상에서 제외됐다. 북한산인 줄 몰랐음이 인정되면 세컨더리 보이콧(북한과 거래한 제3자에 대한 제재) 등 불이익을 받지 않을 공산이 커진다.

남동발전은 “석탄이 ‘통관 보류’된 사실은 알았으나 사유는 몰랐다”고 밝혔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국가에 전력을 공급하는 공기업이 발전 연료인 석탄이 3개월이나 항구에 묶였는데도 사유를 알아보지 않은 것은 석연치 않다.

자유한국당 북한석탄대책TF 관계자는 “남동발전은 석탄 시료 분석에서 공인된 기관으로 알려졌다”면서 “남동발전이 알았는지 몰랐는지는 미스터리”라고 말했다.

남동발전은 3월 북한산 석탄의 성분을 분석했고 이 결과를 관세청에 제출했는데 발열량이 6629㎉/㎏로 돼 있다. 이는 부풀려진 것이다. 샤이닝리치호를 통해 국내에 반입된 같은 석탄의 ㎏당 발열량은 5907㎉/㎏로 남동발전 입찰 공고 기준인 6300㎉/㎏에 미치지 못했다. 북한산 석탄은 러시아산보다 발열량이 낮은 상대적 저급이다.

시료 조사에서 ‘부풀려진 발열량’


진룽호가 들여온 북한산 석탄 발열량을 6629㎉/㎏로 기록한 자료를 관세청에 제출한 것은 ‘간이 분석’이며 ‘단순 실수’라는 게 남동발전 설명이다. 남동발전은 북한산 석탄의 화주(貨主)여서 유엔 대북제재 위반과 관련해 곤란한 처지가 될 수 있었으나 관세청 수사에서 면죄부를 받았다.

북한산 석탄을 한국에 들여온 스카이에인절호, 샤이닝리치호, 진룽호, 리치글로리호(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
북한산 석탄을 한국에 들여온 스카이에인절호, 샤이닝리치호, 진룽호, 리치글로리호(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

미스터리④ 행방 오리무중 2만5335t… “누가 구입해 어떻게 썼나”


관세청은 9건의 북한산 석탄 등 수입 의혹 사건을 수사해 7건의 범죄 사실을 확인했다. 북한 석탄 등(선철 2010t 포함) 3만5038t이 한국에 반입됐다. 그중 샤이닝리치호(5119t)와 진룽호(4584t)를 통해 들어온 9703t만 남동발전에 인계됐다. 밀수입·부정수입된 물량의 27.7%만 남동발전으로 간 것이다.

2만5335t은 어디로 갔을까. 오리무중이다. 관세청은 수사하지 않았다. 남동발전은 화주(貨主)면서 최종 소비처지만, 2만5335t이 흘러들어간 기업 혹은 기업들은 다른 화주를 통해 ‘선의 취득’한 것으로 보고 2만5335t의 행방은 수사 대상으로 삼지 않았다. 관세청은 화주가 누구인지도 밝히지 않는다. 이 화주 또한 일탈 행위를 한 수입업자에게 속은 것이라는 논리다.

벌크 화물로 들여온 무연탄은 발전소와 종합체철소에서 주로 쓰인다. 2만5335t의 행방이 드러나면 파장이 커질 수 있다. 최종 구입한 회사는 어디이고, 어떤 용도로 사용했을까.

관세청은 “북한산 석탄이 러시아를 거쳐 국내로 반입됐는지에 수사를 집중했고, 국내 거래 관계까지는 상세하게 검토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실제로 상세하게 살펴보지 않은 걸까. 행방을 아는데도 밝히지 못하는 것일까.

“중개무역 주선 대가로 석탄 받아”


미스터리⑤ “석탄은 수수료조로 받은 것”… 중개 물품 얼마나 많았기에?


북한산 석탄 반입 사건 피의자는 A(45) B(56) C(45) 3명이다. A와 B는 석탄수입업체를 운영하고, C는 화물운송주선업체 경영자다. B는 남북교류협력법 위반 전과가 있다.

흥미로운 것은, 피의자들이 한국에 들여온 북한산 석탄 대금을 지급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피의자들은 자신들이 한국에 반입한 북한 석탄은 돈을 주고 구입한 게 아니라 그간 자신들이 주선해온 중개무역의 ‘수수료’조로 받은 것이라고 진술했다. 이들은 북한산 물품을 러시아를 경유해 제3국으로 수출하는 중개무역을 알선해왔다.

‘중개무역 알선 대가’로 받은 석탄이 그 정도라면 중개한 물품이 엄청나게 많았다는 얘기다. 이들이 중개한 물품은 무엇일까. 북한산 선철도 물물교환 방식으로 현품을 확보해 국내로 반입했는데, 어떤 물건을 주고 선철을 받은 것일까. 관세청이 내놓은 수사 결과에는 이렇듯 이가 빠진 부분이 많다.

