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윤완준]왜 요즘 중국에서는 사람들이 실종되는가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9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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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완준 베이징 특파원
윤완준 베이징 특파원
판빙빙(范冰冰)은 지난해 프랑스 칸 영화제 경쟁부문의 심사위원이었다. 해외에서도 유명한 중국 배우다. 그런 판빙빙이 지금 어디 있는지 중국인들은 매일 소셜미디어에서 찾고 있다.

판빙빙은 6월 영화 출연료 관련 이중계약서와 탈세 의혹이 제기된 뒤 사라졌다. 6월 초 심장병 어린이들을 돕는 자선활동 참가를 마지막으로 웨이보(중국의 트위터 격)에 글도 올리지 않고 있다. 11일은 그가 대중으로부터 ‘실종’된 지 100일째 되는 날이었다. 망명설, 감금설부터 탈세한 세금을 낸 뒤 돌아올 것이란 복귀설까지 각종 루머가 난무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중국에선 판빙빙 행적에 대한 궁금증뿐 아니라 ‘왜 이렇게 사람들이 별안간 사라지는 일들이 반복되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이 나타나고 있다. 소셜미디어에는 “오늘의 판빙빙은 내일의 첸(錢)빙빙이고, 장삼이사(張三李四)들도 실종된다 하면 바로 실종된다”는 글이 올라온다. 판빙빙이 아니라 누구든 실종 상태에 놓일 수 있다는 풍자다. “권력이 누구를 잡으라 하면 잡고 풀어주라 하면 풀어주는 것”이라는 글도 올라온다.

시진핑(習近平) 시대에 실종된 사람이 판빙빙만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후진타오(胡錦濤) 시대에는 주로 인권운동가들이 구금되면서 실종됐지만 2013년 시진핑 국가주석 집권 이후에는 실종 현상이 각계각층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지난해 7월 사망한 노벨 평화상 수상자 류샤오보(劉曉波)의 부인 류샤(劉霞)는 인권운동가의 아내라는 이유만으로 남편의 사망 이후 올해 7월 독일 출국이 허용될 때까지 1년간 사실상 실종 상태였다. 한때 중국 당국이 그를 베이징 자택에 돌아오지 못하도록 윈난(雲南)으로 보내 ‘강제 여행’이라는 어색한 말이 생겨나기도 했다. 중국 재벌 샤오젠화(肖建華) 밍톈(明天)그룹 회장은 지난해 1월 홍콩에 갔다가 실종된 뒤 아직 생사가 불분명하다. 부패에 연루된 것으로 보이지만 중국 당국은 그가 어떤 혐의로 어디서 조사를 받고 있는지조차 공개한 적이 없다.

시 주석 집권 이후 부패 척결 운동을 강하게 추진하면서 관료들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일들이 발생하자 관료사회가 벌벌 떤다는 얘기도 나왔다. 부패 척결은 좋지만 비리 혐의자를 정식으로 형사 입건하기 전에 임의로 구금해 조사하는 초법적인 제도(쌍규)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회의 중 들이닥친 반부패 감찰기관인 당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요원들에게 당 간부들이 연행돼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사라졌다는 식의 소문이 계속 흘러나왔다.

불법 행위 혐의가 있으면 공권력이 조사하고 법정에서 죄를 가려 벌을 받는 것은 정상 사회에서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판빙빙의 경우도 세무조사 과정에서 세금 탈루가 발각돼 공안 기관으로 이송됐다는 소문이 설득력 있게 들린다. 하지만 범죄 혐의자도 어떤 조사를 받는지, 어떤 상태에 있는지 공개돼 법적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판빙빙 실종 99일째인 10일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 알리바바그룹의 창업자인 마윈(馬雲) 회장이 자선사업에 매진하겠다며 1년 뒤 은퇴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마윈은 빌 게이츠의 길을 따르겠다고 했지만 중국 안팎에서 그의 은퇴가 혹 중국 당국에 밉보여 ‘실종 상태’를 피하기 위한 고육지책은 아닌지 하는 음모론까지 나온다. 판빙빙의 실종 장기화는 중국인들에게 ‘나도 어떤 이유로든 언제든 권력에 의해 실종될 수 있다’는 공포를 심어주고 있는지 모른다.
 
윤완준 베이징 특파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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