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군 벤치 데웠던 남자, 쌍둥이 타선을 데우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9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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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채은성의 반전 스토리
효천고 때 전국대회 8강이 최고… LG 입단 후 자리 못 잡고 입대
올 시즌 20홈런-100타점 물 만나… “가을야구서 더 높이 날고 싶다”

LG 채은성. 동아일보DB
LG 채은성. 동아일보DB

누가 알았을까. ‘순천 토박이’가 잠실벌을 이렇게 뒤집어 놓을 줄을.

2009년 세 자릿수 등번호를 달고 입단한 신고 선수는 5년이 지난 2014년에야 두 자릿수 등번호를 단 정식 선수가 됐고 올 시즌 팀의 최다 타점(107타점) 경신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응원가를 빌려 소개하자면 ‘주인공은 바로 너’ 채은성(28·LG)이다.

전남 순천 효천고 시절만 해도 그에게 ‘가장 큰 물’은 전국대회 8강이 고작이었다. 그나마 그 대회에서 눈에 띄어 염경엽 당시 LG 스카우트가 내민 계약서에 “감사합니다” 하고 바로 사인을 했다. 마냥 신기했던 서울이었지만 현실은 결코 녹록지 않았다. 지명받은 선수도 나갈 자리가 없는 와중에 연습생이 설 자리는 더욱 없었다. 곧바로 현역(의장대)에 입대했다.

“제 프로필을 보고 군대 간부님들이 ‘프로야구 선수냐’고 물어보셨는데 좀 창피했죠. 유니폼만 입는다고 선수가 아니니까….”

3루수로 입단했지만 기회라도 잡아 보려고 포수미트를 꼈더니 제대 후 입스(실패에 대한 두려움으로 찾아오는 각종 불안 증세)가 와 투수에게 공도 제대로 못 던졌다. 2군 경기도 못 나가는 신고 선수. 소리 소문 없이 방출이 되더라도 이상하지 않은 처지였다. 결국 그는 부상자로 자리가 비어 있던 우익수 자리에 서게 됐다. 그는 그저 “살길을 찾아간 것”이라 했다.

많은 지도자가 지명도 받지 못한 그에게 포지션을 여러 번 바꿔가면서까지 기회를 준 건 그의 잠재력 때문이었다. 하지만 보여준 게 없었기에 야구선수 채은성은 늘 ‘빚’이 많았다. 2016시즌 생애 첫 풀타임 출전과 동시에 3할 타율, 9홈런으로 잠재력을 증명하는가 싶었지만 2017시즌 곧바로 타율 0.267, 2홈런으로 추락했다. 그래도 출전을 계속하자 꽤나 오래 ‘(감독의) 양아들’이라는 조롱에 시달렸다.

“저한테 기회 주신 분들이 욕먹는 게 더 힘들더라고요. 얼굴 볼 면목이 없는 거예요. 그분들 얼굴에 먹칠하고 싶지도 않았고요. 올해 초반에 더 마음을 다잡은 것도 류중일 감독님이 기회도 많이 주시는데 부응을 못 해서 더 그랬던 것 같아요. 그래도 작년에 욕을 하도 먹어서 그런지 이제는 웬만한 욕도 그러려니 웃을 수 있어요. 작년에는 못한 날은 털어내질 못하고 해뜰 때까지 잠도 못 잤어요(웃음).”

2014년 채은성의 첫 안타공에 양상문 당시 감독은 ‘大(대)선수가 되세요’라는 글귀를 적어 돌려줬다. 그리고 올 시즌 채은성은 생애 첫 20홈런-100타점을 넘기며 가르시아, 김현수의 줄부상으로 빈 4번 자리도 깔끔하게 메웠다. 그간 쌓인 빚을 조금이나마 상환(?)한 셈이다.

“현수 형이 얼마 전에 고맙다고 얘기해 주더라고요. 제가 먼저 같이 웨이트트레이닝 하자고 했었는데 초반에 성적이 별로 안 좋았잖아요. 그래서 내심 걱정했대요. 그런데 잘 이겨내서 고맙다고….”

올 시즌 한 단계 더 큰 선수가 됐지만 채은성은 아직 ‘더 큰 무대’가 고프다.

“팀이 가을야구 가는 게 가장 큰 목표죠. 다 같이 1년 고생했잖아요. 가을야구 같은 큰 경기도 해 보고 싶고요. 제대로 뛴 건 2016년 한 번인데 이제 그때만큼은 떨리지 않을 것 같아요.”
 
임보미 기자 bom@donga.com
#프로야구#프로야구 lg#채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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