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안드레이 란코프]북한의 영악한 ‘트럼프 관리’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9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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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엘리트는 핵 포기할 생각 없어, 미국의 압박을 최소화하는 게 목표
트럼프 임기까지 시간벌기 작전 돌입
‘트럼프 관리’가 무력 충돌 위험 줄여… 2차 북-미회담, 큰 난관 없이 진행될 듯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양대학 교수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양대학 교수
지난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북한 측의 제안을 받고 2차 북-미 정상회담을 하겠다고 했다. 냉정하게 분석하면, 2차 정상회담은 무엇보다도 미국을 조종, 관리하려는 북한 외교의 큰 성공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한국도 이 소식을 환영할 이유가 있다고 생각된다. 지난해 북한은 그 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도전에 직면하게 됐다. 한편으로 신임 미국 대통령은 시끄럽게 군사력 사용 위협까지 했다. 다른 편으로 중국은 매우 엄격한 대북 제재를 유엔에서 지지했을 뿐만 아니라, 국경 경비를 강화했고 성실히 집행하기 시작했다.

북한 정부는 이 이중의 위협을 줄이기 위해 이중의 조치를 취하고 있다. 한편으로 미국이 공격할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서 미국 측이 듣고 싶어 하는 ‘비핵화’ 이야기를 시작했고, 가역적(可逆的)이지만 상징성이 큰 양보를 일방적으로 했다. 다른 편으로 그들은 경제 위기의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 작년에 생긴 미중 공동 전선을 파괴하고 중국이 대북 태도를 완화하도록 노력했다.

중국에 대한 외교 노력은 마침내 성공하였다. 중국과의 무역전쟁을 시작한 트럼프 대통령은 의도하지 않게 북한의 정책을 도와줬다. 미국의 무역 공격을 받은 중국은 비대칭적인 반격 수단을 고민했고, 북한 카드를 꺼냈다. 중국은 대북 제재 집행을 많이 완화했고 국경지역에서의 밀무역 및 중소기업의 대북 교역에도 눈을 감기 시작했다. 결국 북한에서 경제 위기의 위협이 많이 없어졌고 북한은 원래 생각했던 양보조차 서두르지 않게 됐다.

그러나 위협이 줄어든 것은 위협이 없어지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북한은 여전히 트럼프 대통령을 군사작전까지 할 수 있는 사람으로 보며, 그에 대한 공포가 남아 있다. 그러나 미국에서도 북한이 비핵화뿐만 아니라 핵 감축을 할 의지가 없다는 인식이 갈수록 분명해지고 있다. 사실을 깨달은 미국 전문가들 가운데서는 미국이 2017년식 ‘최대 압박’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요즘에 커지고 있다.

북한은 미국의 태도가 강경해지는 것을 예방하려 시간 벌기 작전을 전개하고 있다. 그들의 목적은 트럼프의 임기 만료 때까지 대북 공격, 그리고 최대 압박의 재개를 가로막는 것이다. 동시에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가능한 한 적게 양보하고 핵·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능력을 현 수준으로 유지하거나 조금만 감소시킬 희망을 갖고 있다.

북한 입장에서 제일 합리주의적인 방법은 트럼프를 관리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국무부, 국방부 관리와 달리 대통령은 아직 북한이 핵을 포기할 가능성이 있다고 믿는 것 같다. 특히 자신을 ‘거래의 기술’ 천재라고 생각하는 트럼프는 기존 대통령들이 해결하지 못한 비핵화 문제를 자신이 해결할 줄 알고 있다. 그래서 북한 측의 목적은 트럼프가 강경파의 주장을 듣지 않고, 최대 압박을 재개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2차 북-미 정상회담은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정상회담 준비에 몇 개월이나 시간이 걸려서, 그동안 미국 강경파는 입을 열지 못할 것이다. 회담 때도 김정은을 비롯한 북한 측은 허영심이 많은 미국 대통령에게 아첨하고, 그가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와 비핵화 약속을 많이 할 것이다. 북한이 진짜 양보를 할 가능성도 아직 조금 있다. 그 때문에 트럼프는 정상회담 이후에도 북한 측의 약속이 귀에서 잘 들려서, ‘비핵화의 진전’을 기다릴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북한은 위기를 회피하지 않더라도 많이 미룰 것이다.

그런데 한국과 동북아 사람들에게 이것은 단순히 나쁜 소식만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미국 강경파가 희망하는 최대 압박의 재개는 매우 위험한 것이다. 중국이 2차 최대 압박에 참여할 의지가 아예 없기 때문에, 이러한 강경 정책은 북한의 비핵화는 물론이고, 핵 감축조차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이 정책은 2017년처럼 동북아에서 무력충돌이나 전쟁이 발발할 수 있는 상황을 초래할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감안하면, 우리는 북한이 전개한 ‘트럼프 관리 작전’을 매우 냉소적으로 보더라도 그 성공을 바랄 이유가 있다.

물론 북한 엘리트층은 비핵화를 집단 자살과 다를 바가 없는 정책으로 보기 때문에 핵을 포기할 생각조차 없다. 그러나 핵무기 감축을 하는 것은 바람직한 전망이다. 유감스럽게도 미-북 양측이 타협을 할 의지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한반도에서의 무력충돌과 한미관계, 남북관계에 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을 줄이는 ‘트럼프 관리’가 나쁜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양대학 교수
#평양 정상회담#북미 정상회담#트럼프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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