10개월 동안 지지부진하던 수사가 국내외 언론이 문제를 제기하자 1개월도 안 돼 결과가 나온 것도 미스터리다. 관세청은 ‘미국의소리’가 보도를 시작한 뒤 24일 만인 8월 10일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러시아세관과 국제 공조 및 보강 수사 등을 이유로 3800쪽에 달하는 수사 서류를 작성하며 피치 못해 10개월의 수사 기간이 소요됐다”는 게 관세청 설명이다.

관세청은 북한→러시아 선박 이동은 압수수색 과정에서 확보한 선하증권, 상업송장 등 무역 관련 서류로 확인했고, 러시아→한국 이동 내역은 휴대전화 채팅 내용, 수첩, 녹취파일, 피의자 진술을 통해 확인했다.

미스터리⑥ 여수항에서 유류 1만4000t 실은 ‘라이트하우스 원모어’호 행각


한국 정부는 공해상에서 북한과 연루된 선박 간 환적에 가담한 라이트하우스 원모어호와 코티호, 북한산 석탄을 운반하는 데 관여한 탤런트 에이스호 등 화물선 3척을 억류 중이다.

홍콩 선적(船籍) 라이트하우스 원모어호와 파나마 선적 코티호는 운영주가 중국 다롄과 광저우에 각각 주소지를 둔 회사라고 ‘미국의소리’ 방송이 보도했다.

탤런트 에이스호는 북한산 석탄을 운반한 이후에도 한국 항구에 4차례나 입출항한 사실이 드러났다. 북한에 기항한 제3국 선박 입항을 불허하는 상황에서 이렇듯 자유롭게 입출항한 것은 문제가 있다.

“조사 대상 아니다”라고만 답변


자유한국당 북한석탄대책TF 단장인 유기준 의원은 북한산 석탄 반입 논란과 관련해 정부가 자료 제출 요구에 불응해 의혹을 키운다고 비판했다. 북한석탄대책TF의 라이트하우스 원모어호 관련 자료 요구에 관세청은 다음과 같이 답했다.

라이트하우스 원모어호가 북한 선박에 기름을 나눠준 사실은 어떻게 파악했나.

“선원 진술 등으로 파악했다.”

대북 패널 보고서 또는 우방국 정보인가.

“외교부 정보다.”

라이트하우스 원모어호는 여수항에서 기름 1만4000t을 실었다. 기름의 종류는 무엇인가.

“가스오일(GAS OIL)이다.”

누가 산 것인가.

“조사 대상이 아니다.”

대금은 얼마며, 어떻게 결제됐나.

“조사 대상이 아니다.”

북한 배에 넘겨준 기름의 종류는 무엇인가.

“가스오일이다.”

북한 선박에 넘겨준 기름 600t의 용도는 무엇인가.

“조사 대상이 아니다.”

이후 6개 항목의 자료 요청에도 “조사 대상이 아니다”라고만 답했다. 코티호와 관련한 자료 요청에도 북한에 넘긴 기름의 종류가 가스오일이라는 사실 외에는 “조사 대상이 아니다”라고만 밝혔다.

북한석탄대책TF는 ‘북한산 석탄 국내 반입 사실 인지 시점’(청와대), ‘북한산 석탄 반입 관련 관계부서 대책 회의 현황’(청와대), ‘최근 문제가 된 조사 대상 선박 7척의 입출항 현황’(해양수산부), ‘석탄 관련 선적 서류와 원산지 증명서 사본’(관세청), ‘남동발전 북한산 석탄 반입 의혹 관련 공문·보고서’(외교부) 등 88개 목록의 자료 제출 요청에 대해 정부로부터 답변을 받지 못했다.

“北 눈치 본 게 아닌가”

사족(蛇足) | 북한산 석탄 수입 문제가 청와대 회의 테이블에 처음 오른 것은 앞서 언급했듯 지난해 10월이다. 정유섭 자유한국당 의원이 최근 샤이닝리치호가 제출한 원산지증명서를 러시아 상공회의소 검색 시스템에 확인해보니 곧바로 존재하지 않는 서류라는 회신이 돌아왔다. 정부가 과연 제대로 조사할 의지를 갖고 있었느냐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의심 선박에 대한 검색 강화 조치도 미흡하기 짝이 없었다. ‘미국의소리’ 방송과 유기준 의원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이후 샤이닝리치호는 11차례, 진룽호는 19차례 한국 항구를 드나들었고, 리치글로리호는 16차례, 스카이에인절호는 6차례 입출항했다. 석탄 수입업체를 대상으로 ‘꼬리 자르기’ 한 게 아니냐는 지적 뒤의 근원적 의심은 북한 눈치를 본 게 아니냐는 것이다. 자유한국당은 ‘북한산 석탄 반입 관련 국정조사’를 요구한다. 조사가 아닌 수사의 대상일지도 모른다. 딜레마는 유엔 제재와 맞물린 사안인 터라 새로운 진실이 드러날수록 국익에는 해가 된다는 점이다.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이 기사는 신동아 10월호에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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